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이 소재인 시

by 윤신



시를 쓴다

그녀가 쓰라고 해서 쓰는 것은 아니고 원래 쓰려던 것도 아니지만

일단은 쓴다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 얼굴이 온통 초록인 남자가 있었다

그리고 공백

이게 시가 될까 이렇게 써서 될까

흰 화면을 망연히 보다가 문장을 삭제했다가 살렸다가 다시 삭제했다가


시를 말하던 그녀는 시는 서사라 했다 꾸며낸 이야기지만 쓰는 동안은 실제로 일어난다고 믿어야 한다 했다 시를 쓰는 자는 그 순간 신神이라 했다 나는 신은 못되고 거짓말쟁이만 될까 봐 자꾸만 한 줄을 쓰고 지우고 쓰고 지웠다


그리고 다시 공백


새가 날고 나는 앉아 새가 나는 것을 보다가 시를 써야지

미지근한 물을 마시다가도 시를 써야지

길을 걷다가도 문득 시를 써야지

시를 쓰려는 마음과 시를 지우는 마음 사이에서

의자에 고쳐 앉아 시를 생각했다

쓰려면 알아야 하고 알려면 생각해야 한다고 다시 한번 생각하면서

시를 썼다


- 얼굴이 온통 초록인 남자가 있었다 남자는 커다란 벽에 걸린 커다란 자화상으로 사람들이 자신을 자화상이라고 불러 자신이 자화상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하지만 누구를 그린 것인지 그래서 자신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지 못했다 남자는 자신의 얼굴이 궁금했다 그래서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거울을 부탁했다 사람들은 각자의 시선에서 각자의 거울로 남자를 비췄다 드문드문 초록의 형태가 일그러지듯 보였다 남자는 사람들이 들고 온 거울에 비친 조각들로 자신의 얼굴을 유추했다 초록의 뭉텅이가 눈이고 초록의 더미가 코일까 남자는 더 이상 녹음에 가득 찬 제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지만 거울을 든 사람들은 점점 모여들었다 남자는 결국 눈을 감았다


쓴 시를 읽었다

이게 시인가 이렇게 써서 되나

나는 거짓말쟁이가 된 것 같아

눈을 감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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