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칙성이 낮은 영어, 무엇부터 시작 해야하나?
내가 다니던 대학 캠퍼스 바로 옆에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여자 고등학교가 있었다. 고등학교 본관은 긴 직사각형 4층건물로 되어 있었다. 일층과 이층은 고등학생 교실로 썼고, 사층은 여고생 기숙사가 있었다. 특이했던 것은 삼층이 대학 기숙사였다는 것이다. 대학 캠퍼스까지 5분도 안 되었다. 가격도 저렴했다. 수녀원이라서 안전했다. 주로 동양에서 온 유학생들에게 인기가 좋아서 경쟁이 심했다. 운 좋게도 나는 여기에 방을 하나 얻을 수 있었다.
삼층으로 가는 통로는 정 가운데 있는 엘리베이터 하나였다. 엘리베이터를 내리면 바로 오른쪽에 거실과 주방, 그리고 그 옆으로 6개의 방이, 왼쪽에 샤워실과 화장실, 그리고 7개의 방이 죽 늘어서 있었다. 그해 여름방학 나는 1호실에 있었다. 복도 맨 오른쪽 끝방이라서 왔다 갔다 하는 학생들이 보이지 않았다. 날이 더우면 방문을 활짝 열어 놓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날도 그렇게 문을 열어놓은 채로 침대에 누워 쉬고 있었다. 주위는 바람소리와 새소리만 가득했다. 학기가 끝나고 오랜만에 평화로웠다.
그런데 갑자기 이 평화를 깨는 힘겨운 소리가 들렸다: HELP! 분명 학생 목소리는 아니었다. 그날은 나 빼고 학생들이 아무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내 방과는 정반대 끝쪽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대학 기숙사층을 관리하시는 수녀님의 목소리였다. 연세가 꽤 드신 분이셨다. 노환이 들어 보행 보조기를 끌고 다니셨던 분이다. 나는 놀라서 긴 복도를 단숨에 달려가 보았다.
침대에 걸터앉아 숨을 헐떡거리신다. 수녀님은 나에게 전화번호가 적힌 꾸깃꾸깃한 종이쪼가리를 하나 급하게 쥐어 주신다. "Call here and say, I need help!" 그냥 이렇게 말하라고? 장소가 어딘지 말 안 해도 된다고? 너무 힘겹게 말씀을 하셔서 더 묻지도 못했다. 겉으로는 침착하게 그러나 마음은 급해서 튀어 나가려는데 뒤에 대고 이렇게 말씀하신다. "And come down!"
그래! 그때는 핸드폰이란 것이 없었던 때였다. 옛날식 전화기가 딱 한 대있었다. 엘리베이터 옆에 수화기가 달린 검은색 다이얼 전화기였다. 나는 얼른 전화를 걸어서 수녀님이 시키는 대로 말했다. "Emergency! Emergency! OO sister needs help!" 그리고 다음으로는 "And come down"이다. 재빨리 엘리베이터를 타고 일층으로 내려갔다. 방학을 한 일층의 긴 복도는 어둡고 조용했다. 교실마다 문은 다 잠겨있었다. 커다란 현관문도 굳게 닫혀 있었다. 꽁당거리는 내 심장소리와 헐떡거리는 숨소리만 들렸다. 이제 뭘 하는 거지? 그냥 여기서 구급차를 기다렸다가 문 열어주라는건가?
그런데 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게 뭔가 잘못된 것 같은데? 왜 Go가 아니라 Come이었지 하는 순간! Shit! Come down! 이 여기가 아니구나! down이 수직으로 위에서 아래가 아니었어. 자기에게 다시 오라는 소리였어! down the hall! 수평에서도 복도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도 down이라고 할 수 있는 거였어. 머리는 down을 분석하느라 휙휙 돌았고, 몸은 허벌라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한달음에 수녀님에게 다시 가느라 바빴다.
역시 수녀님은 숨쉬기를 힘들어하면서 침대에서 떨어질 듯 땀을 뻘뻘 흘리고 계셨다. 구급대원들이 올 때까지 수녀님과 같이 있었던 것 같은데 뭘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수녀님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보다 더 당황을 했었다. down 하나 잘못 이해하여 사람 하나 잡을 뻔한 일이 너무 기가 막혔기 때문이다. 사실 수녀님은 얼마 안돼서 은퇴를 하셨다. 지금은 이미 돌아가셨겠지.
