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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용 Jun 23. 2023

배추적을 들고 시댁으로 갔다.

2022년 2월 14일 


시어머니께서 사다 주셨던 배추로 배추적을 구워보았다. 친정언니와 전화통화를 하다가 친정에서의 설연휴가 어땠는지 이야기를 듣다 보니 갑자기 먹고 싶어 졌던 것이다.


경상도식 배추적. (표준어는 배추 전이지만 나에게는 영원히 배추적이다.)


종갓집에 시집오신 우리 엄마는 매년 십 수 번의 제사를 도맡으셨고 그 덕에 아주 어릴 때부터 제사준비를 도와드리다 보니 나는 경상도 제사의 꽃(?)인 이 배추적의 자칭달인이 되었다. 우리 엄마는 내가 나중에 시집가면 이 배추적만으로도 시댁에서 이쁨을 받을 거라고 하셨건만 결국 나는 배추적 스킬 따위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머나먼 불란서로 시집을 왔다.



지글지글 맛있는 소리를 내며 익어가는 배추적을 보니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설날에 엄마 혼자 배추적을 구우시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엄마뿐 아니라 언니도 이 배추적을 보면서 내 생각이 많이 났겠구나... 나도 배추적을 굽는데 엄마랑 언니생각밖에 안 나는데...

큼직하게 잘라서 한입 가득 먹었더니 머릿속에서 폭죽이 터졌다. 

결국 두장을 더 부쳐서 시댁으로 모두 가져갔다. 이런 건 혼자 먹으면 반칙이니까... 막걸리가 아쉽네.





시어머니께서는 점심을 원래 늦게 드시는 데다 배추적은 시아버지께서 돌아오시면 같이 드시겠다고 하셨다. 그 사이 저녁에 드실 키쉬를 준비하고 계시다며 나더러 차를 직접 준비해서 마시고 있으라고 하셨다. 혹시라도 내가 바로 떠날까 봐 하시던 일을 서두르고 계셨다.

"천천히 하세요. 전 모웬이랑 차 마시고 있을게요."


사과향이 나는 녹차를 한잔 내려서 거실로 왔더니 모닥불이 따뜻하게 타고 있었다. 잔잔한 라디오 소리까지 변함이 없다. 설연휴 내내 친정생각에 마음이 좀 울적했었는데 시댁에 오니 저절로 마음이 누그러진다. 


모웬... 반가운 표정 맞지? 그저 방금 만난 사이인 것처럼 무심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이스탄불은 반갑다고 다가와서 내 다리에 볼을 문질러주었다. 이럴 때 보면 이스탄불이 더 살갑다. 

시어머니와 고양이들과 아늑한 거실에 둘러앉아서 차를 마시는데 외출하셨던 시아버지께서 온몸에 차가운 공기를 뿜으시면서 들어오셨다. 비가 오고 있어서 더 쌀쌀한 날이었다.

아버님께서는 나에게 마들렌 한 상자를 건네주셨다. 오예! 감사합니다. 학교 갈 때 간식으로 챙겨 다녀야지.

내가 배추적을 담아 온 장바구니는 금세 시부모님께서 채워주시는 물건들로 다시 차오르고 있었다.


"자, 이 호두오일은 요리용이 아니라 샐러드용이란다. 그리고 초콜릿 푸딩은 다 가져가렴. 미셸이 내일 초콜릿 푸딩을 직접 만들어준다네." 


그렇다면 기꺼이 먹어드리겠습니다! 



오후에 라테를 한잔 만들어서 시아버지께서 주신 마들렌을 하나 먹고 있을 때였다. 어머님으로부터 메시지가 왔는데 배추적이 너무너무 맛있다고 하셨다. 


[너무너무 맛있구나! 어떻게 만드는지 나 좀 가르쳐 줄 수 있니? 내가 배추를 사 올 테니.]

[그럼요, 쉬운걸요.]

[이번 주말에 집에 있니?]

[네, 이번 주말에 가르쳐드릴게요.]

[배추 네 것도 하나 더 살까?]

[네, 감사합니다.]

어머님께서 좋아하셔서 정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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