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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인 Aug 12. 2023

의학드라마가 실제랑 다른 점

내가 의학드라마를 더 이상 못 보는 이유

의대 입학 직전에 "뉴하트"라는 의학드라마를 봤다. 멋지고 예쁜 흉부외과 의사들이 뛰는 심장을 막 수술하고 매화마다 "브이텍입니다!!"대사와 함께 긴장감 있는 OST덕분에 드라마에 푹 빠져들었다. 게다가 흉부외과 레지던트 지성과 김민정의 간질간질한 러브스토리까지! 같이 의예과 입학한 친구들도 뉴하트를 좋아했던 애들이 많았다.


가끔 여자들끼리 남자 동기들한테 장난을 쳤는데

"아~ 난 의대 오면 지성이 있을 줄 알았는데."라고 했고 남자애들은 

"야 우리도 김민정이 있을 줄 알았거든?" 하면서 받아쳤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의사꿈나무들에게 의학드라마는 의사가 되고 싶은 마음을 더 강하게 만들어주기도 하고 또 내가 저 드라마 주인공이 된 것처럼 설레고 꿈꾸게 만들어준다.


그림 출처: https://program.imbc.com/newheart


그런데 본과 3학년 의대 실습 이후로 더 이상 의학드라마를 그냥 보기가 힘들어졌다. 원래 그렇지 않을까? 자기 직업에 대한 드라마는 보기 힘들다. 현실과 다른 부분들을 자꾸 지적하게 되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극적인 재미를 위해 현실적이지 않은 요소들과 손발이 오글거리는 상황들을 자꾸 추가하는데 아마 자기 직업에 대한 드라마를 보려면 상당한 항마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재미로 그동안 쭉 생각하고 있던 의학드라마와 현실의 차이 중 몇 가지에 대해 생각을 적어보았다.



의학드라마와 현실 차이점 - 1


1. 수술을 지켜볼 수 있는 2층 관람실 (feat. 원장님 한가하세요?)

출처: www.imbc.com

이건 해외 의학드라마에서도 흔하게 봤던 것 같은데 수술실 위에 2층에 다들 모여 앉아서 사람들이 무슨 축구 경기 관람하듯이 수술을 관람하러 온다. 아직까지는 내가 가본 병원 중 저런 수술실이 있는 곳을 본 적이 없다. 옛날에는 잠깐 live surgery 용으로 있었을지는 몰라도 요즘에 저런 곳은 공간 낭비이다.


우선 저 정도 높이에선 수술이 하나도 안 보인다. 학생과 레지던트 시절 수술을 배우기 위해서 수술자 바로 뒤에 발판을 놓고 올라가서 무균공간과 몸이 닿지 않도록 안간힘을 쓰며 기웃기웃거리거나 위에 달린 카메라를 통해 촬영하면서 수술을 봤었다. 요즘 대부분 복강경 또는 로봇 수술을 많이 하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할 필요 없이 모니터로 수술을 보면 돼서 굳이 저 2층이 아니어도 편하게 수술을 볼 수 있다.


무엇보다 드라마 보면 수술을 관람하러 오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다들 정규시간에 너무 한가한 것 아닌가? 병원장이 사실 그렇게 한가한 존재가 아닐 텐데 거의 팝콘 들고 단골처럼 매 수술마다 구경하러 간다. 뿐만 아니라 가끔 드라마 보면 의대 학생이나 전공의는 물론 병동 간호사, 양복 입은 외부인들, 별 희한한 사람들이 다 구경 온다. 현실에는 트레이닝을 위해서 그렇게 수술 보러 오라고 노래를 해도 병동에 업무가 많아서 레지던트 주치의들이 자발적으로 내려오지 않는다. 병동 간호사들은 근무 중에는 업무가 빡빡하고 쉴 틈이 없다. 원장님은 내가 원장이 되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잘 모르지만 매번 저렇게 한가하시진 않을 것이다.


