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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도시 감별사 Oct 29. 2022

안동 주변 도시는 더 좋아 2)

3-6 안동 봉화, 문경에 대한 사심어린 애정 


오지에도 볕들 날이 온다 봉화 

안동 북쪽에 위치한 봉화는 개인적으로 꼽는 ‘최애 소도시’이다. 심지어 늘 관광지 홍보를 해온 내가 누구에게도 알려주고 싶은 않은 곳으로 꼽는다. 초등학생 때 친척집에 방문하기 위해 봉화를 한번 가본 적이 있는데 그때도 오지였지만 지금도 오지인 곳이다. 당시에도 산등성이에 화전민들이 계단식 논밭을 일구며 삶의 터전을 힘겹게 일구어 온 곳이라고 들었다. 그러나 내 기억에는 방문 했던 당시 겨울 이어서 눈 쌓인 계단식 논밭에서 비료포대 미끄럼을 타고 신나게 놀았던 추억만 남아있다. 


그 이후 다시 방문한 것이 무려 30여년이 지난 2014년이다. 뜨거운 여름이 막 지나고 있는  8월 중순 어느 날이었다. 약 1주일간 여름휴가를 겸해 예천에서 봉화를 거쳐 울진까지 경북 북부지역을 돌아봤다. 예천에서 차를 몰고 들어가니 체감 기온부터 1-2도는 낮아진 듯 시원한 공기가 먼저 반겼다. 


무엇보다 봉화는 경관이 수려하다. 태백산맥에서 소백산맥으로 나뉘는 분기점에 위치한 이곳은 무성한 숲을 이루는 곳에 위치한 자연환경 덕분에 숲과 계곡 모두 발달해있다. 등산매니아들에게 손꼽히는 명산 청량산도 위치해 있다. 깊은 숲에서 자라는 울창한 나무들은 훌륭한 목재가 되는 데 옛날부터 궁궐이나 절 등을 지을 때 사용했을 정도로 나무가 크고 곧게 자라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인지 봉화의 한옥은 좋은 목재를 이용해 지어져서 인지 크기도 크거니와 보존상태도 좋다. 무엇보다 한옥의 기품도 가득하다. 바래미마을의 남호구택과 춘양면의 권진사댁에서 각각 1-2박을 머물렀는데 툇마루에서 멍 때리는 휴가가 얼마나 좋은 지 그때 깨달았다. 한여름인데도 바람은 시원해 무릉도원이 따로 없었다. 두 곳 모두 후손이신 어르신 부부가 그 큰 집을 관리하며 한옥체험시설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무척 부지런하고 깔끔하셨다. 침구며 정원이 아름다워 그냥 바라만 보고 있어도 힐링이 되는 곳이었다. 심지어 주문하면 아침식사까지 차려주셨는데 나긋하게 말씀하시는 모습 또한 집과 어울리게 사극에서 본 대갓집 마님이 떠오를 정도로 멋졌다. 무늬뿐인 한옥 체험이 아닌 진짜 한옥을 체험을 하는 것 같았다. 


남호구택은 이후 다시 찾아가 한여름에 아예 2박을 머물렀던 적도 있다. 주인장께선 다시 찾아왔다고 무척 반가워하며 찐감자, 옥수수 등도 내 주셨는데 늘 하는 일이라고 하시는데도 그렇게 감동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땐 무척 더운 여름이었는데 온종일 선풍기 하나 틀고 사랑방 툇마루를 독차지하며 뒹굴거렸다. 그때 자다가 문득 깨어나 보았던, 한 밤중 마당과 솟을 대문 기와지붕위로 내리던 하얀 달빛을 잊을 수가 없다. 보름달이 뜨는 날이었는데 달빛이 그렇게 환한 줄 예전엔 미쳐 몰랐다. 신비롭고도 처연해 한참을 멍하니 쳐다보다 다시 잠들었다. 


