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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한 중독, 하리보를 끊지 못하는 이유

by 수수

나는 초콜릿보다 젤리를 좋아한다.

말랑하고, 쫄깃하고, 색감도 예쁜 그것들.

손끝으로 집어 입안에 넣는 순간

퍼지는 상큼하고 향긋한 맛.

푸딩도, 곤약도 좋아하는 건 그런 이유에서 일 테다.

그리고 그 모든 젤리 중

나의 최애는 단연 하리보(Haribo)다.

그중에서도 곰돌이 모양의 그것.

노란색, 빨간색, 초록색, 투명한 흰색까지 —

하나하나 고르고 먹는 재미가 있다.


하리보와의 첫 만남은 아주 어릴 적이다.

유치원도 가기 전,

'영재 선생님'이라는 분이 우리 집에 오셨다.

나는 영재도 아니었고,

수포자의 길을 걸은 사람인데,

수업 이름이 영재 수업이었다.

이름이라도 그렇게 지으면

애들이 영재가 될 거라는 부모님들의 소망이 담겼을까.


동네 비슷한 또래 3~4명이

거실 마루에 모여 작은 상 하나 펴놓고

글자를 배우고 셈을 하고 그림을 그렸다.

한 시간 남짓, 어린 나에게는 제법 버거운 시간.

하지만 그 시간이 끝나면,

선생님은 작은 보상을 주셨다.

젤리 하나. 마이구미, 꿈틀이,

그리고 가끔은 하리보 곰돌이 2개.

젤리를 받는 그 순간만큼은

모든 게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나는 특히 하리보 골드베렌을 제일 좋아했다.

다른 젤리보다 단단한 그 식감이 좋았다.

쫄깃과 단단함의 경계선.


지금도 가끔 마트나 편의점에서 하리보를 보면

반사적으로 손이 간다.

‘골드베렌(Goldbären)’ — 금곰 젤리.

독일에서 1920년에 처음 만들어졌고,

무려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졌다.

처음엔 곰이 아니라

춤추는 곰 서커스에서 영감을 받은 모양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브랜드명, Haribo는

창립자인 한스 리겔(HAns RIegel)과

도시 이름 본(BOnn)의 앞글자를 따서 만든 것이다.

"Haribo macht Kinder froh."

“하리보는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 준다.”

지금은 이어서 “und Erwachsene ebenso!”

“그리고 어른들도 마찬가지로!”라는 문구까지

덧붙인다.

맞다, 나도 그 어른 중 하나니까.


어른이 되어 젤리를 씹을 일이 많아진다는 건,

어쩌면 그만큼 삶이 씁쓸해졌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무언가를 씹으며 달콤함에 집중하고 싶은 시간들.

그럴 때면 나는 하리보를 꺼낸다.

곰돌이 하나, 둘 꺼내어 혀끝에서 굴리고,

꼭꼭 씹는다.

오렌지맛은 유난히 상큼하고,

초록색은 은근히 풋풋하다.

딸기맛은 너무 사랑스럽고,

흰색은 가장 부드럽다.

그리고 그 식감.

단단하고 질긴 그 감촉은,

어릴 적 내게 남은 몇 안 되는

확실한 기억 중 하나로 돌아가게 해 준다.


젤리 하나에 담긴 기억이,

이렇게 사람을 물끄러미 멈춰 세우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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