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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기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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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신 Jul 28. 2020

2019년 1월 18일

너를 보는 나의 일기, 20191123





2019년 1월 18일.

아마도 네 존재를 알게 되고서 두 번째로 병원에 갔던 날일 거야. 



널 처음 알게 된 건 1월 4일 금요일이었거든. 

여느 때처럼 늦잠으로 시작하던 하루였는데 그날은 유독 꿈이 너무나도 선명했어. 

꿈속에서 '나'라고 추정되는 1인칭의 여자가 들판에서 놀더니 느닷없이 임신 테스트를 했는데 아주 새빨간 두 줄이 그어지는 거야. 눈을 찌를 듯이 생생한 빨간 두 줄에 놀라 그대로 잠에서 깨버렸지. 내가 임신했으리라곤 상상도 하지 않았지만 꿈에 이끌리듯 임신 테스트를 해봤어. 여느 부부의 안방 화장실 어디 구석에서나 몸을 웅크리고 있는 일명 임테기(임신 테스트기)로 말이야. 


    

꿈처럼 아주 선명한 붉은 두 개의 줄이 서서히 흰 종이를 타고 이어지더라. 

너무 놀라 굳어버렸어. 

어떻게 해야 하지. 아기가 생겼다는 기쁨보다 놀란 게 먼저라고 하면 네가 서운할까. 

사람은 극도로 놀라면 소리를 지르지도 못하는 거 같아. 생각의 바퀴는 멈추고 한마디 모음도 나오지 않았어. 

그는 어떻게 생각할까. 아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던 그와 철딱서니 없는 나, 우리 괜찮을까. 

갑자기 밀려드는 생각에 떠밀리듯 거실에 있던 네 아빠에게 다가갔지. 

크게 심호흡을 했어. 


"할 말이 있어."

"응, 뭔데?"


그는 내 요동치는 감정을 알아챘을까. 떨림을 억누르는 목소리를 느꼈을까. 


"우리 망했어." (사실, 망했다는 표현보다 더 격한 표현을 썼었지만)

"왜, 무슨 일이야?"


미안해. 망했다고 말한 건 기쁨보다 놀람과 걱정이 앞섰고 그가 아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생각했기 때문이야. 항상 네 아빤 아기가 싫다고 말했거든. 아기를 원하지 않는 이에게 아기를 행복이라 강요할 순 없는 데다 미리 겁을 줘서 충격을 덜 받게 하려는 심산이었던 거지. 

이해해. 엄마가 원래 이렇게 서툰 사람이야. 

의아해하는 네 아빠에게 난 말없이 등 뒤에 숨겨둔 임신 테스트기를 보여줬던 거 같아. 

찰나의 '이게 뭐지' 순간이 지나고 네 아빠는 함박웃음, 활짝 핀 웃음, 으하하하 웃음을 지었단다. 

엄청나게 기뻐하는 그를 보고 나 역시 안도했어. 


나중에 그런 말을 하더라. 아기를 못 가질 수도 있는 나를 배려해서 아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했었다고. 

그렇게 마음 씀씀이가 좋은 사람이야, 네 아빠. 



아, 18일의 얘길 하려고 했었구나. 

1월 4일에 주인 없이 작게 열린 아기집을 보고는 의사 선생님이 얘기했었어. 


"이 시기엔 자연 유산되는 경우도 많으니 일단 추이를 더 지켜봅시다."


그렇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병원에 간 게 18일이야. 그 작은 집에서 아가는 잘 태어났을까. 아기집은 튼튼히 내 아기를 잘 지켜주고 있을까. 

초음파 기계로 아랫배를 이리저리 문지르는데 거기에 손가락 한마디도 안될법한 네가 있었어. 모노크롬의 완두콩같이 생긴 네가. 

묘한 표정을 짓는 내게 선생님이 말했어. 


"엄마들이 이 모습에 다들 실망하곤 하는데, 이거 한번 들어보세요."


콩콩콩콩, 152 bpm의 엄청 빠르게 뛰는 심장 소리가 들렸어. 터질 듯이 뛰는 네 심장을 귀로 느끼곤 눈앞이 흐려졌지.

아, 이 작은 생명이 제 잘 살아 있다고 저렇게 건강히 심장이 뛰는구나. 

그때 벅찬 감정은 차마 글로 표현할 수가 없어. 세상엔 말이나 글로 표현하지 못할 감정, 모습, 일들이 엄청나게 많단다. 최대한 그것들을 전하기 위해 음악이 있고, 그림, 예술, 심지어 과학이 있다고 엄마는 생각해. 무엇이 그때의 내 마음을 설명할 수 있을까. 난 아마 평생 못할 거야. 

울컥이는 마음을 진정하고 뚫어져라 아기집 속에 있는 널 봤어. 



그래. 그게 올해의 1월 18일이야. 

그로부터 10개월이 지난 오늘, 우리 셋이 함께 집 앞에 열린 플리마켓에 갔네. 혹 감기라도 걸릴까 네게 털옷을 입히고 꼬옥 안고서는 네 아빠와 난 손을 잡고 걸었어.


네가 이 글을 읽을 수 있을 때쯤이면 2019년 11월 22일, 아마 오늘을 기억하지 못할 거야. 

내가 널 처음 알았던 1월 4일도, 네 심장 소리가 내 심장에 가장 가까이 맞닿았던 1월 18일도. 

그래도 괜찮아. 

난 다 기억할 거거든. 

지금껏 살면서 내 生에 가장 큰 변화를 준 올해를 어떻게 잊겠니. 

손톱만큼 작던 네가 이렇게 점점 커가는 모습을 어떻게 잊겠어.



아가, 

우리에게 와줘서 고마워. 

내가 꿈에 그리던 '평범한 행복(평범과 보통이 가장 힘들다고 생각해)'을 가져다줘서 고마워. 

오늘도 함께 쌔근거리고 자자. 

좋은 꿈 꿔, 찰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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