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가 맺겠다고 그가 말하자
꽃이 진다고 당신은 슬퍼했다
못지않게 몸부림치던 때가 있었지
뛰어다니면서 사랑을 흩뿌리던 때가
꽃이 져야 열매를 맺는 것쯤
흐드러지게 활짝 핀 얼굴도 결국 땅에 머리를 박고 흩어지리라는 것쯤 알지만
우리는 모두 지고야 마는 꽃임을
다 알지만
눈치 없이 꽃은 또 지고
당신은
떨어진 그것을 끌어안아 엉엉 울었다
꺾인 줄기 끝을 핥고 또 핥고
식어버린 만발을 부둥켜안고
꽃 따위 지는 게 어때서
한 번도 피어본 적 없는 그가 웃었다
한 번도 열매를 맺어본 적 없는 그가 늙은 새처럼 속삭이고
바람에 날카로운 잎들이 파르르 입술을 깨물자
당신은 꽃이 되었다
꽃을 피워낸 마음을 안고
꽃을 떨어낼 마음을 안고
웅크리고 활짝 펴고
천천히 숨을 고르며
식물의 시간이 익숙할 때까지
계절의 빛이 당신 안에 차오를 때까지
봄 여름 사이
찬연히 반사하는 빛다발에
당신은 끝내 피워낸 꽃들을 떨어트리고
누구의 목소리도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요의 시간에서
가지를 털었다
바짝 붙어선 땅에 지렁이는 천천히도 지나가고
꽃이 떨어진 자리가 내내 간지럽더니
초록의 날개가 돋아났다
그것은
열매도 슬픔도 아닌
갓 돋아난 싱그러운 날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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