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소설 작품을 접해보지 못했지만, 이번 작품처럼 비극적이며 불쾌하게 느껴진 작품은 처음이다. 단순히 비극을 넘어불쾌감이 몸으로 느껴지는 것 같다.
'김약국의 딸들', 제목만 봤을 땐 딸 부잣집의 밝고 경쾌한, 그렇지만 인생사가 녹아 있는 소설 정도로 생각했다. 약간 응팔(?) 같은 분위기를 예상했다. 하지만 소설의 중후반을 넘어가면서 분위기는 급격히 어두워진다.
김약국의 어머니가 독약을 먹고 자살하면서 이 집안의 기구한 운명이 시작된다. 그리고 이 운명은 다섯 딸들에게로 손을 뻗친다. 특히 셋째 딸(용란)이 아편쟁이 남편을 만나 불행한 결혼 생활을 시작하며, 끝에 가서는 아편쟁이 남편이 장모(용란의 어머니)와 용란의 옛 연인을 도끼로 찍어 죽이는... 사이코패스 영화의 한 장면 같은 결말로 맺어진다. 특히 도끼로 장모 정수리를 찍는 장면은 한국 소설에서 상상조차 해본 적 없었다.
한편, 넷째 딸(용옥)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남편과의 결혼 생활에 외로움과 고독을 느낀다. 하지만 더 기분 나쁜 것은 시아버지다. 의뭉스러운 눈빛과 말투는 불행한 사건의 앞날을 암시한다. 결국 남편 없는 어두운 밤 시아버지는 며느리를 겁탈하려고 시도한다. 용옥은 더러운 손길 뿌리치고뛰쳐나오지만 갈 곳이 없었다. 그는 부산 어업협회에서 일하는 남편을 만나러 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오는 길에, 배의 침몰로 둘째 아이와 생을 함께 마감한다.
부유했던 김약국의 집안은 몰락하고 다섯 딸의 삶은 기구한 운명으로 부서져버린다. 결국 기구한 팔자를 짊어진 상처입은 피해자들만 남아 있다. 소설의 끝에서 모든 것이 이렇게 끝나는 것이, 비극을 넘어 내겐 불쾌감으로 느껴졌다. 굳이 이래야만 했나....
# 소설과 현실의 사이에서
책을 읽는 내내 이런 비극적인 일이 어디에선가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한 평생 불행을 가득 안고 살며, 마지막까지도 비극으로 끝나는 삶이 있을 것이다. 소설은 현실을 반영하며, 동시에 현실에서 소설 같은 일이 일어나기도 하지 않던가. 또한 내 삶이 끝이 비극이 될 수도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기대했던 아름다운 결말이 아닌, 불행한 생으로 마감하지 않을 것이란 보장이 어디 있을까. 그렇기에 소설 속 인물들의 비극이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 문제의 출발, 사랑
소설 뒷부분 작품 해설에서, 모든 문제의 출발점은 남녀 간의 사랑 문제로부터 출발한다는 구절이 나온다. 김약국의 어머니의 자살도, 셋째 딸과 넷째 딸, 그 외의 인물들의 비극은 사랑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그 위에 다른 비극이 더해져 개인의 운명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굳이 소설의 근본 설정을 사랑에 초점에 두지 않고 다양하게 썼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하지만, 우리 삶에서 또 사랑만큼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도 또 없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그렇기에 너무 현실을 투영하는 소설이라는 생각도 든다.
# 쓰지만 필요한
그렇게 재밌는 소설은 아니다. 전개가 빠른 것도 아니라 좀 지루하다. 내용도 좀 어둡고. 하지만 천천히 읽어 보면 인물들의 고난이 보인다. 쓰지만 어떤 깊이가 있다. 그렇기에 한 번쯤은 읽어볼 만한 매력이 있다. (두 번은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