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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콘텐츠아트 진 Oct 25. 2024

카멜레온 같은 영어단어, 문장의 자리에서 자유를 찾다

어순에 대한 뿌리 깊은 오해


'어순'이란 말을 피해서 다시 써본다. 한국말에 '아'다르고 '어'다르다는 말이 있다. 작은 차이가 엄청난 차이를 낸다는 뜻이다. '어순'이란 말에 서린 오해가 그러하다. 섬세한 오해를 풀기위해 약간의 전문지식이 필요했다.

 


한 뿌리로 모인 단어, SVO문장을 찾아갔다.

고대 영어단어들! 중세를 지나면서 꼬리 잘린 공작새 신세가 되었다. 어떡해서든 뿌리만 남은 몸으로 자신의 역할을 전달해야 했다.


그 남자는 그 여자를 사랑했다. Se mann  lufode  þa wif.  

고대영어에서도 SVO문장이 있었다. 이 문장이 SVO인 이유는 단어의 형태에 있었다. Se mann (the man)는 명사이고, 주어이고, 단수였고,  lufode(loved)는 과거시제이고, 삼이칭 단수형이고, þa wif(the woman)는 명사이고, 목적어이고 단수이기 때문이다. 결코  Se mann이 매 앞자리에 있고,  lufode가 주어 다음에, þa wif가 셋째 자리인 목적어 자리에 와서가 아니다. 

 

그 여자를 사랑했다 그 남자는. Þa wif  lufode  se mann 

따라서 고대영어에서 이 문장은 OVS로 바꿀 수도 있었다. 그래도 뜻은 마찬가지였다. 한국어처럼 단어의 형태가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말처럼 반드시 동사로 끝나지 않아도 되었다.


사랑했다 그 남자는 그 여자를.  Loved  the man the woman. 

초기 중세영어에 이르러 각 단어의 굴절된 꼬리 부분이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Se the mann가 the man으로,  lufode가 loved로, þa wif가 the woman로 뿌리만 남게 되어갔다. 따라서 단어의 형태보다는 문장 내에서 단어를 나열하는 순서에 따라서 의미를 전달하려는 시도를 했다. 아직 고정된 형태는 없었던 그때 심지어 VSO도 시도했다. 물론 이 순서는 점점 사라졌다.


 그 남자는 그 여자를 사랑했다. The man loved the woman. 

후기 중세영어에서 초기 근대영어에 이르러 굴절변화가 거의 다 없어졌을 때 SVO는 표준어순으로 고정되었다. the man이 주어인 이유는 문장의 맨 앞자리에 있어서이고, loved가 동사인 이유는 둘째 자리에 있어서이고, the woman이 목적어인 이유는 셋째 자리에 있어서이다:

 

그여자는 그 남자를 사랑했다. The woman loved the man.

따라서 the man과 the woman이 자리가 바뀌면, 여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것으로 의미가 정반대로 바뀐다:


 SVO 형성의 초기 과정에서 굴절 부분은 확실히 없어졌다. 하지만 고대영어의 잔재가 남아있었다. 그것은 단어의 품사가 아직 기능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기존에 정해졌던 단어의 품사에 의존해서 SVO 표준순서를 정해갔다는 뜻이다. the man과 the woman이 명사인 것을 알아서 주어자리나 목적어 자리에, loved 역시 품사가 동사인 것을 알아서 동사자리에 자연스럽게 놓을 수 있던 것이다.


이것이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알고 있는 '어순'이다. the man이 주어자리에 오는 이유가 품사에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한국인들에게 '단어'는 이미 품사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오해가 발생한다. '어순'을 '품사가 정해진 단어'를 나열하는 순서로 잘못 인식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순'이란 용어를 쓰기가 꺼려졌다. 그러나 이것은 SVO 문장 구조가 형성되던 초기에 있었던 현상이었다.



SVO는 자리라는 '개념'으로 고정되기 시작했다

다음은 15세기 영국 문학의 거장 셰익스피어의 희곡 가운데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 Antony and Cleopatra] 4막 12장에 나온 한 구절이다. 여기서 자신에게 충성을 바친 추종자들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The harts that spanieled me at heels;

사슴들이 the harts*

내 발뒤꿈치에서 at heels

나를 me

스파니엘처럼 잘 따르는 것 같다고 했다 spanieled

(*The heart(심지가 굳은 사람들)이라는 판본과 해석 있음)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단어 spanieled이 놓인 자리이다. 이 단어가 놓인 자리는 바로 둘째 자리인 동사자리이다. 이 자리에서 동사의 과거형태인 spanieled로 쓰였다.


