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 다시 다녀보는 게 어때?

by 흔적




직장에 다시 다녀보는 게 어때?



아이 낳고 키운 후 나중에 다시 직장에 다녀보는 게 어때? 스쳐 지나가는 이 말 한마디는 꽤 오랜 시간 내 머릿속에 잔상으로 떠돌다 '이 빌어먹을 프리랜서'라는 시리즈의 글을 쓰게 만들었다. 강요하는 말도 아니었고 내 사정을 자세히 알고 한 말도 아니었다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나는 한동안 바보처럼 이 한 마디에 얽매여있었다. 그 누구도 나에게 그런 말을 쉽게 할 권리가 없다며 씩씩대기도 했다.


내 삶의 방향에 대해 무어라 말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나와 함께 인생을 꾸려가고 있는 남편 한 사람뿐이라고 생각한다. 내 선택에 영향을 받는 사람이니까.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타인이 내 진로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달갑지 않다. 남편조차도 내게 그런 말을 했다면 참기 힘들었을 거다. 다행스럽게도 내 남편은 내가 하고자 하는 일들에 대해 의아할 만큼 무조건적인 신뢰와 응원을 보내주는 사람이라 그의 한 마디에 괴로워 밤잠을 설쳐본 적은 없다.

그는 내가 얼마나 일하고 또 얼마나 놀면서 어떻게 돈벌이를 하는지 소상히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모습이 어떠하든 나를 이해해준다.


그래, 그런 말은 잘 몰라야 무심하게 던질 수 있는 말인 거다.










No 연금, No 보험, No 점심값, No...



회사에서는 4대 보험도 알아서 내주고 따로 세금 신고하려고 따로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때 되면 건강검진도 해주고 나이 들면 연금도 나온다. 그거 말고도 회사에서 챙겨주는 대소사는 많고도 많다. 그리고 회사에선 밥도 주고 밥도 주고 또 밥도 준다. 그 모든 것의 안락함을 모르고 경험해보지 않아서 춥고 바람 부는 울타리 밖으로 나온 게 아니다. 프리랜서는 모든 걸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연금도 낼 건지 말 건지 내가 선택해서 내가 번 돈에서 해결해야 하고 건강검진도 내가 챙겨야 한다. 프리랜서라서 안 좋은 점은 솔직히 얼마든지 더 나열할 수 있다. 얼마든지 더.


그런데 그 귀찮은 선택지와 알아서 해주는 많은 것들이 나를 더 잘 살고 있다고 느끼게 해주는 가 하면, 꼭 그런 건 아니다. 연금은 정말 나의 노후를 보장해줄 수 있을까. 국가의 연금 운영은 내가 나이 들 때까지 흑자를 남겨 나에게 풍족한 연금을 선사해줄 것인가. 믿을 게 없어서 국가를 믿고 직장만 다니면 내 인생 행복하게 마무리 지을 수 있을까. 부자 될 수 있는 건가. 그래서 우리 애도 연금 빵빵하게 받을 수 있는 선생님이나 공무원 되라고 어릴 때부터 이야기해주어야 할까. (물론 본인이 하겠다면 하는 거지만..)


직장인이라서 좋은 점을 열거하면 힘없는 프리랜서는 할 말이 없다. 그저 맥이 빠질 뿐이다. 나를 부정당하는 기분이 든다. 내가 믿고 있는 것들이 한순간에 아무것도 아닌 게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점심에 다 같이 억지로 돈 써서 외식하러 나가지 않아도 되고 눈치 보며 야근하지 않아도 된다고 자랑이라도 해야 할까. 집에서 일하니까 옷 입는 거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교통비도 아낄 수 있다며 매력을 어필해야 할까.


왜, 무엇 때문에, 굳이..










직업이 아닙니다.



직업도 분야도 아닌, 고용의 형태에 대해 이렇게 목놓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프리랜서들은 자신을 부정당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 살아가는 모습을 정의하려고 애쓰는 듯하다. 나도 그중 한 명이고. '회사 다녀요.'라는 한 마디는 가끔은 슬프게 들릴지는 몰라도 아무도 그 말에 토를 달거나 의문을 갖지는 않는다. 그렇구나. 하고 끝이다. 프리랜서도 그렇게 좀 명료해질 순 없을까. 내가 어떤 전공을 선택해서 이 직업을 갖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것보다 어쩌다가 프리랜서가 되었고 왜 이 빌어먹을 프리랜서를 여태껏 하고 있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 한 마디로 대답할 수 없어서 이런 글들을 토해내듯 쏟아내고 있나 보다.


어릴 때부터 꿈이 프리랜서였다고 말할 수도 없고, 프리랜서를 한 덕에 돈방석에 앉았다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뭐 자랑거리를 필요로 한다면 뭐라도 꼬깃꼬깃 꺼내서 지어낼 수야 있겠지만, 도대체 내가 나의 고용 상태에 대해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느냔 말이다. 가끔은 누가 물어볼까 봐 겁이 나기도 한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하는 것이 간단하고 토를 달지 않는 방법인지 모르겠다.


그저 나의 건강한 정신이 그런 말들과 반응에 나의 자존감을 깎아먹는 시간을 보내지 않게 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내가 흔들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얼마나 이루고 무엇을 해냈냐고 물어본다면 아직 이렇다 할 성과는 없을지라도. 어차피 아직 다 산 것도 아닌데, 인생의 마지막에 해야 할 숙제 검사를 미리 받는 기분이다. 그럴 때마다 속으로 외친다.



"아직 끝난 거 아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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