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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신 Sep 22. 2022

수영은 명상이다

당신이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발가락이 서툴다.

물에 익숙해지려면 잠깐의 시간이 필요하다. 얕은 파도처럼 일렁이는 수면에 발을 갖다 대고 잠시 숨을 고른다. 발끝에 힘을 주고 힘껏 밀어내고 당기기를 반복하다 이내 던져진 공처럼 물에 첨벙, 들어간다. 수영장의 수온은 언제고 체온보다 낮은 온도를 유지해 작은 몸서리를 동반한다. 여름이 지나간 구월 말의 수영장도 다를 건 없다. 어깨를 살짝 움츠릴 정도만큼 차갑고 수영을 하기에는 딱 시원한 25도. 계절에 따라 천장에 물방울이 맺히기도 창 너머 햇살이 뜨겁기도 하지만 수영장의 연푸른 수조는 그 자리에 고여 나를 기다린다. 나뿐만이 아니다. 조금의 오차 없이 정확한 직사각형의 모양에 가득 찬 물은 타일의 휘호 아래 흰 포말과 촤아-촤아- 시원한 물소리를, 휘몰아치는 기포와 사람들의 손동작 발 동작을 조바심 내며 기다린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 가끔 수줍은 잔물결을 내비치면서.



그리고 곧 화답이 이어진다. 물과 공간에 부딪혀 웅웅대는 소리, 적당한 간격을 두고 속도를 유지하는 사람들의 호흡, 물속에서 보글보글 숨을 불어내는 아이들의 웃음, 가끔씩 또르륵 흐르는 벽면의 물방울과 수영장을 채우는 염소 냄새, 뜨겁거나 차가운 샤워까지 끌어안아 우리는 물에 들어간다. 여전히 서툰 발가락을 꼼지락거리고 팔을 위로 쭉 피며 푸른 물속으로 가만히 미끄러진다. 그런 식으로 일정한 호흡을 하며 같은 리듬으로 한참을 수영하다 보면 어느 순간 생각의 무중력 상태에 빠진다. 물에 뛰어드는 동시에 함께 쏟아지던 생각과 잡념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무의 상태로 접어든다. 다만 관성처럼 팔이 움직이고 몸은 물속에서 나아갈 뿐이다. 이런 무의식의 수영은 말할 수 없이 홀가분해 마치 긴 명상을 닮았다.

나조차 없는 상태. 모든 게 먼지처럼 부서지고 공기 속에서 유영하는 공의 상태. 그래서 나는 가끔 우쭐대어 말한다.

수영은 명상이다.



애초에 초록의 보타닉 가든 너머로 보이는 앤드루 보이 찰튼 수영장의 빛나는 윤슬과 그 사이를 가르는 사람들의 시원한 몸짓, 호주의 새파란 하늘에 비길 수영장의 푸른 물이 나를 유혹했다. 수영을 하고 싶다는 생애 첫 격렬한 열망이었다. 어릴 적 물에 빠질 뻔한 경험이라는 흔한 트라우마를 이겨내서라도 쟁취해야 할 생의 한 부분이자 운명이었다. 맨손과 맨발만으로 물속에서 속도를 내고 우아하게 어깨를 돌리는 그들은 아름다웠다. 처음 보는 푸른 물의 세상은 사치스럽고 눈부셨다.

아니 사실은 외국인 노동자에 불과했던 나의 부풀려지고 왜곡된 시선인지 모른다. 그 속에서 함께 유영한다면 나 역시 당당하고 여유로운 시민으로 느껴질 거라는 착각, 열등감에서 비롯한 욕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욕망은 트라우마를 이겨냈고 다행히 이제는 그때의 감정과는 별개로, 물속의 시간을 온전한 나의 것으로 긍정한다. 타인과의 비교도 현재 나의 객관적인 사회 위치도 물속에서는 무의미하다.

지금 내가 선 이곳이 나의 자리다. 뜨거나 가라앉고 밀어내고 당기며 오로지 물과 나, 둘뿐인 것이다. 손끝으로 갈라지는 물살과 어깨부터 밀어 나가는 나의 몸, 수면 아래 잡아당겨지는 물의 힘만이 실질적인 나의 것이다. 그렇게 다수의 사람이 수영장이라는 수조에 있지만 개별적인 시간과 감각을 보낸다. 어느 걷기 축제의 슬로건처럼 '따로 또 함께' 우리는 유영하며 명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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