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번째 유성 한 조각
이쯤 되면 아마도 나의 글을 읽는 사람들이 합리적 의문을 느낄 수도 있으리라 예상된다.
어째서 나는 가족들에게 계속 그런 취급을 받고 있는 것이냐고.
심지어 나의 이야기는 대학생 때부터 시작되고 있는데, 왜 그렇게 힘 없이 당하기만 했느냐고…
그래서 나는 나와, 나의 가족들 한 명 한 명하고 얽혀 있는 과거의 에피소드들도 하나씩 풀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중 가장 처음은 아무래도 아버지에 관련된 일화들이 맞겠다.
내가 막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갓난아기일 때, 나를 죽일 뻔했던 아버지.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에는 내 입 안이 다 터져서 피가 철철 흐를 정도로 나를 때렸던 아버지.
중학교 때는 막내 삼촌과 언니가 다퉜는데도, 나까지 같이 때리려고 했던 아버지.
고등학교 2학년이 됐을 때도 사촌 동생이 보는 앞에서 나를 구타했던... 아버지.
마냥 나쁜 기억만 있는 존재는 아니다. 행복한 추억도 있다.
사진 속에서 아버지 품에 안겨, 볼을 딱 붙인 채 활짝 웃으며 찍은 표정도 남아 있으니까.
다만, 그로 인해 쉽지 않았다.
내가 가정폭력 피해자라는 사실을 인정하기까지 말이다.
좋았고 행복했던 추억들로 인해 가족들이 내게 저지른 가정폭력을 자꾸 정당화하고 합리화하는 사고를 놓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모든 건 내가 심리상담을 받으며, ‘심상치료’라는 것을 하게 됐을 때 깨져버렸다.
지금의 상담 선생님께 정착하게 된 계기도 이 치료의 경험을 통해서이다.
말하자면, 나는 오랜 기간 ‘신체화 증상’ 때문에 고통받았었다.
이 용어를 대학 수업 때 얼핏 듣기는 했지만, 그게 나에게 해당되리라고는 쉽게 연결 짓지 못했다.
하지만 이 치료를 성공적으로 경험한 후, 사실 나와 관련된 대다수의 질병들이 심리적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꾸준히 깨닫게 되었다.
나의 편두통, 후두염, 허리 통증 등등… 너무 많은 내 몸의 증상들이 심리적 문제와 연결되어 있었고, 덕분에 나는 심리상담을 받으며 꽤 많은 질병들이 호전되는 경험을 하고 있기도 하다.
만약 누군가 다양한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내 글을 읽고 있다면, 이 글에서 내가 경험한 신체화 증상의 치유의 경험들이 그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길 바란다.
다만, 신체화 증상과 관련된 일화는 다음 장에서 구체적으로 다루어 보고자 한다,
우선은 아기 때의 이야기를 먼저 꺼내어 보고 싶기 때문이다.
사실 내게는 어렸을 적 어렴풋한 장면 하나가 또렷한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여느 날처럼 나의 아버지는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왔고, 나와 언니를 꽉 끌어안아 주셨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행복한 환호를 내지르기도 했다.
사랑하는 아버지의 퇴근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여느 행복한 가정의 어린아이들처럼 말이다.
하지만 어느 날.
그날도 아버지는 다른 날과 똑같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며 구두를 벗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나는 문득 ‘공포심’이 치밀어 올라왔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막연한, 숨 막힐 듯한 두려움과 함께 말이다.
그러나 더욱이 꺼려지는 것은 그러한 나의 마음을 아버지에게 들킬까 봐였다.
그래서 아닌 척했다. 온 얼굴을 구겨 웃으며 그날따라 더욱 아버지의 품에 더욱 밀착해서 안겼다.
아버지가 나의 표정을 볼 수 없도록 말이다. 내가 당신을 상당히 무서워하고 있다는 표정을…
후에 알게 된 거지만, 이러한 나의 심리를 정신분석에서는 ‘반동형성’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내 스스로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충동이나 욕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전혀 반대되는 방향으로 행동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주로 이혼 가정에서도 아이들에게 많이 나타난다고도 들었다.
어쨌든 나는 이때의 기억을 성인이 돼서까지도 문득문득 떠올리며 살아왔다.
그때 그러한 감정을 느꼈던 이유를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더욱 쉽사리 잊히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마침내 어머니로부터 어떤 진실을 들으며 그 원인을 알게 되었다.
