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장가

비 오는 날

by 쓴쓴

병원에 또 왔다. 지겨워하는 말이 아니다. 일종의 안도감이다. 일주일을 또 잘 넘겼구나, 하는.


이번 주는 무기력이다. 나를 감싸 도는 이 보이지 않는 구름의 이름에 무기력이라 이름을 붙인지도 오래다. 손으로 휘휘 저어도 사라지지 않는 공기 중의 물기 같다.


사라져라. 사라져라. 말을 반복하지만 몸이 이미 말을 안 든다. 베개를 꼭 끌어안고 누워있다. 아 편하다.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


하지만 현실은 병원이다. 일부로 책 세 권과 더불어 노트북까지 가지고 나왔다. 학교 과제를 해야겠다는 핑계로, 독서모임 선정도서를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시험 준비를 해야 한다는 계획을 따라 바리바리 짐을 싸서 나왔다. 진료만 끝나면 바로 카페에 갈 계획이다.




진료가 끝이 났다. 비가 온다. 오후부터 오기로 했었는데... 괜찮다. 비 오는 날은 좀 낫다. 너무 날이 밝으면 어두운 면은 더 어두워지는 법이다. 물그림자만이 비취는 날이 차라리 낫다.


화장실에 가서 씩 웃음을 지어본다. 어색하다. 턱 바깥으로 빠져나온 볼살이 퉁명스러워 보인다. 가을이라고 입술도 생기를 잃었다.


나를 뒤로 하고 나와 친구에게 카톡을 날려본다. 힘을 얻어 써볼까 했는데 이 친구도 힘들단다. 하긴, 요즘 안 힘든 사람이 누가 있을까 싶다.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잘 살고 있다고 칭찬받아야 마땅한 세상이다.




나는 불안을 인정하기로 했다. 학교 다니며 공부하는 일에 관하여 직시하기로 했다. 그만둘까 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모든 걸 다시 그만두겠다고 할까 봐 두렵다. 이 공포를 인정하기로 했다.


잠이 온다. 자고 싶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커피를 들이켠다. 카페에 흐르는 노래, 빗소리, 책의 활자까지 모두 자장가 가사 같다. 어쩌지. 잠이 온다. 도망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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