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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신 Oct 21. 2023

하랑과 은희

feat. 눈 내리는 만춘, 수상한 커튼


 말도 안 돼.

 뭐가.

 그게 말이 돼?

 안될게 뭐가 있어.

 징그럽다고, 그런 거.     


 은희의 꾹 누른 입술이 살짝 떨렸다. 징그럽다니. 그녀의 눈썹이 일종의 모욕에 대한 분노로 치켜 올라갔다. 하랑은 자신의 말이 틀리지 않음을 시위하듯 무표정하게 점점 호를 그리는 눈썹과 벌게지는 엄마의 얼굴을 바라보다 의자에서 일어섰다. 늘 그랬다. 둘 사이의 소란한 침묵을 견디지 못하는 쪽은 하랑이다. 하랑은 은희의 마음을 알았지만 이해할 수 없었고 은희가 자신이 이해받지 못한다는 사실에 좌절할 것도, 그러다 딸 앞에서 한껏 입안을 보이며 울 것도 알았다. 그래서 하랑은 둘 사이에 투명한 구멍을 두었다. 무한히 수축하며 감정을 빨아들이는 투명한 블랙홀. 가끔 그것은 시간이기도 했고 공간이기도 했으며 둘 다이기도 했다. 물론 빨아들여진 감정이 완전히 사라지거나 해결되는 게 아니란 것도, 어쩌면 블랙홀이 둘의 관계마저 삼켜버리리라는 것도 하랑은 알았다. 은희도 알았다. 그러나 이 헤쳐지고 벌어진 대화를 쓸어내리는 방법을 둘은 몰랐다. 서로의 날 선 말에서 서로를 지키려면 멀찌감치 떨어져 웅크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들에겐 그것이 해결책의 전부라고 여겨졌다.

 애초에 흔들리고 날 선 두 여자를 다독이는 역할의 원래 주인은 따로 있었다. 삼 년 전, 십오 년째 배달 오토바이를 몰던 남자, 그러다 누군가의 음주로 유흥으로 순식간에 그들의 곁에서 사라진 남자. 바로 ‘징그럽다고, 그런 거’의 대상이 된 남자였다.     


 하랑이 순순히 승낙할 거라 생각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매정할 줄도 몰랐다. 은희는 딸이 아르바이트하러 간다고 평소보다 두 시간이나 일찍 나가기 전 무슨 말이라도 더 할 줄 알았다. 엄마가 하고 싶은 대로 해. 아니면 적어도 조금만 더 생각해 볼게, 라며 제 아빠를 쏙 빼닮은 머쓱한 웃음이라도 지어줄 줄 알았다. 아직도 난 자식을 모르네. 은희는 혼잣말을 하면서도 손 안에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놓지 못했다.     


 방송국 관계자가 연락 온 건 대략 일주일 전이다. 대개 모르는 번호는 받지 않았지만 은희는 그날따라 날씨가 좋았는지 기분이 좋았다. 속는 셈 치고 당신의 노고에 잠시 응해줄게. 그런 선선한 마음이었다.     


 여보세요.

 네, 안녕하세요. 여긴 *** 방송국인데요.      


 전화 건너편의 상대가 핸드폰 기기변경 권유나 보험 판매를 하는 사람이 아닌 것에 은희는 놀랐다. 방송국이요? 아마도 전화를 잘못 걸었으리라는 짐작을 하는데 상대방이 먼저 신원을 확인했다.     


 맞습니다. 혹시 최은희 님 맞으실까요?     


 이건 새로운 신종 사기인가 은희는 가만히 앉아 이야기를 들었다. 사기꾼의 목소리치고는 지나치게 또박또박하고 다정한 목소리였다. 아, 오히려 그러니 더 사기꾼일지도 몰라. 은희는 정신을 바짝 차렸다. 목소리는 정말 외람된 말씀이지만 같은 정중을 섞어 길고 길게 말했다.     


 아니 그러니까, 제 남편을, 그 VR 뭔가 하는 그런 기계로 다시 만날 수 있다고 하시는 건가요? 목소리도요? 진짜 그 사람을요? 어떻게, 아니 왜요?     


