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아기와 나

불가능도 살금살금

by 윤신

돌까지, 그러니까 아이가 태어나고 365일까진 어떻게든 매일 기록을 남기려 했었다. 1월 1일의 첫 뒤집기와 8월 24일의 첫 열 걸음처럼 아기의 모든 처음을 적고 엄마가 된 감정을 쏟아내기에 좋은 수단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매일매일 적고자 한 마음은 어느새 일주일에 삼사일로 줄어들고 지금은 그마저도 힘들어 한 두 줄로 축약한 일주일의 기록 정도에 이르렀다.

아기의 꼬막손을 잡으며 맨 처음 한 다짐은 서투른 엄마의 자장가처럼 어설픈 엄마의 계획이었을까.



신생아를 돌보며 매일 뭔가를 쓰기란 체력적으로 아주 힘든 일이다. 몽롱한 정신으로 두 시간마다 깨는 아기를 먹이고 달래는 무한 반복되는 타임 루프 속에서 틈을 만들어 내야 했다. 서툴고 조심스러운 손짓과 몸짓에 종일 긴장이 타고 흐르는데도 몇 줄은 써야지, 정신을 붙들곤 했다. 하지만 오르는 산속에 산은 점점 겹쳐진다던가. 아기가 성장함에 따라 틈을 내고 짬을 내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더 이상 눈을 말똥말똥 뜨며 바닥에 누워 방싯 웃다 우는 아기는 없다. 집안 이곳저곳을 누비며 살림살이를 다 꺼내놓고 뜯는 악동이 있을 뿐이다.

사실 나처럼 게으르고 미숙한 엄마가 돌 즈음의 아기를 키우며 일기를 쓰기란 거의 80프로의 확률로 불가능에 가깝다. 남편의 도움 5%, 얼마 없음에도 깎고 깎은 나의 잠시간 7%, 뒤흔들어진 멘탈을 간신히 쓰다듬는 정도의 정신력 8%를 끌어 모아 근근이 20%의 확률이 채워지면 80%의 지친 몸과 정신을 달래 그나마 가뭄에 콩 나듯 써 내려갈 수 있었다.



그런데 아이가 4일 정도 실컷 아프고나더니 짜증과 떼가 산만큼 늘어 그 20%마저도 위협을 받고 있다. 밥을 줘도 찡찡, 안 줘도 찡찡, 안아도 찡찡, 안 안아도 찡찡대는 아기를 하루 종일 상대하다 보니 일기는커녕 제대로 된 생활조차 할 수 없다. 짜증과 떼의 콤비네이션 연타에 울음이라는 어퍼컷 공격으로 하루 종일 너덜너덜한 정신 상태가 되는 것이다. 아기들이 돌 즈음부터 만 36개월까지 떼가 느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라면 엄마 역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스트레스에 맨 정신이 탈탈 털려 반 넋 나간 정신이 되는 것도 자연스러운 거 아닐까.



그러고 보니 예전에 독립서점에서 본 적이 있는 『모모네 자수 일기, 몬덴 에미코 』가 떠오른다. 하얀 표지에 붉은 선으로 그려진 아기와 글씨, 제본이 독특한 책이었다. 책등을 쥐고 스르륵 훑어보니 그림과 짧은 글, 거기에 온갖 종이 여기저기에 수놓은 자수로 갓 태어난 아기와의 하루가 담겨있었다. 붉은 실로 써 내려간 일기였다. 찰나였지만 그 가운데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 일기가 있다. 아마도 연필인듯한 필기구로 그려진 양 손 위 붉은 실로 아마도 백 스티치인듯한 기법으로 커다란 하트 모양이 드문드문 수놓아져 있는 페이지였다. 쓰여있던 글귀가 한참 마음에 남았다.

〈2016, 2, 28 손에 지그시 남은 이 따뜻함은 무엇일까.〉

27일이 모모라는 아기가 태어난 날, 그러니 손에 남은 따뜻함은 분명 태어난 지 이틀째인 모모의 온기였을 거다. 당연하고 별건 없지만 어딘가 가슴을 떨리게 하는 그림이었다. 마치 그 온기가 당장 내 손으로 닿아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사실 이 책이 떠오른 건 다름 아니라 책의 부제에 있다.

「모모가 태어나고 아오가 오빠가 되어가는 386일간의 기록」

서점에서 책을 훑으며 궁금했던 거다. 왜 386일이지? 그보다 더 긴 이야기를 쓰는 게 좋지 않을까? 아기가 크는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기에 일 년은 조금 짧은 것 같은데.



나의 아이가 태어나고 오늘까지 매일은 아니지만 361일 대부분의 하루를 기록했다. 손재주가 없어 그림이나 자수는 두지 않았지만 나름 시간과 마음을 쪼개어 글에 담았다. 지나고 나면 순간으로 뭉뚱그려져 잊히고 말 시간의 조각이 어떤 방식으로라도 남길 원했다. 『모모네 자수 일기』가 떠오른 이유는 하나다. 386일간의 기록이라는 데 공감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아마 더 긴 이야기를 쓰기에는 하고 싶은 일 보다 해야 할 일이 더 눈에 밟혔을 거다. 점점 더 제 공간을 넓혀가는 아이를 보며 가만히 앉아 수를 놓을 여유가 없었을 테고 종이 위가 아닌 생생히 살아있는 아이들에게 오롯이 집중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 그랬을 거다.



오늘의 기록을 해본다.

아윤이를 위한 책장이 도착해 세로로 쌓여있던 책을 정리해 가로로 꽂아두었다. 거실은 이제 우리의 책장과 아이의 책장이 서로 나란히 보는 구조다. 아이가 자고 난 늦은 저녁 정리를 마쳤는데, 내일 아침 아윤이의 반응이 궁금하다. 고양이처럼 경계와 호기심을 보이며 근처를 어슬렁거릴까, 다짜고짜 책을 모두 꺼내볼까.



적고 보니 하루의 기록은 무심하도록 짧다.

참 이상하지.

마음은 긴데 글을 짧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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