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야 요가 입문 후 한 달째의 기록
짙푸른 글씨가 인쇄된 하얀 봉투를 열었다. 얇은 세 권의 책자와 붉은 꽃잎 몇 장이 나온다. 고대하던 크리야 요가 수업 첫 교재! 부드럽고 탄력 있는 꽃잎은 이 신성한 시기에 대한 축복의 상징이라고 했다. 파라마한사 요가난다 구루가 앉아 명상하던 자리의 장미다.
미국에 살았다면 공식 입문식에 참석했겠지만 애석하게도 이곳은 한국. 방에서 비공식 크리야 요가 입문식을 치르기로 한다. 꽃집에서 사 온 이름 모를 꽃 한 송이와 밀랍초, 바나나 한 송이를 준비하고 몇 달 전 SRF 북샵에서 구매한 인센스를 피웠다. 소소한 준비물 몇 가지로 공간의 분위기가 경건해진다.
처음 치르는 의식이니 매뉴얼에 따라 한 순서, 한 순서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나 자신과 창조의 근원인 신을 위한 내밀한 시간. 다시 돌아오지 않을 소중한 순간.
크리야 요가 계보의 구루들께 인사와 기밀 유지 서약의 기도를 올리고 나서 일어난 놀라운 일 하나는, 해석하며 읽는 데 보통 일주일씩 걸리던 레슨 교재 1권을 그 자리에서 다 읽은 것이다. 매뉴얼을 따라가다 보니 교재를 모두 읽으라 쓰여있어서 내심 놀랐지만 그냥... 읽었다. 집중해서 읽으니 약 2시간 만에 마지막 장이었다.
처음 배우는 크리야 행법을 천천히 연습하고 명상으로 돌아왔다. 이제 정식으로 크리야 요기(Kriyaban)가 되었으니 기쁘고… 큰일이다.
크리야 딕샤를 받기 전 - 즉 예비 수련기간 동안 명상에 할애한 시간은 하루 90분 정도였다. 아침저녁으로 약 45분. 출근 전, 퇴근 후 얼마 남지 않는 자유 시간을 그러모아 수행에 쏟았다. 피곤한 날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씻고 바로 자고 싶었지만, 그런 날에도 명상을 했고 연신 졸다가 침대로 간 날도 많다.
이제 새롭게 배운 15분~30분의 크리야 수련을 더하면 하루에 최소 2시간은 명상해야 한다. 사실 2시간은 짧다. 훨씬 더 깊고 길게 명상해야 원하는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예비 수련기간 동안 받은 교재를 아직 모두 정독하지 못한 것도 마음에 걸린다. 레슨이 심화될수록 머리로는 이해되지 않는 내용이 나오면서 하루에 한 페이지를 넘기기 어려울 때도 많다. 집중해서 직관적으로 읽어야 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크리야라는 새로운 장이 열려서일까? 2시간 이상의 명상이 생각처럼 부담스럽지 않고 매일 조금씩 자연스러워지고 있다. 예비 수련기간 마지막 즈음에는 별로 진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지루하고 답답한 날도 있었다. 그런데 크리야를 수련한 지 2-3주쯤 되자 명상의 쾌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운동이 맛있다고들 하는 것처럼, 어느 순간 명상이 짜릿하고 맛있게 느껴졌다. 미처 하지 못하는 날이 생기면 죄책감보다는 아쉽고 아까운 기분에 그럴 수 없었다.
이제 겨우 한 달이지만 크리야 요가 - 명상을 하며 삶에 나타난 긍정적인 변화를 기록해 보면.
1. 일찍 일어난다.
: 명상을 하면 할수록 잠에서 일찍 깬다. 무리하게 잠을 줄인 것이 아니어서, 대부분 깰 때마다 개운하고 정신이 맑다. 명상하는 동안 몸이 잠잘 때처럼 깊은 휴식을 취하기 때문이다(물론 명상이 잘 된 경우지만). 수면을 중요하게 여기고 7시간 이상 자야 한다는 주의인데, 명상을 하면서는 6시간만 자도 충분하다. 하루종일 좌선하는 스님이나 성직자들이 새벽같이 일어나는 것 또한, 고행이 아니라 일정 수준 이상에서는 적게 자도 멀쩡하기 때문이 아닐까? 자는 것, 먹는 것과 같은 생리적인 조건에 점차 덜 의존하게 되는 건 그만큼의 자유를 의미한다.
2. 의식의 수직 확장
: 의식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깊어지면서 평소와 다르게 의식을 사용한다. 눈앞의 업무에 확실하게 집중하는 현재의식뿐만 아니라 상상력과 느낌을 활용한 잠재의식도 시험해 보고, 만물에 대한 사랑과 하나 됨으로 가득한 초의식에 머무르려고도 노력하면서 이런 상태들의 혼재를 즐긴다. 오랜 기간 동안 현재 의식 내에서 인식의 범위를 수평으로 확장하는 데만 관심이 있었다면, 지금은 더 높은 의식 상태로의 확장을 꾀하고 있다.
3. 의지력과 집중력 상승
: 명상 전에 글을 읽거나 차를 마시고, 고양이들에게 간식을 주는 등 여유를 누리는 날이 있다. 정말 완벽한 날이다. 하지만 조금 늦게 일어났어도 그날의 명상 루틴을 끝내 완수하고, 일상의 의무를 평소보다 집중해서 빠르게 해내는 날이 있다. 이런 날은 더 멋진 날이다. 해야 할 일은 꼭 해낸다는 의지력, 그리고 지금 꼭 필요하지 않은 생각 대신 중요한 일에 몰입하는 집중력이 커지고 있음을 느낀다.
크리야 입문을 통해, 어쩌면 이번 생에서 가장 축복받은 시기를 지나고 있다. 일상 속에서 마음 같지 않은 일들이 아직 많지만, 그럴 땐 가만히 장미꽃을 꺼내 구루의 이름을 불러본다. 무한한 스스로(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항상 풍요롭고 지혜로우며 사랑하게 하소서. 끊임없는 헌신을 통해 스스로를 돕고 사람들을 도울 수 있게 하소서. 나머지 기도는 비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