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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마 B Jan 24. 2022

출근하는 강아지

한국으로 이민 온 말티즈의 수난


말티즈, 이름은 순이, 이름에서 짐작하겠지만 여자이고, 미국에서 태어났으며, 보스턴 외곽의 'Liberty treemall'이라는 쇼핑몰 안에 있는 pet shop에서  적지 않은  돈을 지불하고 데리고 왔다.

미국 보스턴에 도착한 후 애들의 미국 생활 적응을 돕기 위해 만장일치로 말티즈를 입양하기로 정하고 가장 한국적인 이름인 '순이'라 부르기로 했다. 순이는  나의 초기 미국 생활 적응을 도운 일등공신이며 우리 가족이랑 동고동락하며 가족의 일원이 되어 떨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나는 미국이란 낯선 곳에서 막 살기 시작했고, 3개월 된 순이는 가족과 떨어져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의 집으로 왔기에 우리는 서로 처지가 비슷했었다. 동병상련을 느끼며 어른 손바닥만 한 크기의 순이와 친해지려고 밥과 간식, 물을 주고 목욕도 시켜주며 기대어 잘 수 있는 나의 팔과 다리도 빌려주었다.

그런 순이가 지금은 나이가 들어 예전처럼 활발하지도 않고, 내 발치에 딱 붙어 자다가 지금은 혼자 거실에서 잔다. 순이의 걸음걸이를 보면서 가장 이해를 잘해주는 사람은 나의 엄마다. 80대의 엄마만큼 나이가 든 순이를 볼 때마다 생각나는 게 있다.


수년간의 미국 생활을 마치고 나와 함께 한국으로 온 순이는 서울의 아파트라는 주거환경에 적응을 해야 하는 난관에 봉착했다. 층간 소음이 심해 위층 사람이 재채기하는 소리까지 들리는 아파트 구조인걸 순이가 알 턱이 없었다.  미국에선 한 번도 문제가 되지 않았던  순이의 짖는 소리가 한국에 와서 문제가 될 줄이야 나조차 꿈에도 생각지 못 한 일이었다.


한의원에 조금씩 환자가 늘기 시작하고 진료에 나의 열정을 쏟아붓고 있을 때 , 집에서는  순이가 짖자마자 1초 뒤 아래층 사람의 민원으로  경비실에서 걸려오는 인터폰 벨소리가 울려대고 출근하자마자 아파트층간소음 분쟁 팀장(이런 부서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 고심 끝에 순이를 데리고 출근하기로 결심했다.

일주일 중  4일은 집에 반나절씩 사람이 있었으나  조금이라도 짖으면 인터폰 소리는 울려댔다. 사람이 없는 주중 하루는 순이와 함께 출근을 시작했다.


영하 10도 아래로 내려가는 추운 겨울  아침, 40도를 넘나드는 여름을 지내며 일주일에 한 번 순이는 나와 출근을  해 하루 종일 한의원에서 놀았다.

내 방에 있던 순이는 환자가 들어오는 문소리에 나가고 싶어 진료실 문을 긁다가 약간 열린 문으로 뛰쳐나가서 환자를 맞이했다.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순이로 인해  한의원은 오히려 활기가 넘쳤으며, 심심하지 않았다. 환자분들도 치료받기 전에 순이를 보면서 한 마디씩 하시며, 몸이 불편해 굳어 있던 얼굴들에 오히려 웃음이 가득했다. 그리고 환자가 늘고 있었다. 궂은일만 있으라는 법은 없나 보다라고 생각하며 일그러진 내 마음을 위로했다.


그 당시 나도 위층의 소음 때문에 잠을 못 들 때가 많았었다. 저녁 9시 이후에도 아이들이 쿵쾅거리고 소리 지르면서 뛰는 소리, 10시 넘어 자려고 누우면 크게 틀어놓은 텔레비전 소리에 어떤 뉴스를 듣고 있는지 환히 알 정도였다. 그래도 꾹꾹 참으며 버티고 살았는데 출근하자마자 받아야 하는 아파트 층간소음 분쟁 팀장의 전화는 이 세상에서 가장 불편한 전화였다. 그 팀장도 몇 번 나와 통화를 하다가 나중엔  미안해할 정도였다.


순이를 데리고 다니면서 힘이 들 때마다 "아래층 사람 어쩜 그럴 수가 있지?"라는 생각은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내겐 자식처럼 너무 예쁜 강아지이지만 개나 강아지를 싫어하는 사람에겐 짖는 소리가 싫을 수도 있겠다 생각하니 미워했던 감정이 좀 수그러 들었다. 아래층 사람이 힘들어하는 부분을 해결해 주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한 보답을 받는 건지 서서히 아파트 팀장의 전화가 뜸해졌다. 그리고 위층 사람들은 이사를 나가고 훨씬 평화로운 밤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외출도 제대로 못하고 새벽 운동까지 포기하며 순이의 짖음을 막으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했었고, 대립이 싫어 해결을 모색했고, 그 해결은 이렇게 끝이 났다.

발을 동동 구르며 한의원에서 진료하며 팀장의 전화를 받고, 해결책을 강구하느라 진땀 빼며 힘들었던 그때의 순이가 젊고 원기가 왕성했었다는 사실이 지금은 그립다.


나와 같이 한의원에 출근했던 순이가 이젠 잘 짖지 않는다. 잠을 자는 시간이 많고, 바깥소리에 민감하게 반응을 하지 않는다. 나이 든 순이는 나와 함께 했던 추억을 기억할는지, 한의원에서 환자들을 맞이했던 기억이 있는지 물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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