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목포 가슴뛰던 첫 만남
목포를 처음 가 본 것은 2012년 가을이었다. 목포가 여행의 목적이 아니었고 섬생태여행을 준비해온 전남대 관광학과 교수님의 요청으로 흑산도로 떠나는 지역 행사에 참여를 하게 되었는데 목포에서 출발하는 배를 탔다. 기자시절 신문사 칼럼니스트로 친분을 쌓은 교수님은 2010년 이후 1년에 한 번 정도 섬생태 여행 행사에 기자들을 초청했는데 내게 그 일을 도와 달라고 하셨다. 목포를 거쳐 흑산도를 가게 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굉장히 가보고 싶었던 도시라 흑산도에서의 일정이 끝난 후 목포에서 하루를 더 머무르기로 했다. 흑산도 일정을 마치고 다시 목포로 돌아왔다. 늦은 오후 선사 부근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혼자가 됐다. 그제서야 목포가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목포가 보일 수록 약간의 충격부터 받았다.
목포를 직접 보기 전 목포가 전라남도 최대의 항구도시라는 얘기에 규모가 경남의 창원만큼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왜 목포에서 70-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촬영되는 지 이해가 금방 될 만큼 목포는 너무도 낙후 되어 있었다. 물론 여객터미널이 있던 부근이 목포 구시가지여서 더욱 그렇게 느꼈을지 모르겠다. 물론 단순히 보여지는 것만으로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부산과 울산 두 개의 광역시도 있고 인구 100만 명의 창원, 54만 명의 김해, 35만 명의 진주 등이 있는 경남과 비교를 해도 전라남도의 대표 도시 목포는 너무 초라했다. 2022년 6월 기준 전라남도의 가장 큰 도시로 꼽히는 목포 22만 명, 여수 27만 명, 순천 28만 명이니 경상도의 도시들과 얼마나 차이나 큰 지 분명히 파악할 수 있다.
약간의 서글픈 심정은 하루도 지나지 않아 목포가 얼마나 매력적인 도시인지 깨달아갔다. 지금은 영화 <1987>의 연희네슈퍼가 있는 동네로 널리 알려져있지만 흑산도에서 만난 분이 시원한 맥주 한 잔 하자고 해 따라간 서산동은 유달산 남쪽에 걸쳐있는 마을인데 마을 중턱 슈퍼에서 맥주를 주문하면 이런 저런 안주가 나오는 가맥집이었다. 작은 가게인데 안주인 안주 만드는 솜씨가 기가 막혔다. 소박한 마을 분위기는 물론 바다를 바라보며 마시는 수퍼 맥주 한 잔이 너무 맛있고 근사했다.
서산동이 걸쳐진 산 유달산은 목포의 정신적, 외형적 상징이다. 유달산이라는 이름이 ‘영혼이 거쳐가는 곳’이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해발 228m로 야트막하지만 작은 바위들이 어우러져 산세가 너무 예뻤다. 높지 않기 때문에 오르기도 좋고 적당히 기암괴석도 있어 바라보기도 좋았다. 중간 중간 전망대에 오르니 주변 바다와 도시가 한눈에 들어왔다. 산위에서 바라보는 목포 앞 다도해는 향후 목포가 가진 잠재성의 최고 중심이다. 이미 흑산도와 주변 섬을 보고 온 터라 그 잠재성이 어디까지 확대될 지는 짐작이 되고도 남았다. 남해안 도시 어디서나 나타나는 충무공의 동상이 유달산 중턱에도 있는데 목포 앞바다를 내려다 보고 있는 그 모습마저도 멋졌다.