 바짝 차린 정신이 흐트러졌다. 그를 다시 만난다니, 외람된 말은커녕 외람된 희망이다. 그러자 목소리는 아마도 은희 님 동생분이 연말 특집인 저희 프로그램에 신청하신 것 같다는 말을 조심스레 덧붙이며 아직 시간이 있으니 일주일 정도 생각해 보시라고, 그리고 혹시 다른 가족 분들도 참여하실 의향이 있으신 지도 궁금하다고 했다. 은희는 전화를 끊자마자 인터넷에서 비슷한 영상이 있나 찾아보았다. 관련된 영상이 있는 걸로 봐서 영 없는 말은 아닌 듯했다. 두 손을 꼭 쥐고 한참이나 영상을 시청했다. 영상 속 그들은 모두 눈앞의 허공에 간절히 손을 뻗어 대고 있었다.

 은희는 긴 숨을 몰아쉬고 자리에서 일어나 베란다로 향했다. 금방이라도 눈이 쏟아질 것 같았고 이미 하랑은 보이지 않았다.     


 하랑 역시 마음이 복잡한 건 마찬가지였다. 그러고 보니 요 며칠 은희의 상태에 의문이 들긴 했다. 뭘 꺼내렸는지 넣으려는지 냉장고 문을 열고는 가만히 서거나 소리 없는 긴 한숨을 쉬고 창밖이나 사진을 보기도 했다. 그렇다. 사진을 보기도 했다. 단 한 번도 꺼내지 않던 앨범을 꺼내 종이로 된 얼굴을 손으로 쓸다 넣고 다시 꺼내 모으는 그녀를 보며 하랑은 어쩐지 화가 났었다. 아마도 그 감정에는 엄마마저 잃을 것 같은 두려움과 여전히 차오르는 슬픔, 사고 낸 이에 대한 분노가 마구 섞여 있었지만 하랑이 인지하는 건 그저 엄마에게 느끼는 답답함 뿐이었다. 그런데 딸, 아빠를 볼 수 있대, 라니. 그 천진하게 슬픈 얼굴이라니. 당황스러울 정도로 의외인 말에 하랑은 말문이 막혔다. 내가 알던 그 딱 부러진 여자는 어디 갔을까. 아니나 다를까 은희는 몇 년 사이 몰라보게 달라졌다. 꼿꼿하고 단정하던 눈매나 자세에 온 힘이 풀어져 어디로나 쓸려대는 해파리 같았고 그 해파리는 자주 울음으로 녹아내렸다. 그리고 그런 은희를 보며 하랑은 자신만은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매번 다짐했다. 누군가는 보험처리를 하고 짐 정리를 하고 돈을 벌고 밥을 지어야 했다. 둘 중 하나는 제대로 서 있어야만 했다. 하랑은 아빠가 생각날라 치면 티브이를 틀었다. 아주 아주 우스운 채널을 향해 돌진했다. 눈물 날 만큼 우스운 채널을 향해서였다.     


 그녀가 기억하는 아빠는 틈 있는 착한 사람이었다. 치킨과 무, 엄마가 요리하는 온갖 음식들을 배달하면서도 알뜰살뜰하게 딸을 챙기고 가는 눈, 흰 얼굴, 도톰한 입술, 자신의 얼굴을 빼닮은 딸을 누구보다 아끼고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었다. 열 살 무렵인가 주로 혼자 놀던 여름방학을 하랑은 기억했다. 매미가 울고 보도가 뜨겁게 달아오른 늦은 오후, 아빠는 자주 하랑을 뒷좌석에 태우고 천천히 배달을 다녔다. 땀이 맺힌 이마가 바람에 시원해지고 아빠의 등에 부드러운 체취가 가득하던 여름 오후가 점점 오렌지 빛으로 물들어 가는 날들이었다. 자, 이제 다 마쳤다! 가끔 아빠는 신나는 얼굴로 하랑을 오래된 동네 카페에 데려갔다. 두꺼운 핫케이크와 아이스크림, 커피가 나오고 둘은 어린아이들처럼 킥킥대며 비밀스레 웃었다. 먹다가도 눈만 마주치면 웃었다. 그날이 돌아올 수 있을까. 그 반짝이던 찰나가.


