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리어 고민을 해야할 나이가 되었다.
02년생이 커리어 고민을 시작할 나이가 되었다. 내 또래들 중 대부분이 이제 취업을 준비하거나, 이미 회사에 취업해 있을 것이다. 20대 초중반 답게 나 또한 항상 커리어 고민을 하고 살아오고 있는데,
최근에 내 인생의 방향을 바꿀만한 결정을 할 일이 생기게 된다.
내 상황은 이렇다.
브런치에 일기를 올리는 것 처럼 나는 홍콩 대학을 다니는 도중 방학동안 태국 공장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다. 세상이 너무 넓고 배우고싶은것도 많고 하고싶은것도 많은 나이라, 원래는 인턴 3개월이 끝나면 다른 나라를 찾아가 랩실 인턴을 하며 연구를 할 계획이었다.
3년 전부터 LLM(Chatgpt같은 AI를 다루는 학문을 말한다)에 관심이 많고, 최근에 그 중에서도 특히 관심이 생기는 연구분야가 있어 개인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차에, 관련 논문을 쓴 교수님이 미국에 있다는 정보를 듣고 무작정 그 교수님에게 메일을 보내서 미국 대학에서 랩실 인턴을 하고 그 대학의 대학원에 진학하는게 원래의 계획... 이었는데,
지금 일하고 있는 이 태국 공장의 사장님이 날 좋게 봐주셔서 정규직 제안이 들어왔다.
조건이 완벽했다. 내가 대학원에 가고싶다하니 내년 7월까지 일하는거로 알고 있겠다, 퇴사는 자유라면서 내 상황을 완벽하게 이해해주고, 내가 아직 졸업 전이라 중간에 홍콩에 돌아가서 시험을 쳐야한다, 하니 그것 또한 휴가를 주겠다, 내가 따로 하는것이 많아 한국에 계약하러 가야한다고 하니 일주일에 내가 원하는 날만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 라고 한다.
(비자가 필요하니) 정규직 타이틀을 단 계약직 느낌인데, 계약 기간이 있는것도 아니고 내가 중간에 마음을 바꿔 대학원을 가지 않으면 계속 일하게 되는 그런 포지션인것이다. 아니 회사가 이래도 되나? 싶겠지만 최고 인사권자가 내린 결정이니까 뭐든지 맞춰줄 수 있다... 라는게 부장님의 설명이다.
솔직히 이 회사만큼 내 상황을 이해해주는곳도 드물 것이다.
아직 졸업 전이니 다른 회사를 들어가더라도 인턴이나 채용전환으로 들어갈 것이고, 중간에 홍콩을 왔다갔다 해야하는 입장을 어떻게 이해해주고 채용할까... 라는 생각도 든다. 더군다나 프리랜서로 투잡을 뛰는 나를 배려해 1주일에 원하는 날만 일하게 해주겠다니.
아니, 대체 내가 뭐길래 직원 2000명인 회사에서 이렇게까지 해주냐 싶다면
나도 모른다.
그냥 내가 AI 잘 활용하는 MZ라는점이 마음에 들었나 보다.
지금까지는 좋은것들만 말했지만 사실 현실은 참혹하다.
나는 상사가 없다. 지금은 Engineering trainee라는 직책으로 상사없이 다른 부서들과 협업하며 혼자 프로젝트를 하는 상황인데 (회사의 문제를 머신러닝으로 해결하고있다) 정규직으로 전환해도 상사가 없는건 똑같다. 즉 배울 사람이 없고 모든것들을 나 혼자 독학해서 공정자동화를 해야한다. 이렇게 혼자 배워서 한 프로젝트가 커리어에 도움이 될까, 내가생각하기에 내 머신러닝 실력은 신생아 수준인데 상사 없이 얼마나 배울 수 있을까, 경력으로 인정이 될까, 가 첫번째 고민.
두번째 고민은 이 회사에서 1년 넘게 일하면 난 더이상 신입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로지 이직으로만 이 커리어 시장에서 살아남아야 하는데 태국 연봉이라면 이직할때 도움이 될 리가 없다. (홍콩 회사니까 홍콩 연봉으로 받으면 좋으련만) 결정을 하기 전에 연봉에 대한걸 미리 알아야 하겠지, 그렇다면 어떻게 물어보지… 모든게 처음인데 물어볼 사람조차 없다.
여기까지 내 고민을 함께 읽고 고민한 분이 있다면 허무한 말이겠지만 난 이미 첫번째 고민에 대한 해결책을 고안했다.
바로 회사에서 말하는 “업무시간을 자율적으로 설정하게 해주겠다” 제도를 이용해서 투잡을 뛰는것. 태국에 지내는 교수님 중에 computer vision (내 주 프로젝트) 에 조예가 깊은 교수님을 찾아가서 랩실에 들어가 배우는것이다. 월~목은 회사, 금~일은 랩실 이런식으로!
이러면 내 비전문성 문제와 상사부재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 (좀 또라이같은 생각이기도 하고 교수님을 찾는것도 어렵겠지만)
하지만 객관적으로 내 실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이런식으로 첫 직장을 시작하는게 맞나 싶은 고민도 있다. 단지 인정받는 상황에 취해서 충동적으로 결정하는게 아닐까, 한국으로 돌아가거나 다른 직장을 가면 수많은 사람과 경쟁을 해야하는데 그게 두려워서 회피하는거 아닐까,
하지만 곧 내 과거 행적을 되돌아보면 지금 이 회사에 들어가는 선택이 맞다는 생각도 들긴 한다. 항상 나는 성과로 증명하는 사람이었다. 나와 함께 일하던 사람들은 (나한테 자율적으로 일을 맡기고 성과를 보고받는 사람들은) 항상 내 성과를 좋아했고 나와 함께 일하고 싶어했지만 같이 일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나의 가치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지금 그 취업경쟁에 뛰어들어 내 가치를 어필하는것보다 이번 기회를 잡는게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기울게 된다. 나는 경쟁에선 약한 사람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자기PR엔 강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다수의 사람들에게 날 무작위로 노출시켜 상대가 날 먼저 발견하게 만드는것은 쉽지만 다수 중에서 눈에 띄기는 어렵다. 제안을 하는 것보다 제안을 받는것에 익숙한것.)
연봉 고민만 해결된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