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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밀리H Dec 22. 2021

네가 그린 그림 속 나의 모습

네가 그린 기린 그림은 

새로 사귄 친구와 좀 더 빠르게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가볍게 성격 테스트를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전에는 혈액형, 별자리, 탄생석, 혹은 이름 획수로 점을 쳤다면 이제는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MBTI 테스트를 재미 삼아서 보는 사람들이 많아요. 


옛날에는 기껏 해봐야 4가지(혈액형) 또는 12가지(별자리, 탄생석 등)로 사람을 분류해서 규정지었다면 이제는 MBTI를 통해 8가지 알파벳 조합으로 이전보다 더욱 세분화된 16가지 인간상을 그려낼 수 있게 되면서 사람들이 열광하기 시작했어요. 


실제로 MBTI 알파벳 분류에 대한 조금의 이해만 있으면 각종 해석 지를 통해 마치 내가 심리학자가 된 것처럼 뿌듯함을 느낄 수 있게 만들어주기도 해요. 더불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것만 같았던 주변 친구들의 성격을 4자리의 알파벳으로 간편하게 정리를 해놓고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된 것만 같아 안정감을 느끼고 깊게 몰입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꼭 친구관계가 아니더라도 이성친구, 직장 동료, 가족 관계 등에서도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하는 창구를 마련해 주기 때문에 인간관계에서 유연한 사고를 가질 수 있게 만들어 줘요. 어떻게 보면 인간관계에서 순기능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어요. 


하지만 이 정도 선에서만 서로를 이해하는 도구로 사용하면 정말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너무 심취한 나머지 맹신하는 사람들 때문에 곤란한 상황이 만들어질 때가 있어요. 처음 보는 사람에게 무례함을 보일 수도 있고 자신만의 해석에 갇혀서 잘못된 방식으로 남을 평가하는 경향 하는 보일 수도 있어요. 그리고 해석한 성격을 가지고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자신과 반대되는 성향을 보고선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따지고 들거나 이 성격검사 결과만 가지고 성격이 너무 잘 맞는 거 같다며 호들갑을 떨기라도 하면 총체적 난국이 돼요.


대부분이 알고 있듯이 온라인상에 떠돌아다니는 MBTI 링크는 가볍게 테스트를 해보는 것이기 때문에 정확한 검사라 할 수 없어요. 그리고 각각의 알파벳에 따른 퍼센트가 어느 정도인지를 정확하게 분석해서 상담까지 받아야 스스로도 진정한 '나'에 대한 이해와 탐험을 할 수 있게 돼요. 하지만 다들 학창 시절 학교를 통해 받아봤던 적성검사와 성격검사를 더듬더듬 기억해 내면서 자기 자신조차 액자 틀에 가두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누군가도 그렇게 봐주길 바라는 경우가 있단 말이지요?...


진정한 나의 모습은 온 데 간데 사라지고 4자리 알파벳에 파묻혀 버린 채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서 애를 쓰는 모습은 가학적이라고 느껴질 정도예요. 


심지어 주변 친구들도 네 자리 알파벳에 가둬놓고 '넌 이렇지 않아? 넌 원래 이런 사람이잖아?'를 반복할 때도 있어요. 


그 친구는 마치 전지적 위치에 있는 신처럼 굴지만, 뱉어내는 나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맞지 않는 걸 보면 전혀 다른 사람을 그려내고 있는 게 맞아요.


나도 나 자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친구가 해석하는 MBTI 개똥철학을 들이밀면서 '너는 이래야만 한다'라는 주문을 걸고 있는 거 같아서 슬슬 짜증이 나요. 상황 혹은 그날의 감정에 따라서 전혀 다른 성향이 튀어나올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해석으로 먼저 사람을 단정 지어 버리면 나는 그러면 안 되는 사람이 된 것 같은데... 이거 가스라이팅인 거죠?


오랜 시간 친구로서 관계를 이어오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다른 기억 속에서 '나'를 만들어낸 친구를 이해해주려고 하면 괜히 나만 손해 보는 거 같고 또 이해하지 않으려 하면 나만 좀스럽고 나쁜 사람인 거 같아 많은 고민을 할 때가 있어요.


진정한 대화를 통해서 이해하기보다 남이 적어놓은 해석지에 폭 빠져 사는 친구야... 


나를 보면서 대체 누구를 그리고 있는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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