나중에 돌아보니, 이것이 모두 한국식으로 일대일 대응 down = '아래'로 외우고 있었던 탓이었다. '아래'는 공간적으로 수직상태에서 아래로만 굳게 알고 있었다. 따라서 건물 밑으로 내려가 구급차를 기다렸다 문 열어주라는 뜻으로 알아들었다. 하지만 수녀님 같은 노환자들은 이름만 대면 이미 건물 액세스 번호까지 다 등록되어 있던 국가였다. 아래 내려가 기다릴 필요가 없던 것이다. 선진국은 선진국이다. 인권의 범위가 참으로 넓도다! down을 수직적으로 아래라고만 외우고 있었기 때문에 불상사가 있을 뻔했다. 일층으로 내려갔을 때 뭔가 안 이상했다면, 끔찍하다.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을 쓸어내린다. 한동안 아무에게도 말을 못 했다.
내가 한국에서 배워왔던 영어학습의 습관이 단적으로 드러났던 일화였다. 뉴욕에서 했던 영어습득과는 무관하게 국내식 학습습관을 버리는데 실수도 잦았고 기간도 많이 걸렸다. 무엇이 이 습관을 벗어내는데 시간을 많이 걸리게 했나? 국내 영어학습과 관련하여 주목해야 할 것은 평가기준이다. 무엇을 기준으로 영어실력을평가당했는가?
말은 굳이 둘로 쪼개보면, 말의 외형과 의미가 있다. 스위스의 언어학자 페르디낭 드 소쉬르 Ferdinand de Saussure가 어려운 용어로 말의 외형을 기표 signifier, 말의 의미를 기의 signified라고 했다고 한다. 어려운 용어를 잠시 소개한 것은 나의 구분이 헛소리가 아니라는 근거를 주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쉽게 말의 외형인 기표는 그릇에, 말의 의미인 기의는 음식에 비유하기로 한다.
우리가 했던 영어학습은 거의 다 말의 그릇에 관한 것이다. 알파벳부터 출발하여 발음, 철자, 단어, 품사, 형태, 5 형식, 문장유형 등등은 거의 전부 그릇에 속한다. 그것도 억지로라도 규칙을 찾아 암기하는 것이 전부였다. 물론 말의 외형을 익히는 것은 영어 배우는데 큰 부분을 차지한다. 어찌했든 해서 손해 볼 것은 일 퍼센트도 없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그릇에 담는 음식에 있었다. 영어학습을 하면서 영어그릇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어떤 음식을 담아 왔는가? 과연 영어음식을 담아왔을까? 아니라고 본다. 미리 한국말에 절여놓았던 음식을 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우리가 이해하기 쉽도록 하다 보니 한국어에 절인 음식만 담아 온 것이 되었다. 예를 들어 down도 한국어에 절여진 "수직의 상태에서 아래"라는 음식이 전부인 줄 알고 암기했던 것이다. 이것으로 맞고 틀리고를 평가받았던 터라 습관 고치기도 하늘의 별따기가 되었다. 영어학습이 습득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것은 대부분 영어 외형에 한국말 의미 하나를 매달아 놓고 시험으로 못을 때려 박아 놓았기 때문이다.
뇌과학적으로 설명해 보면, 의식적 학습을 통한 영어학습은 대부분 뇌 피질에 입력된다. 어려운 용어로 전두엽에 속한 좌측 전두엽 피질과 배외측 전전두엽 피질이라고 한다. 이곳에서는 의식적 사고의 유연성이나 작업기억, 계획하기, 의식적 정보처리등을 관장한다. 특히 언어와 관련해서는 암기한 단어를 저장하는 기능을 한다. 한번 외운 것이 영원히 저장된다는 뜻은 아니다. 반복적으로 암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장된 것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암기한 것을 관리까지 해야하는 것이다. 무의식까지 인풋이 안되니 지속적으로 암기를 해 주어야 했다. 시험은 못을 때려 박은 아주 좋은 도구이다. 따라서 학습으로 얻은 영어는 뇌 표면에 '입력'된 영어정도라고 보면 된다.
영어회화는 영어학습보다 고무적이다. 여기서 사용하는 방법은 반복연습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태어나 중고등 내신, 대학 수능, 각종 취업용 영어시험을 위해 학습하는 영어를 끝내고, 진짜 영어가 궁금해졌을 때, 한 번씩 다 거쳐보는 방법이다. 쉐도잉, 반복청취, 딕테이션, 필사 등등 거의 모든 SNS 영어는 반복연습을 기반으로 한다.
반복 연습이 공략하는 것은 잠재의식이다. 자전거 타는 기술이라든지 그림 그리는 기술처럼 영어도 의식 없이 저절로 나오게 하려는 것이다. 영어를 인풋해야 아웃풋 된다는 것을 인식한 방법이다. 이 방법은 그릇보다는 그릇에 담을 음식에 주목하고 있다. 다행히 한국말에 절인 영어보다는 그냥 영어를 담으려고 애쓴다.
