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아빠에게 머리채를 잡혀 2층으로 질질 끌려가고 있다. 우리는 경기도 오산에 한 조립식 건물에 살았다. 회색으로 된 직사각형의 건물 가장 왼쪽에는 2층으로 올라가는 회색 시멘트 계단이 있다. 투박하게 만들어진 그 계단에는 떨어짐 방지를 위한 같은 색의 시멘트 벽이 있었는데 엄마는 그 난간을 붙잡고 한사코 2층으로 올라가지 않기 위해 버텼다.
엄마 나이 31살이었다.
엄마가 끌려 올라간 2층에서는 무언가가 깨지고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묵직한 타격 소리도 들리고 간간히 비명소리와 신음소리도 섞여 나왔다. 나는 차마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들어갈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너무 무서워서 마치 얼어붙은 듯 그 자리에 서 있을 수 밖에는 없었다.
아빠는 주로 엄마를 때렸다. 가끔은 나도 맞았다. 식사예절에 유난히 엄격했던 아빠는 내가 반찬투정을 하거나 밥을 남기기라도 할 때면 그 큰 손으로 나의 뺨을 때렸다. 내 몸이 붕 떠서 상으로부터 조금 떨어진 다른 곳으로 고꾸라지곤 했다. 그리고는 나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꾸역꾸역 입 안으로 음식을 쑤셔 넣어 삼켰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울면 안 된다는 점이었다.
아빠는 늘 집에 없었다. 아빠가 어디 있냐고 물으면 엄마는 돈 벌러 갔다고 대답했다. 아빠는 돈을 벌러 가서 며칠이고 몇 달이고 시간을 흘려보낸 뒤에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났다. 나타나면 늘 이렇게 사달이 났다.
나는 아빠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다. 아빠가 없으면 나와 내 동생과 우리 엄마는 참 행복한데 아빠만 등장하면 삶이 산산조각이 나는 기분이 들었다. 엄마의 눈은 멍들어있는데 우리에게 살갑게 얼굴을 비비대는 아빠를 대할 때면 혼란스러웠다. 좋아할 수도 싫어할 수도 없는 그 상황과 감정이 정말 싫었다.
'엄마는 왜 맞았을까?'
늘 궁금했다. 나야 반찬투정을 했으니 맞아야 했다 손 치더라도 엄마는 무슨 잘못을 했길래 이렇게 맞아야 했던 것일까? 어린 나이였기에 그땐 이유가 있어서 그런 줄 알았다. 이유가 있지 않고서는 이 상황이 납득이 되질 않았다. 이유가 있어야만 했다.
나중에 알게 된 그때 엄마의 죄목은 '보험회사에 다녀서'였다. 그렇게 계단을 질질 끌려갔던 이유가 '보험회사에 다녀서' 라니..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맞아야만 했던 엄마의 심정은 오죽했을까..돈 벌러 갔다던 아빠는 평생 돈을 주지 않았고 엄마는 그렇게 맞으면서 꿋꿋히 일을 했다.
나는 이렇게 폭력으로부터 출발한 나의 첫 기억이 참으로 슬프다. 아빠는 알까? 내 인생의 첫 기억이 이 순간이라는 것을..
엄마는 이 폭력의 한가운데에 있으면서 그 어떤 원망도 하지 않았다. 하물며 우리에게 아빠 욕조차 하지 않았고, 본인이 힘들다고 우리에게 같은 파편을 쏟아내지도 않았다. 엄마는 그래도 아빠가 있었기에 너희가 있었다며 우리에게 사랑한다 말해주었다. 엄마는 밝고 예뻤다. 언제나 삶을 웃으면서 살았다. 어둠의 기운은 엄마에게서 머물지 않고 늘 잠시 스쳐 지나갔다. 나는 그게 참 신기했다. 신기하다 못해 존경했다.
결혼을 하고 삶이 힘들어지면 나도 모르게 가장 약자인 내 아이에게 화가 전달될 때가 있다. 분명 아이 잘못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시답잖은 이유를 붙여 아이에게 내 화를 정당화한다. 35살이 된 지금도 내 마음 하나 컨트롤하는 것이 쉽지 않은 데, 31살이었던 엄마는 그 상황에서 어떻게 가능했을까? 과연 나라면 엄마처럼 웃을 수 있었을까?
실은 때리는 아빠보다 맞는 엄마가 더 강한 사람이었다.
나는 삶이 힘들 때면 엄마의 삶을 돌아보며 다시금 마음을 다진다. 아빠의 딸로 태어난 것은 유감이지만 엄마의 딸로 태어난 것은 참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