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걸로는 서럽게 하지 말자 좀...
2021년 6월 11일
바르셀로나로 결혼기념일 여행을 다녀오신 시부모님께서 선물로 하몽을 사다 주셨다.
그날 오후 남편은 부엌에서 하몽을 뜯어 샌드위치를 만들고 있었다. 잠시 후 와인과 함께 샌드위치를 거실로 가져가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하던 일을 마친 후에 샌드위치를 얻어먹으려고 거실로 가보았다.
그런데! 그 사이 접시가 비어있는 것이었다.
"하몽... 다 먹었어?"
자서방은 입에 빵 부스러기를 털면서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아 서럽다...
"어떻게 먹어보란 소리도 안 하고 혼자 그걸 다 먹냐!"
자서방은 약 올리는 표정으로 "어떻게 같이 먹자는 말도 안 하냐!" 하며 말장난을 했고 그 모습에 나는 더 서러워져서 서재방으로 돌아갔다. 아... 화가 안 풀리네.
다음날 오전에 시어머니와 동네 산책을 나갔을 때 시어머니께서 하몽 맛이 어땠냐고 물으셨다. 그때 나는 설움이 폭발해 모든 일을 고자질을 했다. 내 사연을 들으신 시어머니께서는 자서방이 아주 잘못했다며 화를 내셨다.
"내 아들 두 명 다 고등학생 때였단다. 둘 형제가 방학이라 집에서 티브이나 보고 빈둥거리고 있었는데 나는 그날 너무 바빠서 끼니도 못 챙겼단다. 그런데 글쎄 이 녀석들이 자기들끼리만 뭘 요리해서 다 먹어치웠지 뭐니... 그걸 보고 나는 크게 화를 냈지. 어떻게 엄마가 식사도 못하고 바쁜데 도와주려는 녀석도 없고 너희들끼리만 다 먹어치울 수가 있냐고 말이야. 그랬더니 그 녀석들이 뭐라고 했는 줄 아니? 왜 도와달라고 안 했어요? 그래서 내가 말했지. 니들은 눈이 없냐!!"
시어머니께서는 어느새 나보다 더 화를 내고 계셨다.
"하몽은 더 있으니 내가 더 주마. 큰 덩어리를 사 왔기 때문에 원래도 더 주려고 했어."
사실 하몽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라 거절했다. 그저 남편한테 서운했을 뿐...
그런데 오후에 남편이 간식이라며 하몽으로 샌드위치를 만들어 주겠다고 말했다.
"뭐? 하몽이 남아있다고?"
자서방이 씩 웃으며 끄덕끄덕했다.
아... 내가 삐쳐있는걸 잘도 구경했구먼…
왜 말을 안 했냐니까 내가 혼자서 멋대로 그렇게 단정을 하더란다. 물론 내가 찾아볼 생각도 안 하긴 했지만.
무안한데 또 제대로 말을 안 해준 남편이 원망스럽다.
시어머니께 얼른 정정 메시지를 드렸다.
"하몽이 아직 남아있었네요. 혼자 다 먹었다고 하더니 사실은 그렇게까지 욕심쟁이 남편은 아니었어요."
"다행이구나. 그래 내 아들이 그렇게까지 나쁘지는 않아."
남편은 하몽뿐만 아니라 작은 통에 담긴 리에뜨(Riettes)도 꺼냈다.
이 리에뜨는 돼지고기로 만든 건데 오리나 토끼, 연어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고 했다.
하몽 샌드위치 두 조각, 리에트 샌드위치 두 조각.
자기는 안 먹고 구경만 하겠다며 와인을 따라주며 웃는 남편.
"본아페티."
내가 먹는 걸 구경만 하던 자서방은 나에게 리예뜨가 더 맛있는지 하몽이 더 맛있는지 물었다.
"하몽이 좀 더 맛있는 거 같아. 오래전 이걸 시댁에서 처음 먹어봤을 때는 너무 짜서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맛있다. 남편 혼자 다 먹었다고 해서 화가 났을 만큼-"
자서방은 장난꾸러기 같은 표정으로 웃더니 한참이나 내 말투를 흉내 내며 나를 놀려댔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남은 샌드위치를 맛있게 먹었다.
먹는 걸로는 서럽게 하지 말자 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