그런데 반복연습으로 담을 수 있는 음식에는 한계가 있다. 아무 생각이나 느낌 없이 할 수 있는 기초 수준의 일상적인 말과 간단하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정도의 말이다. 이 정도 수준의 영어까지는 반복학습으로 '의식 없이 저절로' 나오게 할 수 있다. 여기서 만족하면 그것도 괜찮다. 그러나 이것으로 영어를 습득하려고 하면 어려워진다. 이 방법에서 추구하는 '의식 없이 저절로'란 무의식적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기계적이기 때문이다.
뉴욕 한복판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길바닥에 누워있는데, 메딕이 와서 상태를 묻는다.
How are you?
다친 사람이 해야 할 반응은 이러해야 할 것 같다.
It really hurts here. Is my leg broken?
그러나, 아무 감정 없이 외운 대로 나온다.
I am fine. And you?
이런 우스개 말이 돌아다닌다. 반복연습에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방법 자체가 기계적 연습이다 보니 아웃풋도 기계적이 될 수 있다. 감정 없는 아웃풋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미 우리는 이 방법의 한계를 인식하고 있다. 자신을 무의식적으로 표현하는 영어까지는 안 담아진 것이다.
반복연습은 사람의 외모와 내면에 비유해도 마찬가지다. 이 방법은 외모를 영어로 많이 치장해 놓은 상태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내면도 영어로 채우고 있는가? 반복연습은 내면으로 들어가기 위해 일종의 드릴을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기계적인 드릴로 효과를 볼 수 있을 만큼은 내면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드릴만으로 자기 무의식까지 도달할 수 있는지는 장담할 수 없다.
역시 뇌과학적으로 설명해 보면, 반복연습된 영어는 절차기억으로 뇌 속에 남는다. 절차기억이란 암기한 것을 의식적으로 상기해야 하는 과정 없이 자동적으로 나올 수 있게 습관 된 기억들을 저장한다. 따라서 전두엽 피질에 남는 의식적 학습보다는 깊은 곳에 저장된다. 주로 자동적이고 기계적인 습관을 관리하는 기저핵이나 소뇌이다. 그러나 여기에 저장된 기억은 자칫 로봇 같은 효과가 날 수 있다.
그러나 영어학습이든 반복연습이든 이 방법에는 공통점이 있다. 규칙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이다. 영어의 외형에 치중한 학습의 경우, 결국 발음과 철자 사이의 규칙, 단어의 품사와 형태 사이의 규칙, 문장을 만드는 규칙, 영어와 한국어 의미 사이의 일대일 규칙을 암기하는 것이었고, 반복연습조차도 영어표현과 상황 사이에 마치 규칙이 있는 것처럼 한 세트로 익히는 데 치중해 있다.
어떤 방법도, 예를 들어 down이 여러 상황에서 유연하게 적응하여 쓸 수 있다고 알려주지 않았다. down은 부사일 때는 수직적으로 위에서 아래였다: He fell down.
down은 명사 앞에서 전치사로 장소를 나타내는 부사구로 쓰인다: He ran down the hall. 수평의 상황에서 조차 한쪽에서 다른 쪽을 뜻하기도 했다. 게다가 숨쉬기조차 힘든 위급한 실제 상황에서는 뒤에 나온 'the hall'이 생략이 되어도 수평적인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또한 down은 형용사로 쓰이기도 한다: I am feeling down.
down은 복수명사로 쓰이기도 한다: the ups and downs of my life.
심지어 down은 동사로도 쓰인다: The pilot downed the plane safely.
어떻게 하면 카멜레온같이 영어단어를 습득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사전을 다 외울 수는 없는 일이다. 기초단어만 뽑아서 외우는 일도 상당할 것이다. 설사 외웠다고 해도 외운 것을 각각의 실제상황에 맞추어 사용하는 일도 또 다른 작업이다. 다시 말하면, 유연하고 적응력이 강한 언어는 이 같은 연역적 방법이 힘들다.
그보다는 영어 단어가 변하는 원리를 먼저 익히는 것이 현명하다. 단어 변화의 원리는 다름 아닌 영어 자리에 있다. 영어의 자리가 작동하는 원리를 익히다 보면, 단어 변화의 범위에 대한 '감'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영어 자리의 원리는 어떻게 익히는가? 여기서는 인풋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인풋은 읽기와 듣기로 한다. 간단하게 말하면, 영어문장에 가능한 많이 노출되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수동적인 노출이 더 효과적이긴 하다.
인풋은 방법의 외형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다. 눈으로만 읽든, 날마다 한 페이지씩만 읽든, 큰 소리로 읽든, 베껴 쓰든, 혼자 읽든, 함께 읽든, 그냥 듣던, 미드를 듣던, 자세히 듣던 크게 관계는 없다고 본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방법이든 인풋 과정에서 자기 자신에게 실제로 습득되는 영어가 있는지에 달려있다. 그리고 이것이 어느 정도 쌓여야 한다.
