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05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냥냥 Oct 27. 2024

*

사건번호 21-88720호, 피고인 이지안. 어제밤 내내 검사와 변호인이 제출한 자료를 읽었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왜 지안이가? 다른 사람 아닐까? 인적조회 사항을 꺼내 다시 읽어본다. 소용없다. 이건 그 지안이다. 연관인은 사건 배정에서 제외되는데 왜 내가? 서류를 통해 지안의 과거를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교, 고등학교, 중학교까진 나랑 안겹치는게 맞고… 출신 학교를 훑어보다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 사건에만 집중하느라 인적사항엔 소홀했음이 들통난다. 하림초등학교 95년도 졸업. 내가 아는 지안이라면 92년도 청평, 그리고 국민학교를 졸업했어야 한다. 왜냐면 나랑 같은 반이었으니… 가만, 그해 여름방학날 사건이 퍼뜩 떠오른다. 그 후로 지안과 함께 반에서 보낸 가을은 얼른 기억의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는다. 뭐지? 논리적으로 생각해보자. 그러니깐, 내 지안이에 대한 내 기억이 반쪽짜리였단 말이지? 궁금함을 참지 못하는 성격 탓에 곧장 휴대폰을 손에 들었다 이내 내려놓는다. 이걸 뭐라고 물어봐야하지? 왜 나이도 같으면서 난 국졸이고 넌 초졸이냐고? 왜 나보다 3년이 졸업이 늦었냐고? 왜 여름방학 이후에 너에 대한 기억이 없냐고? 어떤 질문을 해도 피고인에 올라온 이지안이란 이름을 설명할 수는 없다. 형사사건이란 범죄다. 민사는 당사자간 합의에 다다르도록 하는 것이 맞지만 지안은 잘못하면 범죄자가 된다. 그 지안이가, 나쁜이들을 벌주겠다고 단호한 표정을 짓던 어린 지안이가, 절대 남에게 피해따위 끼치지 않을 것 같은 고요한 섬같은 지안이 실은 고요한 태풍의 눈에 가까웠다는 뜻 아닌가. 하… 상념을 거두고 다시한번 사건 조서로 시선을 옮긴다. 피해자를 겁박하고 쓰러지게 함, 피해자는 큰 충격을 입고 정신과 요치료 상태, 이건 아무리 양형을 주장해도 무조건 실형이 나올 것이다. 피해자측 증언인 없음, 이게 그나마 걸 수 있는 희망인가? 흐음… 머리가 지끈거려 신음이 세어나온다. 피해자와의 관계, 직장 상사. 뭔가 원한이 있었던걸까? 이성을 잃고 싸운건가? 지안과 사건을 엮어보려 여러 상상을 해보지만 납득되는 부분이 없다. 지난본 길거리에서 마주친 이후로 지안과는 제법 자주 보게됐다. 둘다 지방 출신이라 서울에서 할 일이라곤 말 그대로 일 밖엔 없었고 마침 같은 지하철역을 이용하는 위치에 직장이 위치해 있어서 더 쉽게 마주치게 된 것이다. 분명, 사건일 이후에도 만나서 얘기했단 말이지. 누군가와 거대한 싸움을 마친 끝에 상대를 정신적으로 피폐하게 만들어버리고 온 사람이라면 가질법한 안절부절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늘 그래온것처럼 잠잠했다, 숨소리, 눈빛조차 평온함 그 자체. 내가 지안이를 잘 모르는 것일까? 아냐. 무언가 석연치 않은 일이 벌어진것이 분명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