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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콘텐츠아트 진 Nov 01. 2024

자칫 오해에 빠지기 쉬운 말, 어순!

영어에 규칙이 있을까?


한 후배친구가 대학 때 종로의 한 영어학원에서 강의를 들은 적이 있었다고 한다. 강사는 입소문이 난 노장강사였다. 너무 잘 가르친다는 소문을 듣고 기대를 한껏하고 갔단다. 그런데 강의 첫 시간부터 했던 것이 주어를 찾아 동그라 미치고, 동사를 찾아 동그라미 치는 것이었다. 기가 막혔다고 한다. 결국 하루 이틀 가고 그만두었다.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가 십여 년 전이었다. 국내에 '어순'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던 것이다. 현타가 왔다. 출판사를 했던 이 친구에게 어순에 관한 책을 내고 싶다고 했다가 결국 퇴짜 맞았다. 장사가 안될 테니까 나도 할 말이 없었다.^^


지금은 '어순'의 중요성을 모르는 한국인은 없다. 코비드 때 모두 자기 방으로 들어가 혼자 열심히 영어공부를 한 덕분이다. 이들 중 어순의 중요성을 알아낸 한국인들이 유튜브에 쏟아냈다. 거기서부터 '어순'이 서서히 국내 영어교육시장에 부상하기 시작했다고 본다. 그런지가 5~6년 된 것 같다.


국내에서는 영어어순이 한국어 어순과 다르다는 점에 주목되어 왔다. 한국어의 경우는 주어다음에 목적어 다음에 동사가 오는 SOV이고, 영어는 주어다음에 동사다음에 목적어가 오는 SVO이다. 분명히 두 언어의 어순은 구조적으로 다른 것은 맞다.


그러나 국내에서 사용하는 '어순'이란 말에는 자칫 오해에 빠지기 쉬운 점이 있다. '어순'은 the word order의 번역이다. 여기서 word는 한국말로 '단어'이고, order는 '순서'이다. 따라서 어순은 일반적으로 단어의 순서, 즉 단어를 나열하는 순서라고 알고 있다. 그런데 바로 이 '단어'를 어떻게 보느냐에 오해의 함정이 있다.



한국어 어순은 단어의 순서이다

한국어 어순이라고 할 때 어순은 '단어'의 순서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주어와 목적어와 동사가 문장이 만들어지기 전에 이미 '단어'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국어에서 단어는 품사가 정해졌다. 명사에는 조사를 붙여서 주어와 목적어를 만들 수 있다. 주어 '준우가'와 목적어 '우유를'처럼 주어가 될 단어와 목적어가 될 단어가 만들어진다. 동사도 '마신다‘처럼 어미가 '다'인 단어로 존재하고 있다.


준우가 우유를 마신다


한국어 표준어순인 SVO에 따라서 주어가 될 단어 '준우가'를 먼저 놓고, 목적어가 될 단어 '우유를'를 다음에 놓고, 동사 단어 '마신다‘를 마지막에 놓으면 된다.  한국어 표준어순의 '어순'은 단어가 나열된 순서가 맞다: 준우가 우유를 먹는다.



영어어순은 자리의 순서이다

그러나 영어어순은 단어의 순서라고 하면 오해의 여지가 있다. 영어에서 '단어'는 한국어에서 '단어'와 다르게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한국어와 달리, 영어는 문장 밖에서, 주어나 목적어 그리고 동사가 '단어'로 존재할 수 없다. 한국어처럼 주어, 목적어, 동사를 '단어의 품사나 형태'로 구분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단어 Tom이 주어가 되고, 단어 milk가 목적어가 되고, 단어 drink가 동사가 되려면,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 오직 '문장 속'에만 가능하다.


Tom drinks milk.


그런데 한국어 어순과는 달리 영어문장에는 자리가 '정해져' 있다. 첫째 자리는 주어자리이고, 둘째 자리는 동사자리이고, 셋째 자리는 목적어 자리 혹은 보어자리이고, 넷째 자리는 목적어 자리 혹은 보어자리로 정해져 있다. 한국어 어순처럼 주어, 목적어, 동사가 자리를 맘대로 옮길 수 없다. 고정되어 있다는 뜻이다. 다행이다: Tom drinks milk.


이제 첫째 자리에 Tom이 와서 주어역할을 하고, 둘째 자리에 drinks가 와서 동사역할을 하고, 셋째 자리에 milk가 와서 목적어 역할을 한다. 각 단어가 형태를 바꾸는 것은 이 시점이다. 이것은 각 단어가 문장 내에서 자리를 잡으면서 동시에 일어난다. Tom은 고유명사로 첫 글자를 대문자로 쓰고, drinks는 Tom이 삼인칭 현재 단수가 되고, milk는 셀 수 없는 단수명사로 그대로 쓰면 된다.


