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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끗 Nov 16. 2019

청춘, 그 아픔에 관하여

“아프니까 청춘이다”


숱하게 들어봤을, 어느 베스트셀러인 책의 제목이다.

나는 이 유명한 책의 제목을 보고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물론 책의 내용은 너무나도 좋았고, 작가인 교수님의 의도도 너무 선하게 느껴졌지만, 제목에 대해서는 조금 의문을 갖게 된 건 사실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그렇다면 모든 청춘은 아파야 한다는 말일까.

그때 당시에 매일 아침 눈을 뜨기에도 버거운, 매일마다 내 존재 이유를 찾아야만 했던 아픈 이십 대 초반을 보내며 죽을 만큼 아파하고 있던 나에게는 꽤 부당해 보이는 말이었다.


청춘(靑春).

푸를 청(靑)과 봄 춘(春)이 합쳐져 만들어진 단어.

듣기만 해도 싱그럽고 푸릇푸릇함이 느껴지는 단어다.

아픔이나 어려움은 하나도 없어 보이는.


국어사전에서는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에 걸치는, 인생의 젊은 나이”라고 한다.

어쩌면 이런 단어가 존재했기에, 나는 청춘이라 불리는 이 나이 때에 일어날 일들에 대한 기대감만 가지고 있었는지도.

이 나이가 나를 푸르게 자라나게 하고, 싱그럽게 미소 짓게만 만들어 줄 것이라 믿으며, 이 시기를 보며 달렸다.


하지만 참담한 현실을 마주하고 나서야, 나는 내 청춘이 어둡게만 물들었다는 것을 마주하고 아파야만 했다.

어두운 현실을 보게 되고, 사회에 대한 불만을 품게 되고, 또 꿈의 힘보다 돈의 무서움을 알게 되는 그런 나이.

이 시기에 과감한 도전을 해야 한다고 하는데, 도대체 가진 것 없이 어떻게 도전을 해야 할까?

물론 가진 게 없어야 잃을 게 없다고는 하지만, 워낙 가진 게 없으니 다달이 먹고사는 문제만으로도 버겁다.


남들은 청춘의 정의를 제대로 아는 듯, 세계 곳곳을 여행하고 근사한 곳도 다니며 재밌고 빛나게 살고 있는 것만 같은데.

나는 칙칙한 현실의 그늘 아래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청춘이라는 기간을 소중히 여기며 매일을 의미 있게 살아내야 할 것만 같은데, 그러기가 쉽지 않았다.

다음 달 공과금은 어떻게 내지부터 시작해, 최대한 마이너스가 안 되는 방법을 연구하며 패스트푸드로 외식하는 것 자체도 마치 사치처럼 여겨졌으니까.

단돈 오천 원에 손이 떨리는 경험도 해봤으니까.


아픔으로 비롯된 초라함을 보며 어떻게 이것이 청춘으로 귀결된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지금 겪는 아픔을 통해 성장해서 더 나은 어른으로 만들어 준다는데, 그 시기는 언제 오는 거지.

나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고통을 보며 생각했다.


하지만 그 글쓴이의 의도를 조금 시간이 지나서야 이해할 수 있게 됐다.

그도 그때 당시의 나보다 배 정도 되는 인생을 살아봤기에 그런 말을 해줄 수 있던 거겠지.

시간이 지나서, 언젠가 고통의 시간을 지나 숨을 한번 돌릴만할 때쯤에서야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게 됐다.


모든 것이 자라나고, 시작되는 시기인 봄인 인생의 시기에 우리는 푸릇푸릇하지만 서툴다.

처음이기에 부딪혀야만 알게 되고, 모르기에 용감하게 뛰어들었다가 낭패를 본다.

그래서 넘어지고 부딪히기에 아프고, 그 상처가 아물고 나서야 우리 안에서 지혜가 생겨난다.

그리고 그때의 나처럼 상처 입은 사람들을 돌아볼 줄 아는 눈도 생긴다.


아, 공부 잘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구나. 아, 내가 너무 자만했구나. 아, 나는 아무것도 아닌 평범한 사람이구나.

거창한 것 하나 없는, 수없이도 많은 소소한 깨달음이 우리의 마음을 울리며 우리는 그렇게 봄을 지나 여름의 시기를 지나, 모든 것이 적당히 무르익은 가을의 시기로 달려간다.


싱그럽고 푸르른, 새싹이 돋아나는 봄을 지났다고 해서 그 외에 시간이 결코 초라하거나 덜 중요한 것이 아니다.

여름에는 쨍쨍한 햇빛과 빗소리가 가득 해지는 장마가 찾아오며, 가을에는 모든 것이 익어 추수를 기다리고, 그리고 겨울에는 한 해를 마무리하며 다가올 봄을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계절이니까.


각자의 청춘은 다르다.

봄의 찰나에 화려하게 피고 빠르게 땅으로 꽃잎을 흩날리는 벚꽃과 같은 청춘도 있고, 씨에서 힘겹게 싹을 틔워 잘 보이지 않는 땅속에서 흙더미를 뚫고 새싹을 위로 내보내기 위해 힘쓰는 그런 청춘도 있다. 하지만 모양새가 다르다고 해서 청춘이 아님이 아님을. 우리 각자의 봄을 지나고 있는 것임을. 결코 죽을 만큼 아프다고 해서 이것이 푸르르고 싱그러운 것이 아닌 것이 아님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또 당신이 푸르른 봄을 지났다고 해서, 이 인생이 끝난 게 아님을. 당신은 여태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인생의 계절로 들어서는 것임을, 기대하며 걸어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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