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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콘텐츠아트 진 Aug 18. 2024

수다떠는 영어 앞에
무너진 그것

특권영어, 폐허가 되다!

한국에서 석사논문을 제출하기 이틀 전, 컴퓨터에 저장해 놓았던 논문화일이 반이 날라갔다. 이틀밤샘 작업을 하고 돌아온 컴퓨터 너드 남동생이 내려앉는 눈꺼풀을 추켜세우고 밤새도록 복구작업을 해 주어야 했다. 가장 최근 화일 하나를 겨우 찾아 복구해 주었다. 천만다행이었지! 여기 이 컴퓨터가 바로 IBM 286, 초록색 커서가 깜빡거리던 레전드 컴퓨터이다. 그 때가 1990년대 초중반, 인터넷이 겨우 세상에 나왔을 때, 스마트폰이란 말은 기미도 안 보였던 때, 내가 디지털 신석기 시대라고 부르는 그 때, 나는 미국유학을 계획하고 있었다.




물론 유학의 가장 큰 문제는 영어였다. 그 때 내 머리 속에는 이미 유학영어에 대한 분명한 그림이 하나 있었다. 하트 Hart의 영어였다. 하트는 내가 초등 때 한국에서 방영되었던 미국 코메디 TV드라마 [The Paper Chase] (한국어 제목: 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들)에 나온 주인공이다. 농부출신 하트가 하버드 법대에 입학하여 자기 동료들과 함께 호랑이같은 킹스필드 법대교수와 옥신각신한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하트는 친구에게든 교수에게든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서슴치 않게 당당하게 말하는 캐릭터로 나온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영어로 말을 하기때문이라고 어린 나는 이해를 했다. 이때부터 하트처럼 영어를 하고 싶다는 모종의 르망이 생겼다. 요새말로 하면 하트영어는 원어민 영어,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아카데믹한 원어민 영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나에게 유학영어란 원어민의 영어라는 개념이 뚜렷하게 잡혀있었다.



American TV Comedy [Paper Chase]  season two





그러면 하트의 원어민 영어의 반만큼이라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 끝에 뉴욕행을 선택하였다. 무엇보다도 미국인들이 진짜로 영어하는 실제 모습을 먼저 눈으로 봐야겠다는 절박한 마음이 있었다. 왜그랬는지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들을 직접 보면 나도 할 수 있는지 가늠이 될 것같다고나 할까. 사실 그 때 (라테는 ^^) 국내에서는 아직 영어 원어민이 귀했다. 겨우 문을 열기 시작한 연세대와 서강대 어학당에 소수가 들어와 있기는 했지만, 원어민처럼 영어를 제대로 하려면 해외 어학 연수를 가야한다는 붐이 막 일기 시작했던 때였다. 나도 이런 추세를 타고 일단 뉴욕으로 나갔다. 일년 허락을 받았다. 일년 안에 원어민처럼 영어를 못한다면 유학을 포기할 각오를 했다.


그리고 드디어... 미국인들의 진짜 영어를 보았다. 그것을 처음 본 것은 디트로이트 공항에서였다. 뉴욕행 비행기로 갈아타기 위하여 한 두시간 머문 곳이었다. 저녁 9시즈음 되었을 것같다. 사람들이 엄청 많았다. 공항 내부 공기가 텁텁해질 정도였다. 거의 전부 미국인들이었다. 게다가 그 날따라 남자들이 무척 많았다. 그것도 거대한 몸집의 중년의 미국아저씨들이었다.


평균 한국인보다도 한참 작은 나는 웬지 의기소침해졌다. 그들을 멀리 피해 대기실 반대편으로 갔다. 가능한 눈에 안 띠도록 애를 썼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누가 봐도 눈에 띠는 상황이었다. 왜냐면 나는 다수의 미국인이 아니었으니까. 어딜 봐도 외모부터 전혀 다른 조그만 동양인 여자아이였으니까! 김포에서 13시간 정도 비행기를 타고 왔더니 나는 미국 땅의 소수인종이 된 것이다. 나도 어디서는 누군가의 아웃사이더가 될 수 있구나! 이런 현실이 한참동안 낯설었다. 급조된 아웃사이더의 두 눈은 대기실 반대편에 몰려있는 미국인 중년아저씨들을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Amercian guys chatting together



그런데 갑자기 머리를 치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들은 큰소리로 웃고 떠들며 수다를 떨고 있던 것이다. '영어로'... 수다를 떨고 있었다. 영어로도... 수다를 떠는구나! 그렇지! 당연하지! 영어도... 한국말같은 언어니까! 아니 이렇게 당연한 사실을 몰랐던 거라고? 왜 이 사실이 이렇게 생소할까? 이것은 TV나 영화의 평평한 스크린에서 본 영어와는 달랐다. 실제 살아있는 미국 중년 아저씨들이 떠들어대는 수다영어에서는 나를 압도하는 그들만의 삶의 기운이 뿜어나왔다.




