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평탄한 삶을 사는 사람이라도 기괴한 현상을 한 두 개 정도 겪기 마련이다. 귀신을 봤다거나, 공중부양을 했다던가, 리틀피플을 만났다거나 하는 것 말이다. 그런 사건은 한 사람의 인생에 복구될 수 없는 큰 상처를 만든다. 크고 깊어서 절대로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상처들 말이다.
그렇지만 크고 무시무시한 일만 상처를 내는 것은 아니다. 날마다 조금씩 움직이는 돌을 봤다거나, 눈이 붉은 비둘기를 봤다거나 하는 작은 일들도 충분히 상처를 낸다. 칼에 베였던 자리처럼. 그런 상처는 곧잘 치유된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한 밤중 비가 오거나, 차를 몰고 혼자 운전하거나, 자리에 멍하니 앉아있을 때 - 갑자기 쿡쿡 쑤셔온다.
그러한 사건이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까닭은 그것을 좀처럼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공포스럽다. 번개가 전하의 흐름이란 것을 아는 지금 옛날처럼 폭풍우가 두렵지 않은 것처럼, 기괴한 현상은 특유의 반-상식으로 사람을 무시무시한 나락으로 빠트린다. 그 나락 안에서 사람은 난도질당한다. 상식이나 가치관에 흠집이 나고, 상처가 난다. 경우에 따라선 부서지기도 한다. 그리고 나락에서 빠져나온 사람은 그 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
지금 이야기하려고 하는 사건도 무시무시한 쪽에 속하지는 않는다. 사람에 따라서는 그다지 기괴하다고 느끼지 않을 수도 있겠다. 누구나 마음먹으면 그렇게 할 수 있다. 심지어 거대한 장비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심오한 기술도 필요 없다. 누구나 필요하다면 그렇게 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본 것이 기괴한 이유는 그 행동에서 어떠한 합목적성도 없고, 의도도, 동기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 사건은 내 인생에 깊지만 의미를 알기 힘든 상처를 남겨놓았다.
사건이 벌어진 것은 늦은 밤 버스 정류장 근처에서였다. 저녁 늦게 퇴근할 때면 줄곧 졸곤 하는데, 이때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내려야 할 정류장을 하나 지나자 눈이 떠졌고, 나는 입으로 작은 욕지거리를 뱉으며 재빨리 하차 버튼을 누르고 버스에서 내렸다. 짙지는 않지만 어딘가 흐릿한 아지렁이에 가까운 안개가 도로에 내려앉아 있어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안개에 옷이 축축해지는 것을 느끼며 집으로 걸어갔다.
그 정류소에서 집까지 거리는 꽤 되는 편이었다. 산을 한쪽 옆구리에 끼고 회차로가 있는 터라, 산을 깎아 만든 보행자 통로는 큰 반 원호를 그리고 있었다. 도로의 왼쪽으로는 관리가 안된 철쭉과 개나리가 도로 쪽으로 가지를 드리웠다. 가지 넘어 산에서 내려오는 낙엽 썩는 냄새와 도로 아래 하수구에서 올라오는 악취, 불안하게 흔들리는 가로등의 주광색 불빛이 말로 표현하기 힘든 느낌을 품었다. 마치 실수로 들어오지 말아야 할 곳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 세계의 정상적인 부분을 치환하듯 이상한 소리가 수상한 안갯속에서 울렸다. 쇠로 만든 무언가를 내리치는 강렬한 두세 번의 파열음과, 이어 무언가 짓이기는 소리, 그리고 무언가를 구두 굽으로 짓밟는 것 같은 소리가 또 두세 번 이어졌다. 느려지거나 빨라지지 않으며 소리가 안개를 가득 메웠다. 피부의 털이 곤두서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떨어지기 직전의 유리잔을 보는 심정으로 저 앞의 거뭇한 형체를 향해 바쁘게 걸음을 옮겼다. 빨리 이 소리의 정체를 알고 싶었다. 아마 아무 일도 아니리라. 하수관거를 교체한다거나, 무언가를 설치하고 있겠지. 나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큰일이 아닐 것이라고. 알고 나면 아주 하찮은 일이겠지. 겨우 그런 것에 겁먹었나 하는 멍청한 자조 섞인 한숨을 쉬고 지나가면 될 일이다.
하지만 그 형체와는 좀처럼 거리가 줄어들지 않았다. 간간히 지나다니는 차의 라이트를 받아 그 형체가 한순간 선명해졌다가 다시 안갯속으로 사라졌다. 그렇지만 내가 발걸음을 옮긴 만큼 흐릿한 형체도 그만큼 멀어지는 듯했다. 원래 이렇게 긴 길이 아니었을 텐데. 나는 발걸음을 서둘렀다. 후텁지근하고 알 수 없는 안갯속에서 땀이 피처럼 끈적끈적하게 피부에 달라붙어왔다. 소리는 지치지도 않고 계속 울려대었다.
