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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표 13 [,]

비워야 채우지

by 여백


헤어진 다음날,

어릴 적 친구와의 약속에 나갔다.

1년에 한두 번 정도 보는 친구인데,

결혼을 앞두고 있어 청첩장을 받으러 갔다.


좋은 일로 만나는 자리였지만,

그날의 주제는 자연스럽게도 어제 헤어진 전남자친구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심지어 그에게 받은 편지도 가져갔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의 이해를 돕기 위함이었다.


친구는 이야기를 쭉 듣고 편지까지 읽어본 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잘 헤어졌다. 일반적인 사람이 아닌 것 같아"


친구와 이야기를 하면서 재밌는(?)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다.

ktx를 기다릴 때 그에게서 느꼈던 냄새 이야기를 듣자마자, 본인의 예비 신랑도 냄새가 엄청나다고 고백한 것이다.

심지어 친구는 예비 신랑에게 씻는 것을 가르친다고 했다.


"빨리 씻고 오세요. 귀 뒤에 닦고 오세요"

"잘 안 닦였어요. 다시 씻고 오세요"


그 이야기를 듣는데 여러 감정이 뒤섞여 혼란스러웠다.

친구의 남자친구분이 떠올라서 너무 웃기기도 했고,

이건 흡사 엄마가 아닐까?

저렇게까지 해서 결혼해야 할까? 부정적 생각이 들다가도, 정말 사랑하면 저렇게 할 수 있는 거구나 싶어 신기하기도 했다.


친구는 나에게 포기할 수 없는 조건 몇 가지를 정하고 해당만 되면 일단 잘 만나보라고 조언해 주었다.

누구나 이렇게 조언해 주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사람은 입체적인 동물인데 어떻게 몇가지만 볼 수 있을까..


나의 연애 이야기가 끝날 무렵,

친구는 이제야 예비 신랑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의 예비 신랑은 이런 사람이었다.

안정적인 직장, 호감형 외모에 요즘 남자들 같지 않은 순수한 마음을 지 사람.

다만, 키가 작았다. 170이 채 되지 않았다.

친구는 나보다 키가 작았었는데, 본인보다 크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남자의 조건 중 키를 포기할 수 없는 내 입장에서는 친구의 선택이 엄청난 일로 비쳤다.




친구와의 만남 후,

집으로 돌아가면서 생각했다.

보통 여자들은 남자들이 더 많이 좋아해야 행복하다고 하는데, 내가 알고 있는 나는 좀 다른 것 같았다.


내가 좋아하지 않으면 시작조차 어렵고,

괜찮겠지?라는 마음으로 시작한다 해도 금방 끝나버린다.

전 연애가 이에 딱 맞는 예시다.



나이는 30대 후반을 바라보고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내 마음은 아직 20대 같았다.

안정적이고 잔잔한 연애보다는,

상대를 바라만 봐도 가슴이 두근거려야만,

설레어야만 시작할 수 있는 것 같다.







난 대체 어떤 사람을 만나야 하는 걸까?





쉼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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