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를 갈 때마다 여운이 느껴지는 곳이 간혹 있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고 평생을 서울에서만 살았기 때문에 촌놈이라는 별명도 어느 정도 어울릴 정도로 서울살이밖에 할 줄 모르고 서울깍쟁이처럼 까탈스럽고 더러운 걸 못 본다. 나는 내가 결벽증이 있는 줄 알았지만 어려서부터 시골에 살고 단독주택이나 자연과 어울려 산 사람들은 대개 더럽다는 것에 익숙하고 적응이 되어 그렇게 까탈스럽지 않은 듯하다. 그게 사람마다 성격이 다른 건지 아니면 정말로 어린 시절부터 그런 것들을 겪어왔기에 그럴 수 있는 건지는 모르겠다.
나도 아주 어렸을 때 아빠의 지인이 주문진 바다 바로 앞에서 민박을 운영하셨는데 민박답게 화장실은 늘 더러웠고 악취가 코를 찔렀다. 민박 특유의 물을 바가지로 퍼서 흘려보내야 하는 그 특이하고도 이상하게 생긴 소변기를 잊을 수가 없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런 곳에서 어떻게 잠을 자고 씻고 했는지 모르겠다. 나이가 든 지금은 민박은 정말 어쩔 수 없으면 가겠지만 선택지가 있다면 절대 선택하지 않을 곳이다.
민박의 따듯함도 어르신들의 배려도 너무나도 좋지만 그 외 내가 감당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서 선호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서울 이곳저곳을 정말 많이 돌아다녔다. 안 가본 동네가 거의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가는 곳마다 추억이 희미한 곳이 있다. 정확히 기억나지만 정확히 기억하려고 하면 어차피 그 과거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은 나 자신이기 때문에 또렷하게 기억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장소, 어느 편의점, 어느 신호등, 어느 지하철 역의 입구를 볼 때마다 또렷이 기억난다.
나는 가끔 해리포터에 나오는 덤블도어처럼 기억을 소멸하고 싶은 때가 아주 많다. 나의 생각은 쓸데없는 것들이 많고 다 소멸되어 사라져도 문제가 없을 정도로 사소하고 예민한 것들이라 사라졌으면 좋겠다. 어느 곳을 가더라도 이미 추억이 있는 곳을 가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는 사람이 있긴 하겠지만 나처럼 모든 장소, 모든 건물이 또렷이 기억나는 사람은 없을 거다. 물론 재연하듯 완벽히 기억나는 것은 아니지만 80% 이상은 기억을 하고 그 순간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있다. 그날로, 그날의 감정으로 돌아가서 모든 것을 느끼고 깨닫는다.
아, 나는 늘 실패한 선택을 했구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