그러다 갑자기 그 형체가 다가왔다. 나는 그렇게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커다란 트럭의 밝고 창백한 라이트가 휩쓸고 지나가자 갑자기 내 앞에 그 형체가 나타난 것이다. 나는 그제야 그 형체-어떤 남자였는데-를 정확히 볼 수 있었다. 물론 안개에 가려 정확한 인상착의는 포착하기 어려웠지만, 그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똑똑히 알 수 있었다.
그와 나는 겨우 오십 보나 떨어져 있었을까. 그는 색깔을 정확히 알 수 없는 벙거지 모자를 푹 눌러쓰고, 한 여름이라는 계절에 맞지 않을 것 같은 긴 옷을 입고 있었다. 키가 큰 건지, 안갯속에서 실루엣이 뒤틀려서인지 모르겠지만 긴 겉옷 위로 앙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의 한쪽 손엔 크고 두꺼운 크로우 바가 들려있었다. 그제야 나는 안갯속을 울리던 소리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그는 보도블록을 뽑고 있었다. 그는 크로우 바를 보도블록 사이의 틈에 억지로 밀어 넣고, 바를 기울여 하나의 블록을 뽑아낸 다음, 어디서 꺼낸 것인지 모르는 블록을 빼낸 구멍에 넣고 발로 밟아 밀어 넣었다. 그는 이 모든 작업이 하나의 의식이라도 되는 것처럼 신중하지만 막힘없이 진행하고 있었다.
발 밑을 보니 군데군데 패턴이 흐트러진 보도블록이 눈에 띄었다. 옮기는 데에는 일정한 규칙이 없어 보였다. 혹은 저 사내만 알고 있는 수상쩍은 규칙이 있어서 보도블록을 뽑아 옮기는지도. 나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그 사내를 스쳐 지나가려고 했다. 보도블록을 뽑아 옮기는 이유 같은 것은 생각하기도 싫다. 저 사내와 엮이기도 싫고, 사내에 대해 생각조차 하기 싫었다. 한 밤중에 보도블록을 옮기는 사람은, 그 정도의 불합리함이 있는 것이다.
사내의 곁을 지나가는 것에는 정말 영원같이 긴 시간이 필요했다. 보도블록을 옮긴 도로는 이상한 물리법칙이 적용되는 걸까. 나는 시야의 한쪽 구석에 사내를 담아두며 조심스럽고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사내와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피부가 따가워졌다. 마치 날카로운 칼 끝이 나를 향할 때 느껴지는 느낌이었다. 바로 옆으로 고층 빌딩에서 화분이 떨어졌을 때의 느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큰 화물차가 옆을 지나간다던지, 앞사람이 끝없이 캄캄한 맨홀에 빠졌을 때, 자동차 사고가 나거나, 다리가 무너졌을 때. 죽음이 바로 옆을 스쳐 지나갈 때 나타나는 느낌. 죽음이 우리의 발목을 채가기 위해서 손을 휘두를 때 받는 그 기분. 일상의 반대편 면에 바짝 붙어 한 순간에 채가는 죽음의 손길을 말이다.
그렇지만 이 사내는 죽음도 뭣도 아니었다. 그는 그저 보도블록을 뽑아 옮기고 있을 뿐이었다. 크로우 바로 나를 공격한다면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저 사람만큼은 그런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란 걸 알 수 있다. 그는 그저 보도블록을 옮길 뿐이다. 그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보도블록을 뽑을 것이다. 하지만 저 단단하고 압축된 미스터리는 인식을 뛰어넘어 그 죽음의 느낌을 풍겼다. 그런 면에서 그는 인간이 아닐 수 도 있다. 그저 혼란을 주기 위해서 이 세상에 내려온 악신인지도 모른다. 그저 보도블록을 뽑는 것 만으로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 사람 안의 무언가를 죽이기 위해서.
나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걸었지만 그는 신경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심장소리가 미친 듯이 뛰었다. 오히려 발소리보다 심장 뛰는 소리가 더 크게 나는 듯하였다. 그는 내가 다가가거나 말거나 여전히 두 세 발자국 뒤로 물러나 일정한 속도로 새로운 보도블록을 옮기고 있었다. 퍽 하고 돌이 갈리는 소리가 그와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크게 났다. 마치 누가 내 귀에 대고 경적을 울리는 것 같았다. 온몸이 땀을 뒤덮여서 손 끝을 타고 땀이 흘러내릴 정도였다.
상술했듯이 그를 스쳐 지나가는 데에는 영원과도 같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를 스쳐 지나가는 그 찰나의 순간은 지금까지 버스 정류장에서 걸어왔던 그 길 보다 더 길었다. 어떤 의미에서 그곳은 지옥이었다. 모든 시간과 감각이 뒤틀리고, 하찮은 행위가 가장 중요한 것을 앗아가는 현대의 지옥 말이다. 그곳에는 돌이 비명을 지르고, 모든 규칙과 패턴이 뒤섞인다. 내가 저 보도블록이고, 저 남자는 나를 뽑아 이상한 현실에 쳐 밖아 놓는다. 아무 이유 없이.
