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은한 온도 Apr 21. 2024

등번호 매기기도 부전여전.


@roscoadrian 출처 Resplash



내 남편은 고질병이 있다. 바로 등긁기다. 연애할 때 부터 긁어달라 아우성이더니 결혼하고 부터는 긁는 범위가 더 넓고 다양해졌다.



오죽하면 글도 썼다.

https://brunch.co.kr/@lastnfirst74/41



등에서부터 목, 팔, 손가락, 발가락, 무릎, 허벅지, 엉덩이까지 긁어달라는 곳도 가지가지다.



나는 긁어주기가 너무너무 싫지만, 다른 것은 다 포기해도 등긁기 만큼은 포기할 수 없다니 당최 안 긁어줄수도 없다.



심지어 자고 일어나서 눈도 뜨지 못한 채로 제일 먼저 하는 말이

"여보, 등 긁어줘" 다.



나참....



특히 내가 집안에서 무언가를 엄청 하고 있을 때 긁어달라 하면 정말 화딱지가 난다. 나는 그럴때 도깨비같은 표정으로 긁는다. 나같으면 내 표정을 보면 기분이 나빠서 '그렇게 할 꺼면 하지마!' 할법도 한데 절대 포기할 줄을 모른다.



내 표정을 보고 본인이 기분나빠하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는 매우 T스러운 답변을 한다.



하지만 덕분에 나는 잔뜩 화를 내며 긁을 수 있다.



그런데 최근에 남편이 등에 번호를 붙이기 시작했다.


@dominikhofbauer 출처 Resplash



등을 도화지라고 하면 마치 전화 자판처럼



1   2   3

4   5   6

7   8   9



이렇게 번호를 붙이더니



여보 5번

여보 7,8,9 길게 왔다갔다.

1하고 2사이



라며 위치를 알려준다...



나참... 내가 본인이 원하는 위치를 잘 못찾아서 번호를 붙여봤다나.. 번호를 부를때마다 마치 조종을 당하는 기분이었다.



어이가 없었지만.. 신기하게도 소통이 확실해졌다.





더 당황스러웠던 건 등번호 붙인 날 다음날이었다.



자려고 누웠는데 갑자기 첫째가 등을 긁어달라고 했다. 맞다. 우리 첫째도 꽤 자주 등을 긁어달라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손가락을 오른쪽으로 가리켰다.



@johanneswre 출처Resplash



"??? 이게 뭐야? 손가락 잡아?"

"아니, 등에서 조금 오른쪽을 긁어달라고."



아...?!



그러더니 손가락을

좌, 우, 위, 아래로 표시하며 가려운곳의 위치를 알려주는 것이 아닌가...



엄마, (위) 더  (위)

엄마, (좌)(위)



조이스틱이 된 기분.



첫째의 손가락을 보는데 남편 생각이 났다.



아니 남편이 등번호 매기는 것을 보여준 적도 없는데, 둘이 어쩜 비슷하게 행동하는지.



신기하고도 소름돋았다.



유전의 무서움이랄까. 피는 못속이는 것이랄까. 아니면 같은 T라서 사고방식이 비슷한거랄까.



여하튼, 둘이 정말 닮았다. 매번 나의 예상을 뛰어넘는 말과 행동을 하는 것도 참 똑같다.



그리하여 나는 여전히 이 닮은 꼴 부녀의 등긁기 담당이다. 이제는 등번호와 등 수신호로 더 확실하게 긁을 수 있게 되었다.  



하하하하...^^

매거진의 이전글 드디어 7살 첫째의 돈 벌기가 시작됐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