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캠핑에 진심인 것 같아."
어느 날 저녁, 식사를 하다가 큰 아이가 말했다.
깔끔쟁이 남편은 사람들이 왜 추운데 고생하며 길바닥에서 잠을 자는지 모르겠다던 사람이다.
차라리 호텔이나 깨끗한 숙소를 이용하지 사서 고생한다며 본인은 평생 캠핑이라고는 안 할 것처럼 말했던 사람이다.
그런데 코로나 6개월 차쯤 접어들고, 늘 다니던 주말여행이 가능하지 않으니 아이들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캠핑을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장비도 없어 차박을 하자더니, 얇은 텐트가 하나 생기고, 몇 번 가다 보니 우리도 거실 있는 텐트가 있으면 좋겠다며 좀 큰 텐트도 사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이가 말하는 아빠의 캠핑 진심은 정확하게는 캠핑 '예약'과 캠핑 때 먹을 '음식'에 진심이라는 것이다.
물건을 막 사서 모으는 스타일이 아닌 미니멀리스트인 남편은 텐트 물건을 많이 사지는 않는데 어찌나 캠핑장을 열심히 예약하는지.
오늘 올해의 첫 캠핑 예약을 필두로 아마 6월까지는 쭉 예약이 되어 있는 듯하다.
사실, 캠핑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남편이 'J'형인지 전혀 모를 뻔했다. 보통 내가 계획하면 다 좋다고 따라 오는 사람이었는데. 캠핑을 본인이 계획하고 준비하다 보니 엄청난 계획형이었어. 평 좋고 사람이 많지 않은 캠핑장을 2-3주 간격으로 열심히 예약해 두었을 것이다.
또 하나, 가서 먹을 5끼의 식사를 모두 시뮬레이션 해서 한 주쯤 전에 모두 장을 봐 둔다. 상추도 모두 씻어가고 양념도 양념통에 모두 소분해서 가지고 간다.
참, 열심히 하더라. 그래서 남편에게 이렇게 고생하면서 왜 굳이 캠핑을 가?라고 물어보면
'애들이 갈 곳이 없으니까'라는데 본인이 좋아하지 않고서야 어찌 저런 정성을 들일 수가 있을까.
오늘, 첫 캠핑인데 아이들 태권도 승급 심사가 오전에 있었다.
이미 캠핑 짐은 싸서 차에 실어 놓고 화장실 청소와 아이들 실내화를 빨아 놓고 캠핑에 나섰다.
아, 오늘은 내가 캠핑에 잘린 날이다.
이제 나는 캠핑 안 와도 된다고 아들 둘이랑만 가겠다는 통보를 받은 날.
작년에 글 쓴다고 한창 바쁠 때 아들들과 함께 캠핑을 떠나곤 했었는데 그렇게 떠나보니 좋았던 모양이다.
캠핑 가서 자꾸 춥다고 심심하다고 옆에서 징징대다 보니 잘렸다. ㅋㅋ
텐트치는 것도 이제 어느 정도 수월해지고 큰 아이가 나만 해지니 함께 도우며 치는데 문제가 없는 것이다.
아빠와 아들들만의 시간.
아들들이 좀 더 클수록 캠핑 가서 아빠와의 대화의 시간이 생기고 함께 한 경험이 많이 쌓이면 좋겠다.
고마워. '잘림'이라고 듣고 '배려'라고 생각할게.
쭉 잘릴 수 있게 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