서산동 옆에는 근대역사관 1관이 있다. 붉은 벽돌이 예쁜 건물인데 일제강점기에 일본영사관으로 사용된 곳이다. 유달산 기슭에 올라와 있는 이곳을 중심으로 당시 메인도로가 앞으로 펼쳐지는 데 항구에 배가 드나드는 모습, 식량이 일본 배에 실리는 모습 등이 건물에서 보여진다고 했다. 근대역사관 2관은 일본의 수탈의 비극적인 현장을 생생한 사진 등 각종 기록으로 보여준다. 목포에서 듣는 일제강점기의 수탈의 현장은 이미 책으로 알고 있더라도 박물관에 기록된 사진만 보더라도 치가 떨릴 만큼 소름끼친다.
근대역사관 1관은 드라마 <호텔 델루나>에서도 나와 주목받은 곳인데 이곳을 중심으로 주변에 펼쳐지는 곳이 목포근대화 거리다. 오히려 이 땅의 주인인 한국인들은 옆의 서산동으로 밀려나고 목포역에서부터 근대역사관 주변까지인 당시 중심가는 일본인들이 주로 거주하며 점령군들의 세를 과시했다고 한다. 인근에는 일제강점기에 지어졌던 많은 적산가옥들이 있다.
일찍이 개발되지 않았기에 그때의 모습 상당 부분 그대로 거리에 남아있다고 했다. 나보다 좀 더 뒤늦게 목포의 가치를 알게 된 모 정치인의 목포 부동산 논란이 처음 보도가 되었을 때 나는 충분히 그의 심정이 이해가 되었다. 자본도 없고 보는 눈도 별로 없던 당시의 나도 목포 구시가지를 접하고는 왠지 분명 당첨될 것 같은, 긁지 않은 복권을 옆에서 구경만 하고 있는 기분이었으니까. 이후 2014년 목포를 다시 방문했는데 그때는 더욱 확신이 들었다.
목포는 대한민국 관광에 가장 중심이 되는 도시 중 한 곳이 될 거라고. 오히려 낙후되었던 것이 더욱 큰 이점이 될 거라고. 난개발 되었으면 이도 저도 아니었을 텐데 개발되지 못했던 서글픔이 이제는 큰 자산이 될 것이라고.
요즘 목포를 보면 그때 내 생각이 망상이 아니었음을 실감하게 된다. 2016년 이후부터 하나씩 무언가 갖추어 가던 목포는 2019년 유달산과 유달산 앞 바다 건너 고하도를 연결하는 국내 최장 길이의 해상케이블카를 오픈하면서 남해안 관광의 지형을 바꿨다.
다도해 해상케이블카 풍경이 멋지다는 것은 굳이 가보지 않아도 미뤄 짐작할 수 있는 사항이지만 목포 해상케이블카의 매력은 유달산 중턱에 중간 정거장을 두어 유달산 정상 부근에서 머물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이다. 케이블카 정거장에서 약 20여 분만 걸어가면 유달산 정상이다. 높지 않은 산이지만 그래도 등산은 늘 부담스러운데 케이블카가 그 부담을 단숨에 덜어준다.
관광지가 아니었던 고하도를 케이블카와 전망대, 해안트레일을 설치하면서 관광명소화한 것도 인상 깊었다. 목포의 해상케이블카는 케이블카에 대해 다소 비판적 시각을 갖고 있는 나에게도 목포의 대표 관광어트렉션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했다. 이 정도로 지역의 가치를 체험할 수 있게 한다면 케이블카를 세워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대화 거리와 주변 마을도 아직은 부족하지만 조금씩 역사, 문화적인 가치를 발굴하면서 목포만의 관광콘텐츠로 정리, 소개되고 있다. 목포역과 유달산 주변만 둘러봐도 목포에서 2-3일 정도는 아주 재미있게 지낼 수 있게 되었다. 목포 주변 바다는 아직 제대로 소개조차 되지 않았는데 목포의 볼거리, 체험거리들이 계속 늘어난다. 2021년 초 ‘관광거점도시’로 선정된 6개의 도시 중에서도 목포의 변화가 제일 눈에 띤다. 아무쪼록 이러한 변화가 목포는 물론 목포 주변까지 긍정적인 발전을 이루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