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아기와 나

즐거운 나의 집

20200328, 결혼 후 첫 이사

by 윤신





'우리'라는 나무는 3년을 한 곳에 뿌리내렸다.

완전한 타인에서 피가 섞이지 않은 가족으로 가는, 적절한 광합성과 비와 바람을 맞으며 단단해지는 시기였다. 서로의 걸음에 속도를 맞추고 투명한 나이테가 표정과 몸짓 어딘가에 한 줄씩 새겨지는 동안 신은 우리가 가진 동그스름하고 튼튼한 가지를 골라 가지꽂이를 했다(종교는 없습니다만 아기라는 생명은 인간의 손을 벗어났다고 생각합니다). 몇 주 동안 눈을 뜨지도 못하던 작은 가지는 어느샌가 의식이라는 움을 틔우고 어엿한 하나의 나무로 성장하고 있다.

그 아기 나무는 내일이면 벌써 7개월이다.



일생 동안 자의와 타의의 콜라보로 수십 번 정도 집을 옮겼다. 횟수로 치자면 일이 년에 한 번은 꼭 이사를 한 셈이다. 한동네에 살며 서로의 집에 들러 밥도 먹고 잠시 나와 편의점에서 음료수 한 잔이라도 하는 친구는 어떤 얼굴로 반겨야 할까. '소꿉친구'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는 어린 시절을 지나 '술친구'가 없는 어른 시절을 보낸 내겐 일종의 수수께끼와도 같은 질문이다. 그러던 내가 꼬박 3년을 한 곳에서 보냈다. 유난히 잦은 이사를 한 인생 탓인지 나름 오래 살던 집을 떠나는 게 쉽지 않다. 시계라는 개념이 아닌 정서의 감각이다.

연도가 세 번 바뀔 동안 난 요리가 조금 늘었고 고양이는 두 마리 늘었으며 작은 사람 한 명도 늘었다. 게다가 미지의 광물만큼 찾기 힘든 동네 친구도 생겼다.



사람처럼 집도 정이 든다.

짐을 모두 옮기기 전, 매일 같이 쏘다니던 길을 도장 찍듯 꾸욱 꾸욱 힘줘 걸으며 다음 주면 피어날 꽃봉오리에게 인사하고 싶단 마음마저 들었다. 집은 물론이고 그 주위 모든 생물과 무생물에게 마음이 동한다. 얼굴도 모르고 지나쳐온 이에게까지 애틋한 마음이 인다. 손이라도 붙잡고 '잘 지내요. 고마웠어요.' 말할까. 아니다.

그 문장은 머릿속에서만 뇌까리는 걸로 하자.



이사는 사일 전이었다.

며칠이 순간으로 지났다. 일렁이는 마음을 도닥일 새도 없이 이 집의 일상 한가운데에 들어왔다. 자주 걷던 길을 꾹꾹 걸을 새도 꽃나무를 바라볼 새도 물론 없었다. 나만 빤히 바라보는 아기 나무를 돌보며 잔뜩 늘어버린 살림을 정리해야 하는 탓이다. 은은한 봄향 같은 감상은 짐짝에 치여 어디 구석에 쏙 들어가 버렸다.

이제라도 그리워해 보자.

아아, 내 지난 집이여. 지나간 정든 작은 고향이여.

뭐, 물론 그 집에서 이 집까지는 고작 1km 이긴 하지만 말이지.



거리는 짧지만 이사는 엄연한 이사다.

포장 이사는 이사 수십 번 인생 중 처음이었다. '포장이사'라는 어감이 주는 안락함과 편의는 어디 가고 아침 7시부터 시작된 부산스러운 움직임은 잠들기 전까지 끊이지 않았다. 집을 옮기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이라니. 육아에만 체력이 필요한 줄 알았더니 이사도 무지막지하게 마찬가지다. 장거리 마라톤과 100m 달리기와의 차이랄까.

아아, 헌 모래집을 받고 새 모래집을 주는 소위 밑지는 장사를 하던 두꺼비에게도 이사는 큰일이었겠지. 하지만 두꺼비의 이사는 그렇게 힘들지 않았을 거야. 살림이 없잖아. 그릇도, 침대도, 냉장고도, 냉장고 안을 꽉 채운 미지의 물질도, 시들어 버린 화분도, 그리고 그 외 등등등도.

무소유의 두꺼비에 반해 우리 집엔 잡동사니가 지나치게 많다. '버릴 건 버려야 하지 않겠냐'는 끊이지 않는 여러 마디를 들었다. '이게 뭐 어때서' 싶다가 저녁부터 시작된 본격적인 집 정리에 격하게 그 공감했다. 눈물이 찔끔, 났던가 안 났던가. 아니면 짜증이 났던가.



'저 정말 깨끗하게 살 거예요. 정리하고 버릴 거예요.'

오늘도 여전한 짐 정리에 고해성사하듯 다짐한다. 물론 이상과 현실은 늘 거리가 있듯 집은 아직 대공황 상태인 데다 미래의 일은 알 수가 없다. 게다가 짐을 옮기고 푼 게 내가 아닌 탓에 어디에 뭐가 있는지조차 종잡을 수 없다. 해가 길어진 오후에는 아기의 손톱 깎기를 찾는데만 십 분이 걸렸다. 으레 있어야 할 곳을 짐작하고 추리하며 십자말 풀이하듯 하나씩 찾아나갔다. 상대가 누구든 친해지는 데는 시간이 필요한 법인가.

어제의 집과 작별의 시간이 필요하듯 오늘의 집과 알아나갈 시간이 필요한가 보다.



'우리'가 나무라면 우린 분갈이를 했다.

조금 더 넓고 깊게 흙을 파 몸을 옮겼다. 작은 나무도 곁에서 고 작은 뿌리를 내리고 있다.

더 곧고 튼튼한 뿌리와 가지를 뻗길, 푸르고 싱싱한 잎으로 숨을 쉬며 살아가길.

새집에서도 일상에 감사하고 새로운 일을 즐겁게 해 나가며 살아볼 일이다. 꿈을 펼칠 일이다.

즐거운 나의 집 home, sweet home 아니겠는가.

뭐, 일단 지금은 '일 많은 나의 집'이겠지만.(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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