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레카야자 Jun 01. 2020

모두는 1년여전의 악몽을 떠올렸다.

1년 만에 또 '고성' 대형 산불…12시간 만에 진화

금요일 밤, 퇴근 후 친구들과 식사 후 성수동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하고 있었다.

맥주를 한 잔 하러 갈까 말까하는 얘기들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당직자 선배로부터 전화가 왔다.

"고성에서 큰 불이 났다. 비상대기조 중 토요일 근무가 없는 네가 좀 가야겠다"

친구들이 되레 숙연해졌다.


아니 이천에서 밤을 새고 온게 24시간이 채 안됐는데

이게 무슨 소리지


이렇게나 큰 일이 두개가 한꺼번에 일어나다니

이게 무슨 일이지.


바로 집으로가 짐을 싸고 배정된 오디오맨과 챙길 장비들에 대해 연락한 뒤

회사 차량을 기다렸다.


작년에도 이맘쯤 강원도에 갔었다. 그 때 생각이 났다.

산 중턱에서 연기를 뒤집어 쓰며 뉴스특보 중계를 연결하던 기억,

간혹 동선이 겹쳐 동기들을 만나면 그렇게나 반갑던 기억,

매일 밤이 되면 오늘은 누가 서울로 올라가고 누가 더 남을지 결정을 초조하게 기다리던 날들의 기억들.


얼마 전 식목일 안그래도 고성의 주민들이 헐벗은 산에 나무를 심고

재건을 도모한다는 기사들을 봤었는데 일 년여 전 만났던 피해 주민들도 생각났다.

주민센터 밖에 설치된 cctv를 취재진과 함께 모여 보며 탄식하던 주민분들이나

평생 모아둔 5천여만원 현금을 통째로 솥에 넣어두었다가 화재로 인해 모두 소실한 할아버지,

키우던 두 마리 강아지 중 한마리가 줄에 묶인채 죽었다며 비통한 표정으로 우리에게 보여주던 아저씨.



https://brunch.co.kr/@engbenedict/83



그리고 일 년 후 그 악몽이 다시 떠올랐을 그 지역의 모든 분들이 걱정됐다.


구체적으로 어디로 가야할지 정해지지도 않은채 일단 고성 방향으로 차는 달렸다.

일단 관계기관장들이 모여있는 헤드쿼터로 향했다.

도착하자 마침 브리핑을 앞둔 시점이었다.

일부러 시간에 맞춰 도착한 것은 아니었는데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미방분> 고성 산불 관련 소방 브리핑 및 관련 기관 업무보고


진영 행안부 장관은 작년 고성산불 기간 중 본인의 임기를 시작했다.

당시 자정을 기해 김부겸 전 행안부 장관과 공식적으로 업무 교대를 하던 순간에도

내가 그를 찍고 있었다.


그로부터 일 년 후 취재과정에서 그를 다시 보게 됐는데,

또다시 강원도였고 또 산불이었다.


브리핑을 커버 한 후 주변 지역의 소방차들이 모여있는 장소로 이동해

각지의 소방차들이 집결해있는 모습을 스케치했다.

여러 지역의 소방차들이 발벗고 달려왔다는 내용의

리포트를 위한 그림이었다.


이후 도원저수지로 이동했다.

곧 동이 트면 소방헬기들이 그 곳에서 물을 길러 화재를 마저 진압한다는 소식이 있었다.


저수지에 도착해 해가 뜨기까지 좀 기다리는데

바람이 정말이지 장난이 아니었다.

성인 남자 넷이 타고있는 스타렉스가 좌우로 흔들렸고

헬기를 스케치 할 최상의 장소를 보기 위해 잠깐 차에서 내리자

몸이 휘청거릴 정도였다.

카메라를 트라이포드에 세워두고 손을 떼면 그대로 쓰러질 강풍이었다.



(좌) 200502 뉴스투데이 <전국서 소방차 집결…민가 확산 방지 총력> / (중,우) 뉴스데스크 <1년 전·안동 산불과는 어떻게 달랐나?…'바람이 갈랐다'>



'이 와중에 헬기가 뜬다고?' 믿을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동틀 무렵의 첫 헬기 몇대는 당장이라도 추락할듯

위태위태하게 수면으로 내려와 물을 길렀다.

트라이포드의 높이를 최대한 낮추고 카메라를 끌어안고 찍었다.



<미방분> 화재 진압용 물을 기르는 산림청 헬기



그러다 해가 완전히 뜨자 신기하리만치 바람이 잦아들었다.

그때부터는 쉴새없이 헬기가 오가며 물을 길러갔다.


어느정도 다양한 각도와 사이즈의 스케치를 마친 후

오디오맨에게 메모리카드를 주며 MNG송출*을 부탁했다.

외진 곳이어선지 현장에서는 LTE연결이 불가능했다.

오디오맨이 차량 형님과 시내 방향으로 조금 달려 LTE가 터지는 곳을 찾아 송출했다.  


헬기 커버를 마치고 다시 헤드쿼터로 돌아가자

완진 브리핑이 있었다.

미미한 잔불들 말고는 완진이 되었다는 이야기,

그러나 얼마 전 안동에서의 산불로도 알 수 있듯 아직은 방심하면 안된다는 이야기.


다행스러웠다.

놀란 가슴을 안고 잠 못이뤘을 주민들이

이 뉴스를 보고 내쉴 안도의 한숨이 떠올랐다.

암, 작년같은 일이 생겨서는 절대로 안되지.


'고성'과 '산불'이라는 키워드를 듣고 금요일밤 내려올 때 나는

2박 3일정도의 짐을 싸들고 왔는데

하룻밤만에 상황이 종료됐다.


완진 브리핑을 커버 한 후 바로 앞 백반집에서 아침을 먹었다.

오디오맨과 서로 "너는 몇장의 팬티를 챙겨왔냐"며 웃었다.


이천에서 밤을 새고 퇴근한지 만으로 채 하루가 안돼 출발한 고성이었다.

피로가 몰려왔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눈을 감자마자 서울에 도착했다.


다행이었다.

참 다행이었다.




MNG출* : 휴대용 영상 송출 장치인 MNG(Mobile News Gathering)기기를 이용하여 LTE망을 통해 영상을 보내는 방식











관련리포트 ;

https://imnews.imbc.com/replay/2020/nwtoday/article/5752115_32531.html

https://imnews.imbc.com/replay/2020/nwdesk/article/5752947_32524.html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