하지만 지옥도 곧 끝이 났다. 내가 그를 지나치자마자 거짓말처럼 보도블록 옮기는 소리가 작아졌다. 세상의 규칙이 부서지는 소리가 아니라 이젠 평범한 보도블록 옮기는 소리다. 물론 그런 소리 따위는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는 안도감이 들었다. 돌이 퍽하고 갈리거나, 으지직으지직 하는 소리는 어디서나 들을 수 있다. 나는 이제 평범한 세계로 돌아온 것이다.
나는 발걸음을 빨리 하려고 했지만 좀처럼 빨리 움직일 수 없었다. 다리는 전력질주라도 한 것처럼 힘이 풀려있었고, 반 팔 티셔츠는 비라도 맞은 것처럼 푹 젖어있었다. 안개는 이제 꽤 멀리 볼 수 있을 정도로 옅어져 있었다. 겨우 몇 분 만에 안개가 개었다는 게 말이 안 되었지만, 그런 개연성 따위는 아무렴 상관없었다. 나는 살았으니까. 나는 지옥에서 빠져나왔으니까.
안심의 한숨을 내뱉자마자, 옆으로 끼익 하는 타이어 긁히는 소리가 나더니, 경적소리가 났다. 검은색 승합차가 비틀거리며 도로를 지나갔다. 나는 깜짝 놀라서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곧이어 공기 중에 타이어가 타는 매캐한 냄새가 살며시 퍼졌다. 그리고 냄새가 축축한 바람에 실려 사라지자, 그 자리를 정적이 메웠다.
정적이라고?
나는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누군가 소리치는 것을 들었다. 하지만 어떤 종류의 정적은 소리마저도 삼킨다.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정적에 귀 기울였다. 도로를 달리는 차 소리도, 축축한 바람 소리도, 벌레가 우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오직 들리는 소리라고는 정적을 뚫고 마음속에서 '누군가가' 나에게 웅얼거리는 소리뿐이다. 그러면 안되는데.
그러면 안되는데!
보도블록을 옮기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어느샌가 블록이 짓이겨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퍽 퍽 하고 그것을 짓밟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가 보도블록을 뽑는 것을 멈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그는 보도블록을 옮겨야만 한다. 계속해서, 쉼 없이, 세상이 끝나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았다. 파멸할 줄 알면서도 말이다. 그 사이에 내 마음속에 울리는 소리는 아까보다 좀 더 커져있었지만, 긴 터널 안에서 말하듯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나는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지. 뒤를 돌아보았을 때, 나는 보도블록을 옮기는 남자의 뒷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조금의 미동도 없이 우두커니 서있었다. 왼쪽 손에 들린 크로우 바가 새카맣게 물들어 있었다. 그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뒤를 돌아보고 있어도, 그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에게 애당초 눈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그 자체로 나를 응시한다. 그의 존재 전체가 나를 응시한다. 이제 다시 지옥이 시작된다. 아까는 세계가 지옥이었다면, 이제는 보도블록을 옮기는 사람과 나 사이에 있는 존재의 지옥이다.
이제 내 마음속에서 울리는 목소리를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그것은 목이 터져라 소리치고 있었다. 아까부터 얼마나 소리를 질러대었는지, 마음속의 목소리임에도 목이 쉬어있다. 절대로 듣기 싫은 내 존재의 근원이 외치는 소리다. 그것은 이렇게 소리치고 있었다
도망쳐!
정신없이 달려서 집에 온 이후의 기억은 확실하게 나지 않는다. 깨어났을 땐 거실 바닥에 웅크려 누워있었고, 몸은 수수깡 인형처럼 움직여지지 않았다. 핸드폰으로 시계를 보니 이틀이나 흘러 있었고, 수십 통의 문자와 전화가 쌓여있었다. 하지만 좀처럼 움직일 수 없었다. 무언가 가슴속에서 시커멓게 타 버린 기분이었다. 나는 반 죽은 송장과 다름없었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상태는 나아지지 않아 결국 사표를 내었다. 이유는 묻지 말라 전했다. 전화로 담담하게 이야기하니 사람들은 별 말없이 사표를 수리했다. 그 후로 며칠이 더 지나자 안부를 묻는 문자도 뜸해졌다.
무언가가 확실하게 죽었다. 보도블록을 옮기는 사람은 내 안의 무언가를 확실하게 죽였다. 아마 마음속에서 울리는 그 목소리는 그저 내 마음의 단말마였을 지도 모른다. 보도블록을 옮기는 사람과의 조우는 내 인생을 뒤바꿔 놓았다.
그리고 언젠가 변덕처럼 밖으로 나갔을 때, 집 앞의 보도블록이 옮겨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