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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리께 Aug 19. 2022

하모니카 부는 사나이

《Barcelona, SPAIN》








 내가 숙소에 들어왔을 때 그는 침대에 누워 꼼짝하지 않았다. 행여 잠을 깨울까 봐 나는 불을 켜지 않은 채 어둠 속에서 짐을 풀었다. 어둠이 눈에 익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안 자고 있어요!라는 그의 말에 나는 안심하고 편하게 짐을 풀었다.

- 숙소에 제법 늦게 도착했군요.

- 발렌시아_Balencia에서 오는 길에 버스에 약간의 문제가 생겼거든요.

- 저런.

- 그리고 숙소가 어찌나 찾기가 힘들던지... 그나저나, 불 좀 켜도 될까요?

그렇게 우리의 대화는 시작되었다.




 낡은 배낭, 때 묻은 캔버스화. 여행한 지 얼마 정도 됐냐는 나의 물음에 대략 3개월쯤? 그가 답했다. 헝클어진 붉은 머리칼과 붉은 수염 속에서 눈동자가 빛났다. 마치 관찰하듯 응시하는 눈빛에 나는 괜히 쭈뼛하며 대화가 끊기지 않게 뭔가를 계속 말했다. 숙소는 기숙사를 개조해 만든 곳이었는데 바르셀로나_Barcelona 시내에서 약간 떨어져 있어 접근성이 좋지 못했다. 더군다나 메트로에서 내려 푸니쿨라를 타고 언덕을 올라와야만 닿을 수 있는 곳이어서 찾아오기까지 제법 시간이 걸렸다. 숙소에 늦게 도착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그래서 저녁식사를 놓쳐 배가 고프다는 것까지, 나는 짐을 풀며 계속 이야기를 했다. 여기, 야생돼지 가족이 살고 있어요. 그의 말에 나는 뭔가 잘못 들었나 싶었지만, 그도 내가 그러리라 예상했는지 자세한 설명 뒤에 붙였다. 숙소가 시내와 멀다 보니 아무래도 숙소의 공용 주방에서 저녁식사를 해 먹게 되는데, 저녁때만 되면 어미로 보이는 큰 야생돼지가 서너 마리의 새끼들을 데리고 산에서 내려와 숙소를 방문한다는 것이다. 식사 테이블이 놓인 테라스는 산길과 면하고 있는데 그 테라스 앞에 와서 자기를 빤히 쳐다보더라는 것. 아마도 이전 숙박객들로부터 여러 차례 음식을 받아먹은 모양이다. 내일 저녁에 소개해줄게요. 그의 농담에 나는 피식 웃었다.




 그는 떠나간 여자 친구를 찾아 하모니카를 들고 캐나다에서 유럽으로 넘어왔다. 유럽의 어딘가에서 그녀가 자신의 연주를 듣길 바라며, 사람들이 모이는 광장 같은 데서 하모니카 연주를 했다. 지독한 열정의 로맨티스트로군, 나는 생각했다.

- 뭐, 그냥 한 번쯤은 미친 로맨스를 해보고 싶었어요.

- 멋지군요. 사실 저는 한국에서 막 로맨스를 끝장내고 왔거든요.

- 저런...

나를 위한 위로의 한 곡 연주해도 되겠냐해서, 나는 좋다고 했다. 하모니카 소리가 방안 가득 떠다녔다. 광장의 구석에서 연주를 하는 그를 떠올리다가 문득 야생돼지 가족이 이 소리를 듣고 산에서 내려와 창문 밖에서 야식을 달라고 울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뒤를 이었다. 다행히 곡은 짧아서, 소리가 창문을 넘기도 전에 끝났다. 그의 위로곡에 나는 박수를 쳤다. 로맨스를 찾아 이곳까지 온 그의 용기에 또한 박수를 보냈다. 만약에 나라면 절대 못했을 것이다.

우선... 나는 연주할 줄 아는 악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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