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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카페: 1평의 힐링 아지트

by 수수

나는 어릴때 만화를 금지당했다.

엄마가 학원을 운영하셨었는데

음.. 이하 생략하겠다.

서울 8학군, 태풍의 눈에서 자랐다고 보면 된다.

만화는 그 시절 나에게 금단의 열매였다.


그렇지만 엄마는 몰랐다.

내가 어른이 되면서 ‘만화카페’라는 곳이

전 국민의 쉼터로 자리 잡게 될 줄을.


2000년대 초중반, 만화방이라는 공간은

어둑한 형광등 아래 좁고 소란스러웠다.

요금은 저렴했지만, 여름엔 덥고, 소파는 헤져있었다.

그럼에도 어디에도 없는 시간의 흐름과 자유가 있는

그런 공간이었다.


그러다가 2010년대 이후 만화카페로 진화하기 시작했다.

놀숲, 벌툰 같은 브랜드는

프라이빗한 토굴, 한옥 인테리어 같은

감성까지 갖춘 형태로 다시 태어났다.

웬만한 카페보다 더 섬세한 취향이 담긴 공간.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곳은 벌툰 몽유도원 지점들이다. (광고 아님)

온갖 만화카페를 전전하다 발견한 페이보릿 플레이스.

제일 있기 편안하고, 깨끗하다.


그곳에서 나는

OTT를 틀어두고 누워서 스낵을 먹으며

만화책과 웹툰을 보다 잠든다.


이제 만화카페는

만화책만 있는 공간이 아니다.


배고프면 키오스크로 떡볶이를 주문하고,
지루하면 닌텐도와 보드게임을 꺼낸다.
혼자 조용히 있고 싶을 땐
넷플릭스를 틀어놓고 누워있으면 된다.
깨끗한 인테리어는 기본 옵션이다.


만화카페는 이제 단순한 ‘책 읽는 곳’을 넘어
‘내가 사라지고 싶은 곳’이 되었다.
숨어서 회복하는, 작은 요새 같은 공간.


예전에는 '혼자 있는 삶' 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이 많았고

외롭다거나, 친구가 없거나, 이상한 사람처럼 여겨졌던 것 같다.

하지만 특히 요즘 들어 느끼는 것은

혼자 있는 법은 능력이 되었고,
‘자기 돌봄의 기술’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혼밥 > 혼카페 > 혼캠핑.
‘혼자 쉬는 법’을 배우는 공간들.
만화카페도 그 흐름 위에 있다.


나의 삶은 그러지 않으려 해도
늘 뭔가 계획되고, 기록되고, 공유되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
그걸 사러 오는 것 같기도 하다.


왜 이 공간이 좋은지,
꼭 말로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다녀오면 조금 더 '괜찮은 나'로 돌아오는 건 확실하다.
그래서 나는 또, 1평짜리 아지트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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