그런데 스파니엘은 원래 강아지의 한 종류, 다시 말하면 품사가 명사였던 단어이다. 셰익스피어가 명사였던 스파니엘을 문장 내 자리만 바꾸어 동사로 썼다는 것이다. 그것도 가장 동사가 될 것 같지 않은 명사를 과감하게 동사로 쓴 것이다.

The hart that spanieled me at heels!



이것은 SVO 구조가 '자리'를 중심으로 개념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증거이다. 초기에는 아직 기존에 정해졌던 품사에 따라서 단어놓을 자리를 결정했지만, 이제는 아니다. 이제는 반대이다. 기존의 품사가 무엇이었든 간에 문장 속 자리 자체가 단어에 역할을 부여하는 것이다. 혁명적인 발상이다.


셰익스피어가 처음으로 의도를 가지고 이런 문법적인 전환을 시도한 것 같지는 않다. 언제부터인가 영국 백성이 일상에서 쓰던 방법을 그가 희곡에 쓰면서 확산된 것인지도 모른다. 이것을 증명할 길은 없다. 그러나 이것은 문장 속에서 자리 자체가 단어의 역할을 결정하는 법을 보여주는 최초의 문서 중 하나이다. 학자들이 고증한 것이다. 이런 현상은 특히 기존의 품사가 명사였던 단어가 둘째 자리에서 와서 동사로 탈바꿈을 하는 일이 많았다.


물론 고대나 중세영어에서도 명사를 동사로 쓰는 일이 많았다. 이 때는 반드시 파생되는 과정을 거쳤다. 명사형태를 동사형태로 바꿔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중세명사 ston의 끝에 -en을 붙여야만 동사 stonen이 된다. 뿌리는 같지만, 둘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굴절하며 사용했다. 형태가 역할을 결정하는 체계 속에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문법과정이었다.


그러나 둘 다 다시 같은 뿌리 ston으로 돌아갔다. 15세기 이후 굴절 끝부분이 다 떨어져 나가고, 둘 다 뿌리인 ston만 남게 되었다. 굴절뿐만 아니라 품사 기능 자체도 와해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덕분에 ston이 문장의 자리에 의해서 역할을 결정되는 과정에 큰 기여를 했다.  SVO는 문장 속 자리로 개념화되기에 이른다.



'자리 개념'이 단어를 자유롭게 만든 이유

무엇보다도, 단어의 품사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현대영어 단어 milk를 보자. 이것만 보고 milk의 품사를 알 수 있을까? 알 수 없다고 하면 반문할 것이다. 알 수 없다고? milk는 셀 수 없는 단수명사 아닌가? 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 아는 것만 보인다는 말이 바로 이 말이다. 사실대로 말한다면, 나는 그때까지 milk를 셀 수 없는 단수명사라고만 경험한 것이다.


milk의 품사는 언제 결정되는가? 문장 속에서 자리를 잡으면서 결정이 된다. 명사가 올 자리에 놓이면, 명사가 될 것이고, 동사가 될 자리에 놓이면 동사가 될 것이고, 형용사가 될 자리에 놓이면, 형용사가 될 것이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문장 내에서 자리가 단어의 품사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단어의 형태를 바꿀 수가 없기 때문이다. milk만 보고 품사를 결정할 수 없으니 당연히 단어의 형태를 미리 변화시킬 수 없다. 예를 들어 milk를 목적어 역할을 하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방법이 없다. 현대영어에서는 milk만 가지고 문장 밖에서 목적어로 만들 수 있는 문법적 장치가 없다. 고대영어에서 활발하게 사용했던 굴절의 방법은 이제 전혀 쓸모가 없다. 그렇다고 한국어처럼 단어 뒤에 조사를 같은 것도 붙이지도 않는다.


방법은 단 하나뿐이다. milk를 목적어 자리에 둔 문장을 만들 수밖에 없다. 문장 내에서 단어에 목적어 역할을 부여하는 자리는 셋째 자리이다. milk를 셋째 자리에 놓으면 목적어가 되는 것이다. 셋째 자리에서 milk는 카멜레온처럼 피부와 속을 몽땅 목적어로 바꾼다. 형태는 자리를 잡고 난 뒤에 역할에 맞게 바꿔도 늦지 않는다. 이제는 문장 밖에서는 형태를 변화시킬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문장 내에서 해결을 다 하니까.


한국인들이 '어순'에 대한 간과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어순'은 단지 '단어를 나열하는 순서'가 아니다.  SVO 구조는 단어가 없어도 자리 자체가 개념적으로 존재하는 '원리'이다. 이것을 잘못 이해하면, 다음과 같이 한국어에 근거한 투사를 하게 된다.


