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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ish Nov 03. 2019

35살 대기업 과장은 왜 전문직 설명회를 찾았을까


전문직 설명회를 들른 것은 우연이었다. 나는 강남역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산다. 이곳엔 유흥가 만큼이나 수많은 입시학원이 있다. 그중에서도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전문직 준비 학원이 적지 않다. 이른바 '사(事)'자다. 변호사(로스쿨 준비반), 회계사, 세무사 등이 그렇다.


어느 주말, 친구와의 강남역 약속을 앞두고 시간이 30분 가량 남았다. 강남역 10번 출구 근처에서 열리던 '사자' 설명회에 우연히 들렀다. 행사 보조 요원이 나눠준 설명회 및 합격 비결 책자를 집어들고 강의장 맨 뒤에 앉았다.


마치 TV에서나 보던, 수험생으로 빽빽히 가득찬 노량진고시학원과 같은 풍경이 내 앞에 펼쳐졌다.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은 20대 수강생만큼이나 30대 이상 늦깎이 수강생이 많았다는 점이다. 딱 봐도 30대 중반은 되어 보이는 직장인, 머리가 희끗희끗한 환갑 어르신까지 있었다.


'취업에 대한 열망은 20대의 전유물이 아니었을까'란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으론 뒤늦게 전문직에 관심을 갖는 이들 많구나, 라는 느낌도 들었다.


궁금해서 설명회 담당자에게 물었다. "전문직 시험은 20대나 관심 갖는 게 아니었나요? 시간도 오래 걸리고 어려울텐데요"라고 슬쩍 물어봤다.


그의 답변은 이랬다. "30대 이상 수강생들 분들이 여기 오는 이유는 다 달라요. 하지만 패턴은 정형화돼 있지요."


담당자가 말해준 유형은 이랬다. 상사와의 연이은 마찰에 대책없이 회사를 퇴사한 사람, 대학생 때 끝내 못 이룬 전문직의 꿈을 지금이라도 이루려는 사람, 또는 인사상 불이익 때문에 커리어 계발의 기회를 놓친 직장인 등이었다. 물론 가장 많은 유형은 '신분 상승'을 꿈꾸는 이들이라고 한다.


그런데 최근 변호사, 회계사 등의 공급이 크게 증가함에 따라 밥그릇이 줄어들었고 그 결과 누구라도 쉽게 고소득을 보장받기는 어려운 세상이 도래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변호사를 예로 들어볼게요. 흔히 알아주는 대형 로펌에 들어가지 않을 바엔, 차라리 다니던 회사 끝까지 잘 다니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꼭 변호사의 꿈이 있거나 집안이 크게 유복한 게 아니라면 말이죠. 요즘 전문직들 얼마나 단물 빠졌는데요."


더욱 녹록치 않은 것은 합격 가능성 및 수험 기간이다. 로스쿨, 회계사(KI)는 직장 병행은 현실적으로 어려우며, 세무사 등 몇몇 자격증은 직장과 병행할 순 있지만 하루 평균 공부시간 8~10시간을 꼭 맞춰야 한다. 물론 직장은 다녀야 할테니 근무시간을 제외하면 사실상 사생활을 포기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2~3년을 공부하더라도 직장 병행자의 합격률은 일반 수험생에 비해 크게 낮은데, 이런 이유로 중도 포기하는 등 시간만 날린 이들도 부지기수라는 것이었다.




주위를 돌아보면 10~20년 전과 비교해 전문직 공급은 크게 늘어난 게 현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전문 자격증 취득을 통한 '신분 상승'의 꿈은 2019년 대한민국 사회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과거엔 전문 자격증 취득이 단순히 '개천에 용나기'식의 인생 역전이 목적이었다면, 지금은 현재 커리어의 불확실성에 따른 대피책의 일환이라는 것이었다.


미래가 불투명하든, 아니면 주변인과의 소득 차이에 따라 상대적 박탈감이 심해지든 우리는 저마다의 탈출구를 찾기 위해 힘쓴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30대가 되어서도, 40대가 되어서도 우리는 시험이란 굴레 속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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