이렇게 휴가로 봉화를 먼저 찾아서 그런지 봉화는 내게 휴양지로 더욱 남아있다. 나이가 들수록 바다보다는 산이 더 좋던데 스위스나 캐나다의 록키에 있는 산악휴양마을이 한국에도 정착하게 되면 아마도 그 중 한 자리는 봉화의 어느 마을이 차지하지 않을까 싶다. 바래미마을, 춘양면의 낙천마을 등에는 오래된 전통 한옥이 많은데 봉화에서는 이후 이런 자산을 바탕으로 가장 한국스러운 산악 휴양지로 봉화를 가꾸고 홍보했으면 한다.  


봉화에는 요란한 핫플레이스는 없지만 이색적인 핫플이 눈길을 끈다. 봉화의 가장 핫플로 꼽히는 <카페 홀리가든>은 명호면의 산등성이에 위치하고 있어 주변 경관 감상에 최적인 곳인데 커다란 창 앞에 둔 포토존 때문에 SNS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100% 예약제로만 운영하고 있어 더욱 화제다. 매달 1일 다음달 예약이 오픈된다. 한 타임 당 4팀만 예약을 받고 타임당 1시간30분 이용할 수 있는데 오픈하는 순간 예약이 마감된다고. 예약하기 힘들어 나도 아직 못가봤다. SNS를 좋아하는 요즘 세대와 주변 환경을 십분 활용한 카페 운영이 특색있다. 


이곳의 풍광이 얼마나 좋으냐면 명호면의 또 다른 산등성이에 위치한 펜션 겸 카페 <오렌지꽃향기는 바람에 날리고>는 무인으로 카페를 운영하는데 카페 자체는 소박하지만 카페의 큰 창을 통해 바라보는 풍광은 결코 소박하지 않은 곳이다. 도청에서 발행하는 책자 제작을 위해 취재차 방문하려고 전화했더니 제대로 설명도 안들어보고 대뜸 잡상인 취급부터 해서 살짝 어이가 없었으나 무작정 찾아가보니(카페는 예약 없이 방문 가능) 잡상인 취급한 주인장의 패기가 이해가 될 정도로 풍광은 최고 중의 최고였다. 늦가을이었음에도 풍경에 압도당해서 20분만 구경하고 나와야지 했는데 여기 저기 사진찍느라 1시간 이상은 머물렀던 것 같다. 날씨 좋은 날 가면 더욱 황홀할 듯 하다. 그만큼 봉화의 자연환경은 보물이다. 


풍경만 보물이겠는가? 공기도 좋은 이곳에서 재배되는 농장물은 더욱 큰 보물이다. 예상외로 직접 빵을 굽는 베이커리가 봉화에 많았는데 별로 빵을 좋아하지 않는 나도 좋은 재료로 빵을 만들었다고 느낄 정도로 신선한 빵을 내놓아 깜짝 놀랐다. 빵 나오는 시간이 정해져 있고 오후 늦게 가면 이미 빵이 소진되어 문을 닫을 정도로 베이커리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 한 때 유명 셰프들이 서울의 모 관공서 옥상에 텃밭으로 만들어 식재료를 직접 키우는 프로그램이 한 케이블방송을 통해 방영된 적이 있었다. 그때 셰프들이 우르르 한 농장으로 몰려가서 한국에서 보기 힘든 각종 허브와 식재료의 모종을 받아왔는데 그 농장이 봉화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글을 쓰면서 거의 1년 여 만에 봉화카페, 봉화베이커리 등을 키워드로 검색을 해봤는데 디저트를 만드는 카페와 베이커리, 수제피자집까지 부쩍 늘었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가 보다. 많은 이들이 인적마저 드물던 곳인데 이만큼 업소들이 많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방문하는 이들이 늘어났다는 증거다. 자기만 알고 싶은 여행지로 꼽는 이들이 많아진 모양이다. 뭐, 어쩌겠는가. 충분히 이해된다. 

봉화는 그만큼 매력적인 걸. 더 유명해지기 전에 빠른 시일내 봉화여행을 다시가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강하게 들었다.