그러면 내가 그동안 한국에서 해왔던 영어는 뭐였던 거지? 다급한 재고찰이 마음 속에서 진행되었다. 20대 내내 국내에서 열심히 했던 영어는 독해영어였다. 왜 독해영어만 했지? 유독 전공에 관한 영어원서 읽기가 많이 요구되었기때문이다. 왜 많이 요구되었더라? 내 전공이 종교학이었기때문이다. 종교학은 80년대 초반 한국에 들어온 신학문이라서 한글로 쓰여진 전공서적이 별로 없었고, 그 당시 국내 유일한 교수님들이 모두 미국 아이비대학 출신이라서 영어원서를 많이 추천해 주셨다. 따라서 대학원은 물론 학부 때도 방학이고 학기 중이고 전공원서를 읽느라고 고생을 했던 기억이 아직도 있다.


내가 했던 독해영어에 문제가 있던 것일까? 아닌데. 적어도 국내 영어를 주도하고 있는 입시형 독해영어는 아니었다. 영어로 읽고 (인풋) 한국어로 해석해 내는 (아웃풋) 기본 구조는 같지만 영어가 한국어로 바뀌는 해석과정은 달랐다. 입시형 독해영어는 단순 직독직해였다. 영어단어 하나에 한국어 뜻 하나를 대응하여 뜻을 새기는 것이다. 예를 들어 map = '지도'! 영어에서 중간과정없이 그냥 한국어로 넘어가는 것이다.


반면, 내가 했던 독해는 심지어 학문적 근거가 있는' 독해였다. 종교학이 19세기 해석학을 기반으로 형성된 학문이다보니 영향을 안 받을 수 없었다. 예를 들어 주역에 나온 '天'의 의미를 해석할 때 '주역 안'에서만 '天'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먼저 분석하는 정밀독해 close reading의 단계가 있다.


나는 이런 판독의 정밀독해 과정을 영어독해할 때도 살짝 적용했다. 어떤 영문에 map이란 단어가 많이 나오면, 먼저 map이 주어진 영문 텍스트 안에서 어떻게 쓰였는지 분석해 본다: 명사로 쓰였는지, 동사로 쓰였는지, 형용로 쓰였는지, 동사라면 어떤 목적어와 함께 쓰였는지, 형용사라면 어떤 명사가 뒤에 나왔는지 등등. 그리고 나서 맥락에 따라서 다양한 의미의 한국어로 옮긴다. 영문을 한국어로 옮기기 전에 한국어와 분리하여 다루는 과정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도데체 '학문적인 근거가 있는' 독해를 했던 것이 무슨 문제가 될까? 독해영어는 필요없던 것일까? 아니다. 필요했다. 학문을 위해 이만한 도구는 없다. 물론 실제 영어를 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 독해의 마지막 과정이 결국 한국말로 출력을 해야 하는 것이니까. 이것은 어쩔 수 없지 않나? 한국에서 한국사람들과 학문을 하기 위한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사실 이 마지막 과정도 영어로 출력할 수 있다면, 미국사람들과 학문을 할 수 있게 된다. 나의 독해영어도 결국 쓸모있게 되는 것이겠지. 이것은 두고 볼일이다. 어찌했든 여기까지는 이해가 간다.


그런데 그런 독해영어를 했다고 수다영어 앞에서 이렇게 소스라치게 놀라는 반응을 한다고? 이것은 다른 문제였다. 마치 눈에서 비늘 떨어진 것같은 기분이라고나 할까?도데체 무슨 비늘이 떨어진 것일까? 분명 문제가 있었다. 내가 독해영어를 했다는 것 자체보다는 독해영어를 하는'태도'에는 문제가 있던 것이다. 그것은 특권의식이었다. 나의 태도에는 특권의식이 베어있었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이든 '나는 영어를 한다! 나는 영어를 제대로 하는거지! 나는 영어를 잘 하는거야!'라는 일종의 특권의식을 키워왔다는 것이다. 이 특권의식이 자기가 하는 영어가 전부인줄 알게 만든 것이다. 그 이상 생각을 할 수 없게 만든 것이다. 뽑기판에 자기가 원하는 모양을 찍은 것인 줄도 모르고 말이다. 게다가 그 안에서 마치 남보다 영어와 친한 인사이더인양!