그것도 내가 20대 후반에서야 알게 되었지만 말이다.
정확히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날도 나의 어머니는 어김없이 나에 대한 비난 어린 말들을 서슴지 않을 때였다. 평소처럼 조용하고 단아한 목소리로 말이다.
“수아 너는 진짜 아기 때부터 보통이 아니었어.”
“내가 또 뭐가…”
“너 때문에 아빠가 악! 악! 하고 소리 지르는데, 엄마는 그때 네가 아니라, 네 아빠가 잘못될까 봐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하…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내가 뭘 어쨌다고…”
나는 사실 어머니의 ‘수아 네가 이상했다’며, 가족들과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내 탓을 하는 그 말에 어느 정도 지쳐있었다. 그래서 평소처럼 아무 생각 없이 건성건성 얘기에 귀 기울이는 척을 했다.
그리고 어머니는 자신이 말을 하는데만 집중했다.
“네가 아무것도 못하고 누워 있는 갓난아기일 때. 네 아빠가 너가 귀여우니까 장난을 치고 싶었나 봐. 엄마는 그때 딴 데서 집안일하고 있어서 뭔 일인지는 몰라. 근데 네 아빠가 갑자기 막 악! 악! 하고 소리를 지르는 거야.”
“…?”
“그래서 엄마가 일하다 놀라서 막 달려갔는데, 네 아빠가 막 네 앞에서 악! 악! 소리를 지르며 난리가 난 거야. 그때 네 아빠 얼굴이 진짜. 입에서 막 침까지 줄줄 흘리며 제정신이 아니었는데… 그때 넌 진짜. 무슨 갓난아기가 얼굴이 새하얗게 시체처럼 창백해져서는 눈을 똥그랗게 뜨고, 입은 흡- 이렇게 닫고 있었는데. 숨을 안 쉬어서… 진짜 아기가 죽는 줄 알았다니까.”
그때 나는 어떤 표정이었을까.
나의 어머니는 자신이 기억하고 있던 그 당시의 이야기를 하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고, 그래서 내가 어떤 상태였는지 더욱이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어머니의 말을 들으며, 그 이야기 속, 갓난아기였다던 나의 모습이 그려지며 상당한 충격을 느꼈다.
내가 죽을 뻔했다니… 그것도 아버지에 의해서.
“네 아빠가 원래 장난이 심하잖아. 그래서 나중에 보니까, 네 아빠가 퇴근하고 왔는데 네가 귀여워서 널 와! 하고 놀래켰다나 봐. 근데 네가 너무 놀라서는 숨을 못 쉬니까. 네 아빠가 더 놀라서 난리가 난거지. 애가 잘못될까 봐.”
그리고 무엇보다 그 일화를 얘기하며 자신의 아기는 전혀 걱정하지 않는 모습을 일관하던 어머니라는 사람의 표정이 몹시 놀라웠다.
그녀는 두 팔을 팔짱 낀 자세로 그때를 떠올리면 심히 짜증이 난다는 듯한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녀가 입 밖으로 내뱉는 말은 그 톤만 높아지지 않았을 뿐, 잔뜩, 이유 모를 분노도 서려 있었다.
“진짜 엄마는 그때… 네 아빠가 정신이 나갈까 봐 더 걱정됐다니까? 무슨 아기가 그렇게 성격이 독하고 보통이 아닌지… 너 때문에 네 아빠가 장례 치를 뻔했어!”
그렇게 말한 어머니의 말끝에는 결국 나의 존재에 대한 신경질적이 담뿍 담겨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때의 얘기를 적고 있는 지금도. 그녀가 말한 그때의 일화와 그 말을 하던 그녀의 표정이 생생해서… 아직도 그들이 섬찟하게 느껴진다.
나의 어머니가 나를 비난할 때마다 빼놓지 않는 말.
‘너는 보통이 아니었다.’
그녀는 나와 함께 하던 순간 내내 그 말을 마치 저주처럼 나에게 내리꽂았다.
그리고 나는 그런 그녀의 말 때문에 그녀와 함께 하던 모든 순간을 마치 죄인이 된 것 같은 심정으로 살아와야만 했다.
그다지도 쉬운 일이었다.
부모가 자신의 아이에게 죄악감을 심어주고, 그렇게 결국 자연스럽게 굴복시키는 방법은…
더하여… 어머니의 그 말은.
내가 나의 가족들에게 온전히 저항하지 못하고 나 자신을 지키지 못하게 만든 최악의 족쇄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