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우울증을 오래도 앓았다.
최근 들어서 조금씩 나아지며 내 그림자를 안고 가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오늘 나와 같은 그림자를 둔 사람을 만났다.
스스로에게 무언가 문제가 있는 걸 알지만 그 깊이가 우울증까지인지는 알지 못하는 상태.
그의 부정하는 모습이 이해가 되면서도 속 깊이 안쓰러움이 느껴졌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이 사람이 속으로는 얼마나 절박하게 발버둥 치고 있는지 알기에.
일상을 살아내기 위해 얼마큼의 발악을 해야 하는지 알기에.
그의 그림자를 느끼지만 나는 애써 모른 척해주었다.
그가 그의 아픔을 스스로 내비칠 때까지 억지로 그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꺼내지 않기로 했다.
내게 네 아픔을 내보이라고 강요하지 않기로.
우울의 그림자를 모르는 이들에게는 사소해 보이거나 아예 느껴지지 않을 것이었겠지만, 동일한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리고 사는 이로써는 너무나도 선명히 잘 보였다.
그래서 내 마음 가득히 안타까웠다.
만약 내가 이 그림자를 달고 사는 삶이 얼마나 지독하고 죽고 싶은지 몰랐더라면, 그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겠지.
모르는 척 그를 위로하고, 그의 곁에 있을 수 있어 다행이다.
그가 나처럼 너무 외롭지 않을 수 있어 다행이다.
내가 먼저 상처 입었기에 당신의 상처를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분명 긴 여정이 되고 많이 아프고 여러 번 절망과 우울을 경험하겠지만, 당신은 나아질 것이다.
당신의 우울의 여정이 내 것보다 조금이라도 수월하고 짧기를 기도할 뿐이다.
당신의 그림자를 알아채고 내게 그 존재를 알리든, 알리지 않든 난 묵묵히 이곳에 서있어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