바쁘게 돌아가는 병원에서 저렇게 꿀잼 관람을 할 시간이 없는 건 진료량이 많은 우리나라만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요즘에는 그리고 저런 라이브 서져리에 대한 법이 강화되어 있어서 관계자가 아니면 수술실에 들어오는 것도 어렵다. 라이브서져리는 의학발전을 위해 학회에서 가끔 시행되기도 하는데 위험성이 동반되기 때문에 사전에 무조건 환자의 동의를 얻고 관련 없는 자들은 절대 참가할 수가 없다.



2. 통유리로 된 고층 교수연구실 (그리고 한 10평은 되어 보이는 사무실!)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6q44IVhjcuE

기아 K7 자동차 광고를 본 적이 있다. 거기서 순환기내과 교수님의 사무실이 잠깐 나오는데 통유리에 채광도 장난 아니다. 저런 근사한 사무실에서 촬영하니 대학병원 의사들이 모두 럭셔리 생활을 한다고 오해한다. 실제로 우리병원의 닭장같은 사무실을 보여줬어야 했는데...


사실 사무실은 병원마다 차이가 있다. 땅이 넓고 사람이 별로 없는 지방의 경우 공간의 여유가 좀 있는데 수도권의 메이저 병원들은 대부분 50대 초반까지 2인 1실로 사무실 방을 나눠 써야 하고 방 크기도 좁다. 우리병원 신규 교수들은 운이 나쁘면 따로 방도 없고 전임의 도서실 같은 곳에서 개인 책상만 배정된다. 근데 대부분의 교수들은 사무실에 대한 큰 불만 없다. 적당히 일하고 연구할 공간만 있으면 된다.



3. 영 앤 핸섬/프리티 싱글 교수들

이 얘기가 핵심이다.

드라마니까 주인공들이 다 잘생기고 예쁜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나이다.


많은 의학드라마가 수술과를 소재로 삼는데 주 수술자(operator)가 되려면 대부분 병원 교수여야 한다. 교수가 되려면 의예과 2년, 의대 본과 4년, 인턴 1년, 레지던트 3-4년, 펠로우 2년... 거기에 남자는 군대 3년을 다녀와야 한다. 수술을 집도할 수 있는 교수가 되려면 아무리 어려도 30대 중-후반인데 대부분은 결혼했다. 그리고 수술을 어느 정도 잘하고 전성기 궤도에 오르려면 40대 중반은 되어야 하는데... 그런데 드라마는 러브라인을 넣어야 해서 교수들이 죄다 싱글이고 젊다. 그나마 요즘은 결혼적령기가 많이 늦춰져서 30대 싱글들이 많이 생겼다. 특히 군대를 안 가도 되는 젊은 여교수 중에는 싱글도 꽤 있는 편이다. 그러나 드라마처럼 여자 교수가 남자 레지던트와 섬씽이 생기고 그러는 일은 매우 드물다(very rare! 없다는 것은 아니다).


어느 날 티비에서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나오길래 봤다. 슬기로운 의사생활도 역시 판타지적인 요소가 많은데 간혹 꽤 공감 가는 부분도 있어서 의사들도 많이 보더라. 우연히 봤던 에피소드에서 어떤 레지던트가 주인공 여자 교수한테 도울 일 없냐고 자기 논문 데이터 정리하는 거 좋아한다고 하자 여자 교수가 "너 나 좋아하니?"라고 말했다. 일단 여기서 가장 판타지는 논문 데이터 정리하는 거 좋아하는 전공의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약 진심이면 정말 찐사랑이다.




                    

오늘은 여기까지 정리해 보았다. 혹시 생각이 나면 파트 2를 준비해보려고 한다.


비현실적인 부분은 어쩔 수 없지만 그런 것이 드라마의 재미 아닐까? 대학병원의 현실은 드라마보다는 훨씬 더 정신없고 더 담백하면서 때론 더 극적이다. 사람 사는 모든 일들이 그러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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