뇌과학적으로 보면, 눈으로든 귀로든 인풋 된 영어가 속말이 되고, 이야기 형태로 전달된 감정이 변연계에 이르면 무의식적으로 습득이 된다고 한다. 물론 규칙성이 낮은 영어를 변연계 속으로 이끌 수 있는 적절하고 효과적인 인풋 방법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런 효과적인 방법조차도 한국인에게 어려운 것은 이유가 있다. 국내에 들어와 4세부터 58세까지 다양한 동기를 가진 사람들을 가르치면서 부딪쳤던 벽이 있었다. 그 벽은 바로 학습습관이었다. 나에게도 끈질기게 따라붙어 있었던 학습습관!
물론 언어활동은 뇌의 다른 여러 곳도 동시에 연동된다. 학습을 하다 보면, 분명 변연계로 들어가는 것이 있어서 체득하는 일도 있고, 반복연습하다가 역시 감정과 함께 무의식에 연결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는 대부분 우연이다. 우연의 횟수를 늘리기 위해 많이 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어렵고 힘들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학습을 하면 할수록 학습습관은 더욱 더 견고해지고 경직된다. 규칙이 느슨한 언어를 규칙으로 강제로 조여서 규칙이 있는 양 학습을 하기 때문이다. down이란 간단한 단어도 실제상황 속에서 유연하게 뜻을 파악하기 힘들 정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랜동안 이 습관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았다. 대단한 것은 없었다.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해 주는 것"이 최선이었다. 하지만 이것을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말할 용기를 내는데는 거의 십년이 걸린 것같다.
온라인에서 찾은 곳은 브런치스토리였다. 여기서는 “사실은 영어가 규칙성이 낮은 언어“라는 것을 직접 내놓고 써도 괜찮을 것같은 직감이 들었다. 아마 지금 SNS에서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흐르지도 않고, 지나치게 현학적으로 흐르지도 않게 내놓을 수 있는 곳이라고 본다. 무엇보다 내가 기존의 생각과는 달라서 좀 발칙한 생각을 내놓았을 때 관심을 줄만한 독자가 있을만한 곳이란 모종의 믿음이있었다.
내가 믿었던 대로 함부로 무시당하거나 악플이 달리지는 않았다. 오히려 “한국인에게 영어가 특히 어려운 이유는 따로있었다”란 글은 살짝 알고리듬을 타고 4300 조회수가 나오기도 했다. 이런 조회수에 실질적인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으나 나의 조금은 발칙한 생각에 신뢰를 두고 좋아해주신 소수의 성실한 독자들 덕분이라고 여긴다. 감사할 따름이다!
사실은 이것에 힘을 받아왔다. 이제는 내방식대로 조금씩 구성해 온 영어자리 이야기도 내놓을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규칙성이 낮은 영어에도 마술같은 자리의 원리가 있다는 것을 알릴 방도를 찾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영어자리 강의를 하나 기획하게 되었다.
어느 N세대와 이야기를 하다가 “사실 영어에는 품사가 정해지지 않았다”고 했는데 그 친구에게 충파가 컷다. 공교육 영어선생님이었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열심히 옳다고 믿어왔던 것에 돌을 맞은 것같았나보다. 나로서는 돌을 맞아줘서 고마웠다. ^^
다리가 하나 필요해 보였다. 8주에 걸친 강의를 짜 보았다. 이 강의를 다리삼아 건너면서 국내식 영어학습에서 벗어나 영어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잡을 기회를 가져보는 것이다. 이것으로 자신의 학습습관을 객관적으로 보게하고, 이것이 자극이 되어 습득을 할 준비가 된다면 족하지 않을까?
이것이 도움이 된다면, 그 다음에 규칙성이 낮은 영어를 효과적으로 변연계로 이끌어 줄 방법도 소개해 볼 생각이다. 이렇게 해서 한두사람이라도 한국인의 영어벽, N세대말로 ‘허들’을 낮출 수 있다면 좋겠다!
여기서 일단 [사실 우리는 영어를 잘 모른다]를 마치고 브런치북으로 내놓는다. 13개의 글을 쓰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그동안 가지고 있던 아이디어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며 근거를 공고히 했던 일이다. 내가 공부하며 모아 온 언어와 영어에 대한 노트와 책들을 다시 뒤져보고, 가르친 경험들을 종합할 수 있던 좋은 기회였다. 이것에 대해서는 나중에 더 자세하게 말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앞으로 또 모르는 것이 나올 것이다. 당근 그럴 것이다. 왜냐면 영어가 자꾸 변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 그때 가서 이야기하면 된다. 근데 그때까지 살까요?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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