청년들이 일으키는 반란 문경 

문경은 이미 찾아온 청년들로 하여금 지역 재생의 기반을 탄탄히 만들고 있다. 문경의 주요 관광지와도 동떨어진 산양면의 화수헌은 2018년 게스트하우스겸 카페로 문을 연 이래 문경에서 가장 주목받는 공간이 됐다. 90년대생 5인의 청년들로 조직된 리플레이스가 조용한 농촌마을에 있던 폐가로 방치되어온 고택을 젊은 세대들이 선호하는 공간으로 변신시켰다. 


문경시가 고택 활용을 위한 공모사업을 추진하면서 이 청년들이 지원했다. 지역의 농산물을 가공해 식음료를 만들고 꼼꼼히 스토리텔링을 하며 적극적으로 SNS를 활용해 홍보를 하자 평일에도 1일 100명, 주말에는 최대 800명이 방문하는 명소가 됐다. 5명의 직원이 10여명이 되고 산양면에 2곳의 공간(셀프 스튜디오 볕드는 산, 문화공간 산양정행소)을 더 오픈하는 한편 경북 영양군 서석지 일대의 고택과 산촌의 초가집 여러 동의 공간기획을 진행하고 있다. 


문경의 청년들이 모여든 것은 화수헌 등만이 아니다. 청년들이 모여 가나다라브루어리를 열고 문경산 수제맥주 브랜드를 탄생시켰다. 코로나 이전에는 양조장 투어를 운영하고 나아가 독일이나 캐나다 등에서 성료되어온 대규모 펍 레스토랑처럼 양조장 펍까지 운영할 계획도 세우기도 했다. 펍의 꿈은 코로나로 잠시 접었지만 지역을 상징하는 수제맥주의 대표 브랜드의 하나로 성장했다. 가나다라브루어리 이전에도 오미자와인, 오미자막걸리 등 문경만의 술이 주당들에게는 이미 주목받으면서 문경은 수제 술 브랜드를 탄생시키는 대표 도시가 되고 있다. 


문경은 가진 것이 많은 동네다. 처음 문경을 방문했을 때 너무 경치가 아름다워 깜짝 놀랐다. 수려한 산과 하천이 적절히 어우러진 도시였다. 천혜의 자연환경을 이용해 다양한 레포츠를 즐길 수 있는 레저도시로 부상 중이었다. 패러글라이딩, 래프팅, 사격, 짚라인 등이 성행이었다. 


불과 10여 년 전까지 만해도 문경은 한창 도시의 근간을 이루던 석탄산업이 내리막길을 걸은 후 소멸되어 갔다. 도로와 철도의 발달로 제 기능을 읽은 문경새재는 ‘길’을 상징하는 트레일 코스로 핫플레이스가 됐다. 거기에 석탄산업의 근간을 이루던 폐역과 철길도 훌륭한 자산이 됐다. 폐선로를 활용해 국내에서 레일바이크 붐을 일으킨 도시도 문경이다. 관광지로서의 역할 또한 청춘들의 철도패스인 내일로 패스가 가장 활발하던 2010년 초반에 문경에서 내일로 패스 소지자들에게 다양한 혜택을 주면서 더욱 주목받게 되었다. 단체 여행객 뿐만 아니라 개별여행자들이 충분히 문경을 즐길 수 있는 도시가 된 것이다. 문경은 어떻게 보면 지자체 중에서도 가장 빠르게 청년들을 도시 재생을 위해 활용해온 듯하다. 문경의 사례는 다른 지자체에서도 청년들에게 지역 콘텐츠를 개발하게 하고 운영하게 하는 제도적인 지원을 확장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로컬의 청년지원이 부처별로 다양해지는 등 유행처럼 늘어나고 있다. 지역 재생을 위해 꼭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잠시 시선을 끄는 경우는 많지만 지속적으로 비즈니스를 유지하는 경우는 드물다. 청년들 사이에서는 젊었을 때 경험해보는 단계정도로만 여기기도 한다. 이제는 로컬에서도 좀 더 지속가능한 아이템이나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사회적 경험이 이미 풍부한 40대 이상에게도 기회를 주면 어떨까. 로컬에서의 삶이 오히려 중년들에게 더욱 절실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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