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추적추적 내릴 때,
화단가 축축한 흙길 위에
느릿느릿 달팽이 한마리
작고 연약한 몸 위에
제 몸집만한 단단한 집을 짊어지고,
한 뼘 한 뼘, 아주 천천히 나아간다.
작은 몸에 온전히 짊어진 동그란 집
세상의 비바람으로부터의 유일한 안식처
동시에 평생을 지고 가야할 숙명같은 무게
어떤 생각으로 어떤 마음으로 길을 가고 있을까
문득 그 지리한 걸음걸이에서 낯익은 그림자를 본다.
물웅덩이에 비친 내 코는 석자다.
안전한 보금자리,
편히 쉴 수 있는 나의 공간
온 생을 바쳐 지어 올리는
네모난 나의 안식처
그 지붕 아래 잠시 몸을 누이고자,
얼마나 숨 가쁘게 살고 있는지
때로는 그 무게에 짓눌려 한숨짓고
때로는 집이 감옥이 되어 하늘을 잊는다.
비는 여전히 추적추적 내리고,
내 시선을 모르는지
달팽이는 여전히 제 속도대로
그 작고 외로운 행진을 계속한다.
잠깐 고개 돌려 주변을 둘러보니
도로 위에도, 그리고 가게마다
이 축축한 세상 힘겹게 건너는
작고 외로운 달팽이들 가득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