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관찰

by empty

어려서부터 남의 눈치를 보고 자라와서 그런가 남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한다. 엄마도 젊었을 때 사람들이 많은 곳의 벤치에 앉아서 사람들을 한 시간 동안 구경했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 말이 잊히지 않고 계속해서 떠오르는 것은 아무래도 나의 기억에 깊이 자리 잡았나 보다. 나도 가끔 빨리 갈 수 있는 지하철을 놔두고 굳이 돌아가는 버스를 타면서 밖의 세상을 구경하고 계속해서 관찰한 적도 있다. 지하철로는 25분이면 가는 거리를 1시간 40분이라는 시간으로 돌아간 적도 있으니 그 정도로 버스가 좋은가보다. 나에게 있어서 지하철은 이성, 버스는 감성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빠는 그런 의미에서 무조건 지하철이었다. 아빠는 감성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하고 사물, 풍경, 그 순간의 감정, 분위기, 온도, 대화의 온도 등 모든 것을 느끼려고 한다. 서랍처럼 하루하루의 기억들이 들어있다. 물론 모든 것이 완벽히 로봇처럼 담겨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하나의 생각이 물꼬를 트면 그때로 돌아가는 것처럼 느낀다. 걸었던 시간, 걸었던 분위기, 걸었던 거리, 지나쳤던 사람, 함께 했던 사람 등이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연쇄작용을 한다. 요즘 블록체인과 크립토, nft에 빠져있어서 그런지 자꾸만 내 인생이 블록체인처럼 계속해서 엮이고 있다. 줄줄이 사탕처럼.


기억이 나지 않을 때도 있지만 그래도 모든 것을 기억하려고 한다. 어제는 크립토 강의를 들었는데 만났던 사람들, 처음 만났지만 이름과 얼굴을 익히기 바빴고 다행히도 몇 번 뵈었던 사람들과 한 조가 되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콘퍼런스처럼 열리는 강의를 준비하는 데 걸리는 시간과 노력이 굉장하구나, 사람이 주체가 되어 행사를 진행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구나 하는 것마저도 느꼈다. 그러면서도 사람을 관찰할 수 있어서 더 좋은 것 같다.


처음에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는 내 감정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그게 점점 발화되어 커져가고 있다. 지금은 어엿이 '관찰일지'를 쓰고 싶다는 생각과 목표가 생겼다. 누군가를 관찰하고 그 사람에 대해서 서술하는 게 좋다. 누군가를 관찰하고 적어 내려 가는 것이 좋다. 물론 내 감정이 전적으로 가미된 글이라 정제되지도 않고 딱딱할 수도 있고 부정적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난 그게 좋다. 이제는 내가 좋아하는 것이 뭐냐고 묻는 사람에게 당당히 이야기할 수 있다. 난 글 쓰는 걸 가장 좋아하고 텍스트로 표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확신이 없었던 이전의 날들은 어떻게 그렇게 숨겨왔는지 모르겠다. "취미요? 취미 없어요 좋아하는 것도 없고"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되려 나 자신을 가두고 속박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도 이제 어느새 정상적으로 살아가고 있고 아직도 많이 부족하지만 어찌어찌 굴러가는 자동차가 된 것 같다. 하지만 바퀴가 온전하지 않고 바퀴에 상처도 많고 파이기도 하고 찌그러지고 울퉁불퉁 못생긴 감자처럼 생겼을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굴러는 간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닐까 싶다.


굴러가는 것, 굴러가게 만드는 것, 어떻게 해서라도 앞으로 조금 전진하는 것. 내가 그렇게 될 줄 어떻게 알았으랴. 나 자신이 굴러갈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신기하기만 하다. 그렇게 해서라도 굴러가는 것에 행복을 느끼고 안도감을 느낀다. 내가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여 불꽃을 태우고 사라진다는 것이 보람차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더라면 온전한 바퀴가 되어 더욱더 빠르게 더욱더 멀리 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까지도 더디고 앞으로 빠르게 나아갈 수 없다. 그게 내 상태인 것 같다. 그게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누가 판단하고 정의 내릴 수 없는 것이지만 나는 나 자신이 조금씩이라도 발전해나간다는 것이 영 기특하기만 하다. 남들이 볼 때는 느리다고, 멍청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이제는 그들의 시선과 생각까지 들여다볼 생각도 여유도 없다.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더 잘해줄 수 있는 방법을 찾는 편이 더욱 효율적일 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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