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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건숙 Feb 23. 2022

절반의 성공

애 많이 썼겠구나.

새 가지를 뻗어가는 모습이 보기 좋구나.




세 번째 책이 출간되었다. 책을 가져 가 어르신 느티나무에게 보여주면서 쳐다보니 짙어지고 무성해진 가지들 사이에서 죽어 있는 가지들이 언뜻언뜻 보였다. 봄에 싹이 나올 때부터 보아온 것이다. 멀리서 보면 표시가 잘 안 난다. 수많은 잎들을 거느리고 있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위엄 있는 느티나무에게도 상실과 상처가 있는 것이다. 우리도 오래 살다 보면 내장 하나 정도는 잘라내기도 하고, 몸의 기관 어딘가가 고장 나기도 한다. 겉에서 보면 멀쩡해 보이는 사람들도 말이다. 나무나 사람이나 다를 바 없다.






 “어르신, 세 번째 책을 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가져와 보고 드립니다.”

 “허허, 애 많이 썼겠구나. 축하하네. 새 가지를 뻗어가는 모습이 보기 좋군.”


 

인사를 마친 나는 표지 그림처럼 씩씩하게, 거뜬거뜬 걸었다.

  

이번엔 책 표지의 힘으로 걷기로 해서 따로 문장을 준비하지 않았다. 아니 이번 표지엔 더 많은 이야깃거리가 들어 있어서 표지가 문장이었다.

  

교정이 끝나면 출판사로부터 표지 시안이 온다. 보통 4~6개 정도가 온다. 그 가운데 쉽게 버릴 수 있는 것들을 빼고 나면 대부분 2개가 남았다. 그 2개가 선택을 많이 힘들게 다. 거침없는 선택을 하는 평소와는 달리 결정장애자가 되는 순간이다. 두 번째 책까지 블로그에서 표지 설문을 했다. 하지만 이번 책은 입체 표지까지 나올 때까지도 블로그에는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희한하게도 설문을 하고 나면 마음이 흔들렸기 때문이다. 매번 내가 좋아하는 것이 따로 있었음에도 설문에서 가장 많은 찜을 받은 것으로 마음이 움직였다. 결국 책은 내게서 독자에게로 넘어가는 것이기에 내가 좋아하는 것보다는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것으로 해야 된다는 생각에 순순히 결정을 바꾸었다. 하지만 두 번을 그리 하고 나니 마음 한 구석엔 미련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가족과 몇몇의 지인 그리고 오랜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한 모임의 단톡방에만 올려서 의견을 물었다. 이번에도 더 많은 찜을 받은 시안이 있었지만 적은 인원으로 해서인지 흔들리지 않고 내 맘에 드는 것으로 결정할 수 있었다. 물론 다른 시안을 택한 이들의 의견은 많은 도움이 되었다. 특히 조목조목 이야기해 준 이의 의견은, 책 내는 사람이면서 다른 책의 표지에 큰 관심이 없는 내게 좋은 가르침을 주었다. 이 표지는 요즘 트렌드이면서 여행에세이 분위기이고, 저 표지는 약간 무거워 진중한 심리에세이가 연상된다는 등의 말이었다.

  

진한 초록을 바탕색으로 한 신간 표지엔 상체가 보이지 않는 여성이 핑크색 캉캉치마를 입고 에코백을 메고 군화 스타일의 구두를 신고 씩씩하게 걷고 있다. 표지 아래 왼쪽과 오른쪽 끝에는 꽃송이가 달려 있는 식물이 그려져 있다. 상체를 그리지 않은 과감한 구도가 참신했다. 초록 편애자에 자연을 사랑하고, 걷는 것을 좋아하는 내게 그 표지가 끌릴 수밖에 없었다. 여성의 팔과 종아리가 너무 가늘어서 중년인 나와는 너무 거리가 멀어 살을 좀 찌우라 하고, 위와 아래 구석에 그려져 있던 잎사귀 가운데 위에 것을 없애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훨씬 깔끔해졌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이번 표지에 유난히 독자들의 반응이 컸다. 서점에 진열되어 있을 때 눈길을 많이 끌 정도로 예쁘다는 소리도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다 들어 있어서 유난히 만족스럽다. 걷고 있는 이미지는 나이를 먹어서도 계속 내 삶을 씩씩하게 걸어갈 것이라는 의지를 말해주는 듯했다. 누군가 동화를 연상하게 한다고 하면, 후반 인생은 동화처럼 살 것이라 다짐했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떠오른다고 하면 앨리스처럼 환상적인 일들을 많이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다.

  

한 리뷰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다.


서양 속담에 ‘표지로 책을 판단하지 마라’라는 게 있고, 우리나라 속담에도 ‘빛 좋은 개살구’라는 말이 있어서 겉모습에 현혹되지 말기를 권고하지만, 요즘처럼 일단 소비자의 눈길을 사로잡는 게 가장 중요한 세상에서는 책 표지와 제목은 단연코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이 예쁜 표지 《비로소 나를 만나다》는 이미 절반의 성공을 거두고 들어가는 셈이다. 표지에 그려진 저 여인의 뒤를 살금살금 쫓아가기만 하면 나도 비로소 나를 만날 것처럼 유혹적이다. (간서치아지매 님 리뷰 가운데)     

  

내가 덕질하는 가수가 너무 잘 생긴 것을 두고, 한 동료 가수는 ‘노래가 외모에 묻힌다.’고 말했다. 내 책 표지도 그런 셈이다. 그냥 예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유혹적이라지 않는가. 이만하면 절반의 성공이 아니라 대성공이다. 어느 독자는 ‘진한 초록색 표지와 걷는 이의 발걸음에서 건강함을 발산하고’ 있다고 했다. 다른 날보다 상록오색길을 더 힘차게 걸을 수 있었던 것도 표지에서 나오는 힘 때문이었다.

  




이번 북토크에서는 표지 이야기를 많이 해야 할 것 같다. 걸으면서 그 이야기들을 대부분 정리했다. 이제는 혼자 결정해도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표지는 사람으로 치면 첫인상을 좌우하는 얼굴이기 때문에 신중할 수밖에 없는데 이번 일로 자신이 생겼다.   

  

하지만 표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책 속의 내용과 앞으로도 계속 내겠다는 의지일 것이다. 지금까지 써 온 책은 물론 앞으로 낼 책 가운데엔 사랑을 더 받는 것도 있고 덜 받는 것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죽은 가지에 연연하지 않고 새 가지를 뻗는 느티나무처럼 나도 계속 글을 쓸 것이다. 죽은 가지가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무성한 잎을 내면서 성장을 멈추지 않는 느티나무처럼 한 발 한 발 나아가자. 상록오색길을 걷듯!

(2021. 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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