영어는 국제어 Global Lingua Franca의 위상을 가진 언어이다. 이런 영어가 어떤 의미에서든 자기 본국을 떠나서 제3국으로 가면, 사회적 특권이라는 것이 덕덕덕덕 붙는다. 마치 중국의 한문이 고대, 중세, 전근대의 동양사회를 지배한 특권계층의 언어였듯이, 라틴어가 서양세계에서도 역사 대대로 특권을 지닌 언어였던 것처럼, 영어가 18세기 중반에 조선 땅에 발을 내딛는 그 순간부터 영어의 특권화는 현재까지 진행되어 왔다. 한국도 미국이나 영국같은 제국의 지배를 직접 받은 것은 아니지만 영어의 정치 사회적 영향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주 노골적되었다. 현대사회에서 사회적 스펙을 쌓는데 영어는 빠질 수 없는 요소가 되었다. 영어를 할 줄 안다는 것은 웬지 다른 사람과 뭔가 다르고, 뭔가 힘이 있어 보이고, 뭔가 클라스가 다르다는 위계적 표식이 되기때문이다. 이런 환경에서 영어를 하다보니, 내 독해영어에도 이런 특권의식이 덕덕덕덕 붙을 수 밖에 없었다. 어느 덧 특권영어 Privileged English 가 되어버렸다.



Lingua Franca English



그런데 그것이 미국아저씨들의 수다영어 앞에서 다 무너져 내렸다. 우수수수! 껍데기 벗겨지듯 쏟아져 내렸다. 영어도 별거 아니었어. 그냥 말이야 말! 한국 아줌마들이 여기 저기 모여서 한국말로 수다떠는 것처럼 영어도 그런 말에 불과했다! 한국말로 철학을 한다고 다른 언어보다 우월한 언어가 되는 것이 아니듯 영어도 그랬다. 영어도 원래는 평범한 인간들이 사용하는 평범한 언어였던 것이다.


그런데 난 그걸 못하는 거다. 어려운 영어를 잘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할 생각도 못했었다. 그렇게 다 벗겨지고 나니 내 영어에는 남는 것이 별로 없었다. 현타가 왔다. 나는 벌거벗겨진채로 미국영어의 가장자리 밖으로 여지없이 내동댕이 쳐졌다. 미국 땅에 와서 영어의 아웃사이더가 되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디트로이트에서 뉴욕행 비행기는 다시 이륙을 했다. 비행기 창문을 내다 보았다. 깜깜한 대륙에 작은 도시마다 거미줄같은 불빛들이 켜져있었다. 어둠 속에서 슬며시 자태를 드러내는 중후한 검은 대륙 위에는 흰 눈이 하염없이 쌓이고 있었다. 부서진 특권의 잔재들이었을까? 내 영어는 그 대륙을 감싼 거대한 공간처럼 텅텅텅 빈 느낌이 들었다. 난 언제 영어로 수다떨면서 저 공간을 메우려나?


그러나 얼마나 다행인가! 적어도 메울 공간을 마련했으니까. 나의 영어에 대한 파라다임이 확장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특권영어에서 일상영어로!


airplane taking off at snowy night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미국유학을 마치고 귀국을 했다. 어떤 어머니가 어떻게 하면 영어를 잘 할 수 있느냐고 물으신다. 나는 내 경험에 비추어 자신있게 말씀해 드렸다: 영어를 잘 해야한다고 집착하는 마음, 영어를 해서 성취감을 얻고 싶은 마음, 영어를 잘해서 남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 영어 잘하는 것을 대단한 것으로 여기는 마음, 이런 마음들을 버리고 빈 마음되어 마음을 열고 영어를 받아들이는데만 집중하면 잘하게 될 수도 있다고 했다.


나의 대답은 어머니를 아주 화가 잔뜩 나게 만들었다: (거의 짜증을 부리듯 소리를 치며) 영어 좀 해서 성취감을 만끽하고 남들 앞에서 미국인과 이야기할 때 잘난 체를 하고 싶은 마음이 뭐 그리 나쁜 건가요?


사실 많이 당황해서 아무 말도 못했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특권을 누리는 분들이 있다는 것을 몰랐었다. 그러나 잘잘못을 따질 문제가 아니다. 본인이 선택한 것이다. 본인이 만족했던 영어가 주는 특권을 즐기는데 더 관심을 둔 것이다. 그것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본인이 원한대로 된 것이다. 나중에 생각이 바뀌어 더 높은 수준의 영어가 필요하다면 특권의식이 도전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그나마 있던 영어실력도 특권의식에 가려져 희석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경우는 영어가 외국어일 때 생길 수 있는 언어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나는 이후로 영어의 특권을 즐기는 한국인에게는 나의 영어습득 노하우를 알려주지는 않는다. 혹여나 도전이 되지 않을까 우려가 되어서였다. 그러나 특권을 포기하면 영어로 들어가는 지름길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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