따라서 영어어순에서 '어순'은 단어의 순서라기보다는 자리의 순서이다. 자리가 단어에게 역할을 부여하고, 거기에 따라 형태가 정해지기 때문이다. 이런 자리의 힘은 각 단어가 놓인 자리를 바꾸면 더욱 분명해진다. 일단 Tom과 milk의 자리만 바꾸어 보자. Milk를 첫째 자리로 옮기고, Tom을 셋째 자리로 옮겨진다:  Milk drinks Tom.


Milk drinks Tom.


설명이 필요 없다. 자리를 바꾸면 이런 사단이 난다. 이제 Milk는 주어역할을 하고 있고, Tom은 목적어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면 아주 괴기스러운 내용으로 바뀐다. 한국어 어순은 단어의 자리를 바꾸었다고 결단코 이런 일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그러면 이번에는 drinks가 셋째 자리에 오면 어떨까? 이제 drinks는 동사역할을 하지 않는다. 같은 단어가 목적어 역할을 하는 셀 수 있는 복수명사가 된다. 술 같은 성인이 마시는 음료를 뜻한다 : Tom had too many drinks.


Tom had too many drinks. created by Al


심지어 Tom이 둘째 자리에 오면 어떨까? 이제 Tom은 동사자리에 와서 실제로 동사역할을 한다. 자주 쓰이는 표현은 아니지만 Tom이란 이름을 가지고 장난을 칠 수도 있다. Tom이란 이름에 실수를 잘하거나 일을 엉망으로 만든다는 의미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한국어에서 Tom은 끝까지 명사로 남아서 "Tom처럼 망치지 마! Tom처럼 엉망으로 만들지 마!"로 번역이 된다. 그러나 영어에서는 자리를 옮겨 아예 동사로 사용된다: Don't Tom it up!


Don't Tom it up! created by Al



영어문장 속 자리는 원리이다

영어문장의 자리는 마치 마술상자와 같다. 단어가 자리에 들어가면 자동적으로 역할을 부여받는다. 역할에 따라서 품사도 정해지고 형태도 정해진다.


따라서 우리가 명사로 아는 단어들은 거의 모두 동사로도 쓰이고, 우리가 동사로 알고 있는 단어도 거의 명사로도 쓰인다. 거기다가 형용사로도 쓰이는 경우도 상당하다. 역사적으로 이 품사의 경계선은 무너진 지 오래전이다.


만약에 우리가 알고 있듯이 map을 명사로만 취급하면, 1) 주어자리와 목적어 자리 그리고 전치사 뒤에서만 map이 나올 거란 기대를 하게 될 것이고, 2) 이 기대에 어긋나는 경우가 나오면, 당황하거나 헛갈릴 것이고, 3) 결국 귀찮은 예외라는 딱지가 붙여주게 된다. 이것은 영어를 배우는 데 크게 격려하지 못한다.


대신 map은 앞으로 경험할 영어 문장 속에서 1) 주어자리, 동사자리, 목적어자리, 보어자리 혹은 형용사 자리에서 모두 나타날 수 있고, 2) 그 자리에서 명사로도, 동사로도, 형용사로도 쓸 수 있으며, 3) 심지어 같은 형태라도 여러 자리에서 사용될 수 있다.


이것을 미리 알고 있으면, 1) 어떤 역할을 하는 map를 만나도 당황하거나 헛갈리지 않을 것이고, 2) 전에 보지 못한 새로운 역할을 하는 map이 어떤 뜻으로 쓰였는지에 더 집중할 수 있고, 3) map의 또 다른 역할을 경험했다는 만족감과 더불어 4) 다음에는 어떤 map을 만날 것인지 호기심을 남겨둘 수 있다.

마찬가지로 만약에 우리가 알고 있듯이 look을 동사로만 취급하면, 1) 동사자리에서만 look이 나올 거란 기대를 하게 될 것이고, 2) 이 기대에 어긋나면, 당황하거나 헛갈릴 것이고, 3) 결국 귀찮은 예외라는 딱지를 붙인다.


반면, look은 영어 문장 속에서 1) 주어자리, 동사자리, 목적어자리, 보어자리 혹은 형용사 자리에서 모두 나타날 수 있고, 2) 그 자리에서 명사로도, 동사로도, 형용사로도 쓸 수 있으며, 3) 심지어 같은 형태라도 여러 자리에서 사용될 수 있다.


이것을 미리 알고 있으면, 1) 어떤 역할을 하는 look을 봐도 당황하거나 헛갈리지 않을 것이고, 2) 전에 못 보던 역할을 하는 look의 뜻에 더 집중할 수 있고, 3) look의 또 다른 역할을 경험했다는 만족감과 더불어 4) 다음에는 어떤 look을 만날 것인지 호기심을 남겨둘 수 있다.

