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자뷔

익숙해지지 않는 향수병에 관하여

by 쓴쓴

익숙지 않은 무엇이 익숙하게 다가오는 경험을 해보았던 적이 있을 것이다. 눈에 걸리는 대부분이 애매하게 새로워서 한참을 어색한 자세로 서성이듯 안절부절못한다. 그것이 데자뷔이든 무엇이든 설명하는 방법은 분명 다양하겠지만, 글쎄 나는 최근 어쩐 일인지 씁쓸해졌던 기억을 얻었다. 그리고 씁쓸함은 이내 쓸쓸함이 되었다.


당시 상황을 설명할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서여서 그랬겠지만, 사실 설명보다 그저 그 황망함과 당혹감을 허락한 향수에 빠지고 싶어서였을지 모르겠다. 그것을 어리석은 귀소본능이라 부를 수 있다면 매우 세련된 방식으로 자기를 방어할 방법을 찾은 셈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다가 아니었음을 알았다. 어떤 이성의 끈 혹은 통제 따위의 것을 놓아버리고 싶었던 순간에 품었던 충동은 놀랍지도 않았다. 이 순간이 팽창하기를, 아주 큰 보자기처럼 확장되어 계속되기를, 그래서 나를 감싸버리다 못해 삼켜버리길 바라던 야릇한 자기파괴적 본능에 울던 내면을 육체의 피곤으로 애써 재워야 했기 때문이다.


비 오던 날, 집 근처에서 물에 젖은 거미줄을 보았다. 거미도 비를 피해 어디로 숨었는지 평소에는 잘 눈에 띄지 않는 거미집만 보인다는 게 역설적인 광경이었다. 문득 사람은 무엇에 붙어있는가 싶었다. 자신을 평소에 대표할 만한, 지금 잠시 떠났을지라도 곧 돌아갈 고향 같은 것을 말이다.


어설픈 향수병에 괴로워 한 인간은 고민마저 어설프구나 싶었지만, 아무렴 어떤가 싶었다. 잠에서 깬 뒤로 어젯밤 기억들을 맞춰보며 조심스레 복기를 시도했다. 그리고 아마도 사람에게 '그것'은 과거가 아닌가,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변하지 않는 무엇을 자연스레 찾는, 불안에 떠는 인간이 가진 본성이 자연스레 향하는 곳 말이다. 그러나 우리의 기억은 불완전하지 않은가. 기억은 각색된 과거인 것을 사람은 어떻게 추억하고 의존할 수 있을까.


그제야 나는 불안과 그리움이 섞여 나타난 이유를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