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 보감, 그 두 번째 생각

마녀: 어디선가 살아가는 모든 청춘 / 결계: 함께

by 쓴쓴
첫 번째 생각 https://brunch.co.kr/@enormous-hat/84
세 번째 생각 https://brunch.co.kr/@enormous-hat/92
네 번째 생각 https://brunch.co.kr/@enormous-hat/95
다섯 번째 생각 https://brunch.co.kr/@enormous-hat/100
마지막 생각 https://brunch.co.kr/@enormous-hat/107


청춘 설화 - 청년들의 이야기


조선 청춘 설화. 마녀 보감을 소개하는 또 다른 말이다. 그런데 한 회라도 시청해본다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청춘 이야기 치고 극을 이끌어가는 주인공들의 처지가 난처한 까닭이다. 로맨스나 코믹이 드러난 요소를 빼고 나면 등장인물 저마다 어두운 배경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챌 수 있다.


마녀 보감에서 마녀(연희 혹은 서리)는 세상이 모르는 존재다. 사람들의 기억에서 묻힌 공주. 저주받은 마녀. 사랑을 꿈꿀 수 없는 인생. 이유도 의미도 모른 채 숨어 지내야만 하는 청춘. 마녀가 된 서리는 앞의 모든 것을 대표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런 그녀는 자신이 가진 '연'을 소중히 여긴다. 마치 바깥세상으로 나가지 못하는 자신의 꿈과 운명을 위로받으려는듯이.


허준은 서자다. 이 출신 때문에 줄곧 모함을 받고 양반이 받을 치욕을 대신당한다. 노비인 어머니까지 사고로 잃는데 그를 유일하게 돌봐줘야 할 아버지는 극에 소개조차 되지 않는다. 최근 편에서 결국 허준은, 연희가 들어줄 때마다 그 소원의 주인공들을 살해하는 '붉은 도포'라고 오해를 받으므로써 군졸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그리고 왕의 계략으로 죽은 자로 공포된다.



새로 시작하는 청춘


살인자라는 오해를 받고 쫓기다가 절벽으로 떨어지는 허준을 구해준 연희는 재회 이후 도리어 그에게 차갑게 대한다. 그녀의 주변인들이 다 죽어나가기 때문에 일부로 멀리한다. 그런데 그가 그녀를 지키는 유일한 결계가 된다. 신분 차별을 버틴 끈기와 의지, 그리고 삶에 대한 강한 동경 덕분인지 몰라도 마녀가 된 연희를 보호하고 저주를 덮는 '인간 결계'가 된다.


세상이 죽음으로 내몰던 청년 허준은 '죽은 자로 여겨'지던 연희의 도움으로 구사일생한 후 죽을 운명이라 저주받은 서리를 도와 저주와는 떨어진 일상을 누리도록 동행한다. 지난날 허준은 서리가 갇혀 지내던 '흑림'에서 '모든 사람은 태어난 이유가 있다'는 설희의 말에 위로를 받았다. 그러니 이제 허준은 서리가 심어준 그 생각대로 설희를 지키는 또 다른 의미의 결계가 된 셈이다. 각자기 지닌 저주와 출신의 어두운 그림자로만 그려진 '청춘'의 모습들이로운 색채를 띄기 시작한다.



왜 청춘이어야만 했나


인물들이 보이지 않는 영역에 갇혀 모든 바깥 세계, 일상의 세상과 연을 끊어야 한다고 여길 때즘 '결계'라는 요소가 등장하며 둘은 세상을 볼 의지를 얻는다. 어쩌면 결계로 이어진 서로의 존재 덕분일지도 모른다.


'세상에 쫓기는 청년'과 '세상이 감춘 청년'은 결계로 이어진 관계로 '같이'를 느낀다. 그들이 만나기 전과 다르지 않은 여전한 세상이지만 살 만한 어떤 이유를 새롭게 발견한다. 자신의 가치, 삶의 이유, 선택의 의미를 알아가며 살아있는 자신을 느낀 그들은 다시 생각한다. 같이 있자, 같이 살자, 같이 하자고 말이다.


