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개월간의 크리야 요가 예비 수련을 마치고
“Hello.”
2주 전 아침 출근길, 로스앤젤레스에서 온 SRF 미국 본부의 전화를 받았다. 휴대폰 너머 들리는 여성은 천천히 전화 건 목적을 설명했지만, 긴장한 내겐 그의 발음이 들렸다 안 들렸다 한다. 다행히 센터에서 한국어 통역을 연결해 주어 매끄럽게 이야기를 마쳤고, 다음 통화 시각을 약속한 며칠 후 다시 전화를 받았다. 이번에는 처음부터 통역하는 분과 함께 대화했다.
한계도 없고 경계도 없는 자유로운 삶은 가능할까? 그렇다고 믿는다. 상식과 상상으로 가능하지 않은 일들에 대한 가능성도 모두 열어두는 편이다. 그런데 살면서 이런 사고를 공유하는 타인을 만나 깊은 대화를 나눌 기회는 거의 없었다. 그저 어떤 일이든 가능하다는 것뿐인데도, 낯선 이야기에 불편해하는 사람은 많기 때문이다.
스스로와 소통이 되지 않는 날도 많았다. 조그만 일에 가슴이 두근거리다 폭풍우가 휘몰아치고, 뭉치고 아픈 몸을 풀기 위해 응급조치로 요가원을 다녀오던 날들이. 병원에 다녀와 얼마 지나지 않으면 같은 괴로움이 반복되던 경험은 내적 평온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했다. 한편으로는 어려서부터 갈구한 자유와 아름다움에 대한 본질적 깨달음을 얻고 싶었다.
결국 일반 요가원에서 해주지 않는 구체적인 명상 수업을 찾아 전문 명상센터에서 상담받기도 하고, 싱잉볼을 구입해 명상하기도 했지만 그걸로는 충분하지 않아 관련 책들을 자주 사서 읽었다.
어느 날 도서앱에서 [어느 요기의 자서전]이라는 제목의 책을 추천했다. 표지 분위기도 심상찮고 두께도 상당했지만 읽어보니 흥미롭고 의식이 정화되는 기분이다. 서술된 사건들의 세부사항보다 저자의 순수하고 인간적인 면모에 끌려, 점점 더 집중해서 읽게 된 책은 결국 'SRF'로 나를 이끌었다.
SRF(Self-Realization Fellowship,1920~)는 정통 크리야 요가를 배울 수 있는 명상 단체다. 보통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아사나(요가의 다양한 자세) 중심의 요가, 신체 단련을 통한 멈춤을 넘어 크리야 요가는 명상의 기술을 통해 내면의 신과의 합일을 직접적이고 효율적으로 추구한다. 기존의 믿음이나 종교에 관계없이 원하는 누구나 원하는 언어로(한국어는 아직 없지만!) 온라인 레슨을 신청할 수 있다.
우편 발송된 교재와 홈페이지의 자료로 수강이 이루어지는데, 조금 특이한 점은 수업 내용에 대한 기밀을 유지하겠다는 서약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자필 서약이 접수되면 정해진 기간 이상의 기초 예비수련과정을 거쳐 정식으로 크리야 요가를 신청할 수 있다.
'이게 맞나? 이렇게 하는 게 맞겠지?'
처음에는 아침저녁 15분씩 가만히 앉아있기도 쉽지 않고, 그동안 스스로 해오던 명상들과 다른 점들이 어색했다. 그럴 땐 홈페이지에 올라와있는 보충 수업을 보며 내용을 재차 확인했다. 영어 교재는 구글, 애플, 파파고의 번역을 비교하면서 해석이 어색한 부분을 직접 다듬고 정리했다. 공부가 진행될수록 자리에 앉는 시간이 늘어나, 두 달쯤 지나자 30분(하루 60분)은 명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듬해부터는 하루에 총 90분~180분의 명상이 가능해졌다. 명상의 깊이와 길이는 비례 관계였다.
몸과 마음이 지친 날이나 휴일, 여행을 떠난 날은 쉬다가 수련을 빼먹기도 했다. 내킬 때 가끔 하는 명상이야 늘 기껍겠지만 매일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기니 하기 싫은 마음이 솟구친다. 오전 6시쯤 일어나 45분~1시간을 명상하고, 퇴근 후 다시 45분~1시간 명상(휴일은 더 오래)을 하는 루틴은 그래서 아직 완전하지 않다. 이불 속에서, 그리고 이불 속에 들어가기 전 매일 펼쳐지는 두 차례의 내적 결투. 사탄은 멀리 있지 않다.
공부한 지 8개월이 지났을 때 드디어 크리야 요가를 정식 신청할 수 있다는 안내문이 왔다. 교재를 전체적으로 한 번 읽긴 했지만 예상보다 많은 분량을 꼭꼭 씹어 소화시키지 못한 상태였다. 크리야를 배울 수 있는 날만 고대했지만 바로 신청서를 쓰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앞으로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 가르침을 끝까지 수행할 있을지 고민하고 신청서와 기밀유지 서약서를 다시 보내기까지 1달이 더 걸렸다. 그날부터는 본부와의 통화 절차를 기다리며 철저히 수련했다.
본부에서 온 전화에서 다행히 이렇다 할 어려운 질문이나 테스트는 없었다. 무얼 걱정했나 싶은 편안한 분위기의 상담이었다. 그동안의 수련에 대한 보고서에 대한 부드러운 칭찬, 그리고 잘 되지 않는다고 쓴 부분에 대해 코멘트를 주셨다. 궁금한 건 없냐고 묻는 말에 평소의 명상 자세에 대한 추가 질문을 했다.
인간의 잠재력은 무한하다는 생각을 맘껏 추구해도 해도 좋은 이 단체에서 오늘도 내면의 신을 찾는 연습을 한다. 아침저녁뿐만 아니라 쉬는 시간 틈틈이 신을 생각하고 신이 곧 나임을 깨달으려 노력하면서. 만만치 않았던 기초 수련 과정이 끝나니 앞으로 배울 크리야 요가의 명상 수련 강도는 어떨지 궁금하다.
수련만 중시하고 생활의 의무를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는 가르침에 따라 밥벌이에 속하는 일도 명상의 일부로 생각하니 일상이 한결 평화로워졌다. 물론 다양한 고민이 여전히 존재하지만, 필요한 성장을 위해서라고 생각하면 명치에 있던 덩어리가 쑥 내려가는 것을 느낀다. 얼마나 빨리 의식을 전환하는지가 관건이다.
몸과 마음은 연결되어 있기에 본격적으로 명상을 배우기 시작한 이후로는 특별히 아픈 곳이 없었다. 오히려 몸과 마음이 불편한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마음이 커져서, 맛있고 건강한 음식을 제공하는 업에 종사한다는 것이 새삼 행운임을 깨닫는다. 매일의 명상 루틴뿐만 아니라, 출근해서 조리대 앞에 설 때 경건해지는 또 하나의 까닭이 생겼다. 옴, peace,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