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부가 합쳐졌다. 다행히 팀은 그대로지만 조직의 임원이 바뀌었다. 듣기로는 매우 까칠하고 디테일에 강하다고 했다. 다들 긴장하며 올해 초를 보냈다.
간담회가 잡혔다. 석식을 먹으면서 새로운 담당과의 인사자리였다. 이 행사를 주관하는 담당자가 우리에게 미리 귀띔을 해준다. 한 명씩 자기소개를 할 것이고 건배사를 하는데 실수하면 벌주를 먹는다고 했다. 그런데 순서가 나이 젊은 순부터다. 만약 나이 순서를 잘못 알아서 실수하면 그 또한 벌주란다.
메뉴는 이미 테이블당 정해진 게 있다. 우리는 이 T형인간에게 벌써부터 질렸다. 드디어 시작된 간담회 메뉴는 삼겹살 조금씩 먹다가 이내 행사가 진행된다.
건배사를 나중에 할수록 불리하다. 내가 생각해 뒀던 건배사를 누가 먼저 해버리면 당황하게 되고 그 순간 바로 벌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순서가 뒤에서 네 번째였다. 제일 어린 직원부터 시작했다. '건강을 위하여', '조직의 발전을 위하여', '성과급을 위하여' 점점 예상 레퍼토리가 건배사를 고갈시키고 있다. 나는 애초부터 다른 걸 준비했다. 절대 벌주를 먹지 않겠다는 일념하에 이 건배사는 아무도 안 할 거야라는 확신을 하고 있었다.
"이만큼 살아보니 저는 부모님이 건강하시고 아이들과 가정이 무탈한 것만큼 더 좋은 게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떤 말이 있을까 생각하다 안녕이란 단어를 떠올렸습니다. 안녕하세요 던질 때 그 안녕입니다. 편안할 안에 편안할 녕입니다. 걱정이 없고 편안한 상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여러분 모두 안녕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모두의 안녕을 하면 위하여를 외쳐주십시오"
건배사 이벤트가 끝나고 임원과 팀원들은 멘트가 좋다고 칭찬을 했다. 어떤 사람은 앞에 서사가 좋았다고 했다. 나는 그냥 다른 사람과 겹치지 않으려고 쓴 말인데 칭찬을 들으니 기분이 좋았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 사람들이 안녕한 상태를 잊어버린 것 아닐까?‘하고.
고민 없는 사람 없다. 겉으로 좋아 보이는 사람도 말 못 할 고민과 시련이 다 있다. 왜냐면 우리 사는 자연과 사회는 이성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탈한 게 복이다. 아무 탈 없는 상태 그 순간이 잠깐이 평화일지라도 행복이다.
세상이 바뀌어가고 있다. ‘설마’ 하는 일이 일어난다. 세상이 어수선하고 사는 게 힘들다고들 한다.
하지만 당신이 무탈했으면 좋겠다. 당신의 가족도 안녕했으면 좋겠다.
서로 연대하고 위로하며 살아갈 때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가 인사가 아닌 진정한 바람의 소망이 되길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