그러나 자리는 기계적으로 모든 단어의 역할을 바꿔주는 규칙이 아니다. 아무 단어나 첫째 자리에 가져다 넣는다는 다고 다 주어역할로 바꾸어 막 사용할 수 없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do가 첫째 자리에 왔다고 무조건 주어로 사용할 수 없다. 반면, ask는 첫째 자리에 넣으면 주어역할을 적극적으로 한다. 왜 어떤 단어는 첫째자리에서 주어역할을 할 수 있고, 어떤 단어는 못할까? 이것은 어떤 규칙이 있어서가 아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사용해 왔기 때문이다. 굳이 답을 달라고 한다면, do가 주어역할을 하며 묘사할만한 상황이 없다고나 할까? ask는 그런 상황이 있으니까: Their ask is too big for me.


map 역시 주어자리와 목적어 자리에서 명사로 사용되지만 셀 수 없는 명사로 사용되는 경우는 없다. 왜 flower는 셀 수 없는 명사로도 쓰이면서 map은 못쓰나고 묻는다면? 사람들이 map을 셀 수 없는 명사로 쓸만한 상황이 없었다고 답할 수밖에 없다.


단어마다 어떤 자리에서 어떤 역할로 주로 사용되는지는 그냥 단어마다 다 다르다. 단어마다 묘사할 수 있는 인간상황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글자 하나에 제멋대로 발음을 담았듯이, 자리 하나에 제멋대로 역할을 부여받는다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자리는 결코 정확성과 예측성을 보장해 주는 그런 규칙이 될 수 없다.


자리는 각 단어의 고유의 뜻을 상황에 따라서 유연하게 적응시켜 사용하기 위한 울타리 같은 거대한 원리이다. 단어 하나에 여러 역할을 적용시킬 수 있는 유연성과 적응성의 원칙이 여기서도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이전에 보았듯이, 영어 글자 하나에 여러 소리를 자의적으로 적용시켰던 전통과 상통한다.


그러면 도대체 영어에는 규칙이 있는가?

한국어에서 말하는 정확성과 예측성을 수반한 규칙dl 영어에는 없는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단어가 자리에 들어가면 바뀌는 '단어의 형태'에서 볼 수 있다.


사실 우리가 가장 많이 시간을 들여 학습하는 부분이다. 자리마다 단어는 일정한 형태로 변한다. 거기에는 규칙이 있다. 주어자리와 목적어 자리와 보어자리에 오는 명사는 이름, 셀 수 있는 단수형, 셀 수 있는 복수형, 셀 수 없는 단수형, 셀 수없는 복수형으로 변한다. 동사자리에 오는 동사는 가장 변화가 심한 곳이다. 부정, 12 시제, 12 수동, 명령, 가정에 따라서 형태가 모두 변하기 때문이다. 보어자리에서도 형용사 역할을 하는 단어형태로 변한다.


가장 큰 규칙은 일단 자리에 맞는 형태를 써야 한다는 것이다. 동사형태로 변한 단어를 명사가 오는 자리에, 혹은 반대로 명사형태로 변한 단어를 동사자리에 쓰면 틀린다. 의미가 전달이 안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중요한 규칙은 상황에 맞는 형태를 써야 한다는 것이다. 어제 일어난 일을 현재형으로 쓴다든지, 추측하는 상황을 사실 전달형으로 쓴다든지, 한 개를 여러 개로 쓴다든지 하면 오해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또한 의미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지만 문법적인 형태를 맞춰야 하는 규칙도 있다. 예를 들어 삼인칭 단수 현재형에 -s를 붙이는 것 등이다.


하지만 영어단어 형태변화 규칙에도 유연성과 적응성이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우선, 단어의 형태가 복잡하게 변하고 많은 것 같아도 다 떨어내면 기본적인 형태는 대체로 5가지로 추려진다: Drink, drink, drinks, drunk, drinking이다,  drinking는 모든 자리에 올 수 있다. Drink, drink & drinks 역시 보어자리만 제외하고 다 올 수 있다. drunk는 동사와 보어자리에 온다. 물론 drank처럼 꼭 동사자리에만 오는 형태가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것도 동사에 따라서 다르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따라서 단어의 형태를 보고 단어의 역할을 추측할 수 있다고 장담하면 오산이다.


이제까지 살펴본 결과, 영어는 알파벳의 도입부터, 알파벳과 소리와의 관계에서도, 문장 속 자리와 단어의 관계에서도, 단어의 형태에서도, 정확성과 예측성을 기반으로 한 규칙을 찾아보기 힘든 언어였다. 이것을 모르고 이렇게 오랜 세월 영어를 해 온 우리가 내가 장하다. ^^  에구에구 힘들어라!





이 글은 끝내기가 힘들었습니다.



이 글의 저작권은 콘텐츠아트 진에게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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