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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id Kang Apr 07. 2016

제주흔적#10

성판악을오르다 2015_10




제주관련 브런치 #10 게시를

몹시 거창하게 기념하는 의미에서

2015년 10월 두번째 한라산 등반이자

첫번째로 백록담을 본 '사건'을 올려볼까 한다.




산을 오르기 전 우리의 바람직했던 자세



5년전 가을

처음으로 한라산 등반을 마치고 내려오면서

후들거리는 다리를 겨우 지탱하고 서서

'다시는 한라산에 오르는 일 따윈 하지 않겠어'

라고 으름장을 놓았던 일이 있다.


관음사도 돈내코도 성판악도 아닌

윗세오름까지만 오르면 그만인

'영실 탐방로'를 다녀오고 말이다.


백록담을 보지 못한 것이 마음이 걸렸으나

한라산 등반 코스중

주변 경관이 가장 아름답기로 유명한

( 당시 그게 영실인 줄도 모르고 올라갔었다 )

영실을 다녀왔으니 됐다 싶었다.


그렇게 한라산을 '조망'만 하기를 5년,

정신을 차려보니 일행들의 이끌림에 의해

성판악을 오르고 있었다.




성판악 탐방로 초입에 놓여있는 안내판



영실을 오르던 그때는

그 흔한 등산복 바지도 아닌

늦여름 관광객 다운 핫팬츠 차림에

등산화도 없긴 했지만 어쨌든

신고 있던 일반적인 운동화로 등반을 마쳤다.

계획된 산행이 결코 아니었다.


앞서 말은 그렇게 웃자고 시작했지만

성판악을 두려움 반 설레임 반으로 준비하면서

영실등반 후 우연찮게 생긴(?) 등산화를 시작으로

등산복은 아니지만 등산복 비슷한 복장을 체크하고

배낭과 장갑에 양말까지 꼼꼼하게 신경을 썼다.

하마터면 스틱도 구입할 '뻔'했는데

'뻔'에 그치지 말았어야 했다고 훗날 후회했다.


성판악 도착 전 편의점에서

뜨끈한 라면으로 속을 채우면서

초컬릿이며 양갱이며 사탕에 소시지 등등

당과 칼로리를 동시에 충족시켜줄 각종 식품군을

구입하는 일도 잊지 않았는데

( 일행들은 정상에서 마실 맥주도 샀다 )

분명 남겨오겠거니 했던 그 많던 간식들이

산행의 2/3 지점에서 증발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역시 만만히 볼 성판악이 아니었던 것이다.




" 당신, 벌써 이만큼 왔으니 조금만 더 힘을 내 "



성판악 탐방로 길은 영실의 그것과 확실히 달랐다.

영실에 비해 보는 재미(?)가 덜했다.

즉, 주변 경관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마도 성판악이 한라산 탐방로 중에서

가장 긴 코스에 해당되기 때문인 것 같은데

이를테면 야구 중계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는 것과

하이라이트만 모아 놓고 보는 것의 차이랄까.


생각해보니 영실이 그랬다.

'한라산'의 '하이라이트'

물론 백록담은 볼 수 없었다 해도 말이다.




구름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어느 덧 진달래 대피소를 지나

산행인들 사이에서 '껄떡고개'로 통한다는

마의 현무암 경사길을 기적적으로 통과하자

숲에 가려졌던 시야가 툭하고 터지면서

믿기 힘든 장관이 그제서야 펼쳐졌다.




이쯤에서 양갱타임
어느 덧 구름하고 같은 키



이대로 포기하고 내려갈 뻔한 고비를

자책과 위로를 번갈아하며 여러차례 이겨낸 결과

위용한 자태를 드러낸 백록담의 경사면과 마주했다.


운이 좋았다.

날씨도 도운 것이다.


그리고 그 앞에는

'껄떡고개'에 버금가는 나무계단길이

몹시 길게 이어져있었다.




해발 1950 미터 : 마침내 정상
한 라 산 동 능 정 상



엄청난 광경이었다.

그 거대한 분화구를 마주하고 있으니

도저히 현실의 것이라고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성판악을 오르면서

체력적 한계로 인해 느끼게 된 온갖 괴로움들이

깨끗히 씻겨나가는 기분이었다.




한동안 비가 오지 않아 바닥을 훤히 드러내고 있었다



이곳을 통해 터져나왔을 용암을 떠올려봤다.

그 용암이 흐르고 굳기를 반복해 지금의 한라산

지금의 제주도가 된 것이다.


도저히 인류가 어찌하지 못할 엄청난 힘을

그대로 유지한 채 온전히 굳혀있었다.


실제로 백록담의 고여있는 물을 볼 수 있는 건

현무암의 특성상 장마때가 아니면 힘들다 들었다.

하지만 그런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와 일행 모두

'비교적 무사히' 이곳에 다다랐으며

제주의 기원을 몸소 체험했으니 말이다.




감격에 취한 파노라마



자 이제 내려갈 시간,

'비교적 무사히'

하산합시다.




한라산 천연보호구역 백록담 앞에서 건배를 외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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