사람들에게 해를 입힐 수 있어서 (인식의) 동굴에 갇히고, 애매한 출신 때문에 삶에 갇혀 세상과 단절된 청춘들의 이야기는 비단 드라마 안에만 있지 않다. 시청자는 다만 제 삼 자가 되기에 화면 속 세계와 인물에 공감하지만 심각해지지는 않을 뿐이다.


생각이 이곳에 미치자 괜히 또 읽어낸다. 슬프고 가슴 아픈 우리 사회에 담긴 한 이야기를 본 듯해서다. 구의역 스크린도어 앞에 서 있었던 한 '청년' 그리고 그 자리에 놓인 꽃들에 관하여서 말이다. 세상의 잣대 앞에서 내몰리던 청년과 죽음에 이르러서야 그와 함께 할 수밖에 없는 다른 청춘들의 모습을 본다.



살아가자 그리고 같이 살자


스크린 도어 앞 추모의 흔적이 결계, '함께'의 결계로 보이는 이유는 왜일까. 자신의 이야기로 공감하며 슬퍼하는 추모행렬은 같이 살고 같이 살아내자는 소리 없는 아우성이 되어간다. 내가 너를 지켜주고 네가 나를 지켜주자는 서로를 향해 맹세하는 결계다.


연희와 허준이 함께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극의 이야기처럼 네가 거기에 있고 내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장소가 되어간다. 함께하자, 고 넌 다르지만 너도 사람이다,라고 서로에게 건네는 메아리가 울린다.



상상력이 짓고 이야기가 담아내다


문학은 현실을 반영한다. 쓰인 시대의 부름을 따라 그려진다. 가상의 무대에서 가상인물들로 진행되는 예술이지만 뚜렷한듯해도 흐리고, 명확한 듯 하지만 이내 섞여버리는 인생들의 이야기와 닮았다. 도리어 표현하지 않아 더 명확하게 되고 숨기기 때문에 인생들을 더 담아낼 수 있다.


주인공만이 이 역할을 감당하지 않는다. 출신을 믿고 횡포를 부리는 허준의 배 다른 형이나 부모 없이 출신도 모른 채 저잣거리 심부름과 도둑질로 연명하는 허준의 친구는 비록 주변 인물들이지만 현실을 조심히 그리고 고스란히 받아낸다. 금수저의 횡포가 여전하고 남의 뒤를 봐줘야 인정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여전하다.


아픈 현실을 다시 담아내고 우회하여 표현하는 시도가 필요할까 싶어도 작품으로 사람은 현실을 안전히 바라볼 수 기회를 얻는다. 이 기회는 날 것 그대로보다는 실제 모습에 상상력을 발휘하는 인간의 능력에서 시작한다. 이 능력에 의존한 이야기는 흐릿해지되 부각하려는 현실의 한계는 명확해지고, 현실에서는 조명받지 못한 주변부의 이야기는 중심 무대로 올라온다. 상상력을 지녔기에 사람은 지금의 세상과, 더 나은 세상을 그려볼 수 있는 기회를 이야기에서 얻는다.




아직 완결되지 않은 드라마지만 이 극의 배경엔 바꿀 수 없는 역사가 있다. 허준이 의원이 된다는 사실이다. 결과를 안 채로 과정을 보는 시청자로서 사람을 아는 의사, 아픔을 아는 의사가 될 거라 기대해봐도 되지 않을까. 아마도 이것이 허준이 의사가 되는 과정을 담는 이 드라마에서 작가의 상상력을 기대해볼 만한 이유가 될 것이다.


만약 이 설정이 드라마의 결론에 담긴다면 아마도 이 요소로 필자는 '마녀 보감 세 번째 이야기'를 쓰게 되고 마녀 보감을 읽어내는 더 다양한 해설을 발견하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