그런데도 단어품사에 집착한다면,

이런 일이 생긴다. milk의 품사는 일반적으로 '셀 수 없는 명사'라고 믿고 있다. 그러면 셀 수 없는 단수명사 milk라서 주어 자리, 목적어 자리, 그리고  전치사 뒤에 올 수 있다고만 믿는다. 단어의 품사가 자리를 결정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Milk is good for you. (주어자리)

I drink milk everyday. (목적어 자리)

I meed a glass of milk.(전치사 뒷자리)


그러면 이것 이외 다른 자리에 오는 milk는 모두 예외일까? milk는 문장의 다른 자리에서 다른 역할을 다양하게 부여받고 있기 때문이다. milk가 문장의 둘째 자리에 와서 동사역할을 하는 경우이다:

I milk a cow. (동사자리)

I milk a cow.


또한, milk가 명사 앞자리에 와서 형용사로 역할을 하는 경우이다: The farmer brought the milking cows to the barn. (형용사 자리)


혹은 품사에 따라 형태결정을 고집한다면,

더 어려워진다. 만약 milk의 품사를 '셀 수 없는 단수명사'로 믿어버리면, milk 이외 다른 형태로 바뀌는 것은 상상도 못 한다.  따라서 milk 이외의 형태가 나오면 당황하게 된다. 왜냐하면 생각 외로 많기 때문이다.

He drinks milk.

milk는 목적어 자리에서 셀 수 있는 명사 a milk로 쓸 수 있고,

I'll have a milk. (셀 수 있는 단수명사)


milks는 주어자리에서 셀 수 있는 복수명사 milks 로도 쓸 수 있고, 동사 자리에 오면 삼인칭 단수가 된다.

There are three milks available, like chocolate milk etc.(셀 수 있는 복수명사)

He milks a cows. (3인칭 단수)


milking도 동사자리에서 진행으로도 쓸 수 있고, 명사 앞에 와서 형용사인 현재분사로도 쓰인다.

She owns the milking facility. (현재분사)

A writer has been milking the story (진행)

A wiriter has been milking the story.


milked는 동사자리에서 과거형과 완료로 쓸 수 있고, 명사 앞에 와서 형용사인 과거분사로 쓰인다.

They milked cows. (과거)

He has milked his people for evey penny. (완료)

A milked cow was abandoned. (과거분사)


이같이 셀 수 없는 명사 milk는 이 많은 형태 중 형태에 불과하다. milk는 Milk, milk, milks, milking, milked의 5가지 형태로 변하고, 문장의 자리가 부여한 역할에 따라서 다양한 맥락에서 다양한 뉘앙스를 전하기 위하여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이것이 우리가 그토록 배우고 싶어 하는 실제 영어의 현실이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한국인들은 한국어로 인한 뿌리 깊은 습관이 있다. 단어로 문장을 조절하는 것이다. 단어만 나오면, 자동적으로 품사를 보고, 역할을 정하고, 형태를 변화시켜 문장을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는 습관이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이 습관이 현대영어를 배우는데 크게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고대영어를 한다면 오히려 도움이 된다. 하지만 현대영어는 고대영어에 등 돌리고 나온 영어이다. 현대영어를 배우려면 우리도 등을 돌려야 한다. 현대 영어단어를 보고, 품사도 형태도 예측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것에 스트레스받을 필요는 전혀 없다. 원래 그런 언어이다. 원래 카멜레온이다. 릴릭스해도 된다.


대신 영어단어를 보면, 문장 내에서 어떻게 쓰였는지 보는 것이 제일 좋다. 자기가 아는 것에 집착하고 고집하는 것보다 흠 ~~ 이 문장의 자리는 단어를 어찌 사용하고 있는지? 이런 호기심을 발동하는 편이 낫다.


1) 각 단어가 문장 속 어느 자리에서 어떤 역할을 부여받았는지,  2) 거기서 어떤 품사로 어떤 형태로 사용되고 있는지 분석해 봐야 한다. 이것은 단어마다 각기 다 다르다. 각 단어가 연관될 수 있는 상황이나 맥락에 따라서 얼마나 유연하게 적응하여 사용하는지가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이것을 알아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뭐랄까? 숨겨진 뭔가를 지속적으로 파고 들어가는 우아한 게임 같다고 할까!


그래서 노출이 중요하다. 어떤 의미에서든 노출이 되었을 때 영어문장 속에서 카멜레온처럼 놀고 있는 단어와 함께 춤을 추면 된다. 문장 속에서 단어들이 사용된 방식을 가능한 많이 경험하면 좋다는 뜻이다. 이 경험이 어느 정도 축척이 되면 단어마다 춤을 추며 풍기는 뉘앙스에 자연스럽게 길들여질 것이다.




이 글의 저작권은 콘텐츠아트 진에게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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