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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둘 여자, 홀로 태국 공장에 들어갑니다.

직원 1400명 중 한국인은 저뿐입니다

by 에밀리
"취업사기 아니가?"


졸업 후 첫 인턴으로 태국으로 간다고 하니 아버지가 처음 하신 말이다.


그래 이상한 일이다, 분명 딸내미는 싱가포르에 취업이 되었다는데 왜 난데없이 태국이 나오는지, 얼핏 들어도 개연성이 없다. 아버지는 믿지 않으셨다. 태국? 그것도 공장? 우리 딸이 왜? 듣는 사람 입장에선 사기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이야기였다.


사실, 싱가포르는 우리 집 딸내미, 그러니까 나(당시 22세, 여)의 두 번째 고향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조기유학을 떠나 중학교 3년을 그곳 로컬 학교에서 다녔다. 물론 그때도 한국인은 나밖에 없었다. 정이 너무 많이 들은 나머지 잠깐은 ‘취업도 그곳으로 가볼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 후 고등학교는 한국의 국제학교, 대학은 홍콩. 전형적인 유학생 코스였다. 부족함 없이 자라며 ‘금융이 발전된 아시아 나라들에서 사는 삶’이 익숙했던 내가 갑자기 태국 공장에서 일하겠단다.


이렇게 금이야 옥이야 자란 내가 갑자기 태국 공장에 취직한다는 소리에 아버지는 내가 태국으로 떠나기 3일 전부터 잠도 못 주무시고 유튜브에서 온갖 동남아 취업사기 사례를 검색하며 밤새 불안해하셨다.


그럴 만도 했다.

태국행을 결정한 이유가 생각보다 정말 바보 같기 때문이다.


재작년, 출장이라 쓰고 여행이라 부른 베트남 하노이 일정 중 받은 마사지가 너무 시원했다. ‘다시 꼭 동남아에 와야지’ 다짐했던 그때의 내가 문제였다. 때론 별 거 아닌 이유가 인생을 바꾼다. 하노이의 마사지 샵. 그 1시간이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여행은 너무 짧고 요즘 젊은 사람들이 많이 한다는 한 달 살기도 짧게 느껴져 아예 와서 몇 달간 눌러앉으려는 작정이었다. 태국에 직장을 얻은 건 운이 좋았다.


사실 아버지 말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니었다. 나는 3개의 회사에 합격했고, 원래 첫 선택은 좋은 기억이 있는 싱가포르의 스타트업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태국 공장에서 도착한 오퍼 메일. 그 한 줄에 모든 게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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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공장에 자동화를 도입해 주세요"


그 문장을 본 순간, 가슴이 뛰었다.


공장.


일단 공장이라는 단어에 가슴이 뛰었다. 왜냐하면 공장은... 공장은 낭만 넘치는 곳이기 때문에. 지구를 100년간 굴려온 2차 산업혁명의 상징, 여전히 세상을 움직이는 제조업의 심장. 지금까지 회사는 스타트업밖에 다녀보지 않은 (심지어 스타트업을 창업하기도 했다) 나에게 한 줌의 새로운 도파민.


특히 저 '자동화'라는 키워드에 반응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2년간 나는 온갖 방법들로 AI를 활용하고 프로그램을 개발해 가며 나의 취미생활이자 학비벌이인 인스타그램/스레드 크리에이터 일을 해왔다. 그런 나에게 주어진 일이 공장 자동화라니, 설레지 않을 리가.


그렇다, 사실 나는 공대생이고, 특히 AI와 컴퓨터공학을 부전공할 정도로 개발과 AI에 관심이 많은 산업공학도다.


산업공학, 그리고 공장.


산업공학의 존재 이유가 바로 공장 아니던가. 자동화, 효율화, 공정 최적화, AI 도입. 알 사람은 알겠지만 산업공학의 존재이유가 공장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나의 학위와 공장은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 그러므로 내가 공장에 들어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다. 물론 우리 학교 대부분의, 거의 모든 한국인 산업공학도는 공장에 취업할 생각을 하지 않고 데이터나 개발 쪽으로 빠지지만.(나도 그러려고 했다) 이렇게 굴러들어 온 기회가 있는데 안 잡을 내가 아니었다.


개인적인 이유로는 할아버지가 있다. 할아버지는 젊은 나이에 기회를 잘 잡으셔서 대기업 하청 공장의 사장님이 되셨다. 그리고 3대가 먹고살 수 있을 정도의 막대한 부를 축적하셨다. 이런 할아버지의 성공스토리는 나에게 공장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할아버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할아버지의 성공스토리의 핵심은 '기회를 잘 잡는 것', 그래서다. 이런 기회가 왔을 때, 다들 ‘왜 하필 태국이냐’, ‘왜 하필 공장이냐’고 묻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말할 수 있었다.


"공장이니까요."


그게 비록 인턴일지라도, 내게는 너무도 ‘나다운 출발점’이었다. 대학 생활이 너무 즐거워 졸업을 1년 반이나 미룬 나에게, 이번 인턴십은 아마 처음이자 마지막 "산업공학스러운 일"일 것이다. 내가 이보다 더 전공에 알맞은 일을 할 경험이 주어질까?


그래서 결심했다. 나는 이 인턴을 통해서 내 오랜 대학생활을 정리하고 성불하리라. 그렇게 2025년 6월, 22살의 나는 태국의 공장에 공정 자동화 엔지니어로 들어가게 되었다.


근무시간이 8시부터 5시까지이고 시급이 2300원이라는 사실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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