 돌아오진 않아도 적어도 한 마디라도 말할 수는 있다고 은희는 설명했다. 자기도 잘은 모르지만 사람들이 아빠의 목소리와 사진, 영상을 수집해서 아빠에 근접한 얼굴로 아빠가 할 법한 말을 할 것이라고 말이다. 그게 뭐야. 징그럽다고 그런 거. 순간 자신이 그렇게 얘기했다는 게 하랑은 떠올랐다. 아니야. 아빠를 모아 형체를 만들어 내는 게 징그럽다는 게 아니야. 형체가 없는 게 아빠인 척할까 봐, 그게 무섭고 징그러운 거야. 하랑은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자신도 자신의 마음을 잘 모를 것만 같았다. 그저 아빠의 사고처럼 이것 역시 갑작스러울 뿐이었다. 왜 자기라고 아빠에게 닿고 싶지 않을까. 엄마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할 것 같지는 않았다. 단 한마디라도 그의 목소리를 듣기를, 허상이라도 보기를, 꿈에서라도 손을 잡기를 바란 날이 어디 하루 이틀일까. 당신만큼 멋진 아빠는 없다고, 다시없을 만큼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은 것을 후회한 적이 어디 한두 번일까.

 그러다 문득 그 여름 아빠의 말이 떠올랐다. 하랑아, 이건 원래 비밀이어야 하는데 살짝만 말해줄게. 이렇게 아빠가 너랑 자주 가게에서 나와서 다니는 거, 다 엄마가 얘기한 거야. 하랑이 심심하지 말라고, 재밌는데 좀 데려가고 맛있는 거 먹여주라고 그렇게 시켜, 너희 엄마가. 그러니까 엄마한테 말 이쁘게 하고, 사이좋게 지내. 너도 알잖아. 말은 그렇게 해도 엄마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곧 등 뒤로 폭설이 내릴 것 같았지만 하랑은 그 여름을 생각하며 한참이나 걸었다. 자신에게 더없이 소중했던 두 사람과 그 가운데 남겨진 한 사람을 생각했다.      


 십이월에 들어서며 집 근처 거리에는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가 생겼다. 하랑은 그 주위를 한 바퀴 빙 돌았다. 모두 다 행복하게 해 주세요. 특히 우리 엄마 좀 웃게 해 주세요. 실내도 실외도 사람으로 북적이는 밤, 조명이 별처럼 빛나는 밤.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 준비로 바쁜 길가에 내내 묽은 어둠을 품던 하늘이 눈을 흩트리기 시작했다. 날리는 꽃처럼 흐드러진 눈이었다. 트리를 두어 번 더 돌던 그녀는 옆에 있는 사람을 부르듯 엄마,라고 문자를 보냈다. 다른 어떤 말을 할지 몰라 뒤는 공백으로 두었다.     


 지잉, 바로 하랑의 핸드폰이 울렸다. 사랑해, 딸. 오직 네 글자, 그러나 그들에게 전부인 네 글자였다. 하랑과 은희는 관계의 가까울수록 그와 비례하게 더 필요한 말들이 있고 삼켜야 하는 말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미처 하지 못한 말들은 흐르지 못하고 쌓여 마음 언저리에 무겁게 남는다는 것도 잘 알았다. 삼키고 참는 습관이 꼭 해야 할 말들도 집어삼킨 결과였다. 그들은 지금부터라도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할 말을 하려로 했다. 어렵더라도 조금씩, 그러니까 네 글자씩 시작하면 될 것이다. 그러면 그것은 자신들의 멈춰있던 순간을 계절을 시간을 움직이게 할 것이다.


 하랑은 점점이 쌓이는 눈의 결정을 온몸으로 맞으며 어느 칠월의 여름, 마주 보던 다감한 얼굴을 다시 떠올렸다. 허구라도 보고 싶었다. 그를 만나게 된다면 잘 지내냐고, 우린 잘 지낸다고 웃으면서 꼭 말하고 싶었다. 하랑은 겨울이 전혀 차갑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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