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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구석워킹맘 Jul 10. 2024

Part 2. 취업 선택

대기업 취업만이 살 길인 줄 알았다…

고심 끝에, 대학교에서 전공을 졸업하고 나면 문득 이러한 생각이 든다.

과연 전공을 살려서 그 길로 취업에 나서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하는 생각.

꽤나 전공을 깊게 생각하던 20살이 졸업을 막상 하고 나와서 평생 일하게 될 직장을 선택한다는 게.

막연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할 거다.

나 역시도 그랬었다.


전공을 했고, 졸업을 했지만 과연 이 언어를 쓰는 우리나라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이 들었다.


하지만 우리 엄마아빠는 생각이 달랐다.

“전공해서 써먹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 결국 다 돈 벌려고 일하는 건데 돈 많이 주는 대기업 생산직 들어가서 일하면 장땡이지.”라고.


공부로 성공한 집안도 아니었기에 그저 돈 많이 벌 수 있는 직업이면 되는 것 같았던 집안.


그러니 적성에 맞는지 혹은 내가 잘할 수 있는 일 인지 좋아하는 일 인지에 대해서는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여러 아르바이트들을 하면서 직업에 대한 고뇌가 깊었다.

평생 해야 하는 일인데, 적성에 맞지 않는다면 얼마나 지옥일까?

좋아하지 않는 일을 어떻게 몇 십 년간 지속할까? 그게 나에게는 가장 큰 고민이었다.


하지만, 세상에 대해 아직도 배울 게 많았던 20대 초반의 나에게는 부모의 압력 또한 뿌리칠 힘이 그리 크지 못했던 것 같다.


아빠는 나에게 그랬다.

“네가 대기업만 들어가도 아빠는 너한테 큰 절 할게.”

그 말을 듣는 순간 너무 기분이 나빴다.

대체 나를 얼마나 무시하면 저런 말을 할까.

엄마는 나에게 한 마디 더 보탠다.

“들어가지도 못할 텐데, 들어가 보고나 얘기해.”

적성에 안 맞을 것 같다고.

굳이 내가 생산직에 뭐 하러 가냐는 말에 돌아온 엄마의 대답.


어릴 적부터 왜 우리 엄마아빠는 따뜻한 말 보다 핀잔을 더 먼저 주었을까?

왜 무시부터 하기 바빴던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이제, 오기가 생겨서 “S*사”의 생산직에 지원했다.

서류는 합격했고, 면접을 보러 갔다.

난생처음. 보는 대기업 면접. 긴장이 미친 듯이 되었다.

한참 이제 답변을 이어나가던 도중.

중국어 전공이면 우리 회사가 중국 베이징에도 지사가 있는 걸 알고 있냐는 질문이 들어왔다.

“알고 있고, 기회가 된다면 그곳에 가서도 일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OOO 씨는 똑똑한 거 같은데, 왜 4년제 안 나오고 2년제 나왔어요? 우리는 멍청한 사람들이 필요하지 OOO 씨처럼 똑똑한 사람은 필요 없어요. 아마 결과 열어볼 필요도 없어요. 불합격 줄 거니까요. 차라리 4년제 나와서 4년제 친구들하고 경쟁해요. 하고 얘기하는 거였다.


대체 왜 이런 말을 한 건지, 아직도 나는 의문이다.

면접장 이야기를 하니 엄마는 나에게 한다는 말이 ”으유, 얼마나 나댔으면 면접관이 그런 소릴 했겠어. 겸손하지 못하고 잘난 척했구먼 “이라고 하는 거였다.


면접 결과가 나오는 날이었는데, 사촌동생은 이미 그

회사에 다니고 있었고 사촌동생은 분명 좋은 결과 있을 거라고 했다.


하지만, 나의 결과는 새빨간 글씨로 세 글자가 적혀있었다.

“불합격”

그리고 뒤따라 오는 뻔한 멘트.

귀하의 재능을 어쩌고 저쩌고 우리 회사에는

모시지 못하게 되어 안타깝다 죄송하다 뭐 이런 말.


설마설마했지만 진짜로 그런 결과가 나올 줄은 생각도 못했다.


충격에 어떻게 하루를 보냈는지 기억도 나질 않는다.

그날 롯*월드 바이킹을 타며 확인했던 불합격.






홧김에 어차피 취업도 안 됐으니, 일이라도 하자 싶어

롯*월드에 입사 지원서를 냈다.


단숨에 합격도 하고 후룸라이드에 배정을 받았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스마트폰 이전 카메라의 흔적.

세상 즐겁게 적은 급여에도 열심히 또 누구보다 행복하게 일했다.

일할 사람이 부족해 오픈부터 마감까지 일명 ‘오. 마’를 일주일에 두세 번은 기본이었다.


왕복 출퇴근도 꽤 길었다.

1시간 반정도는 잡아야 했었다.

마을버스 타고 지하철 타고 걷고 뛰고 지금 생각해도 너무 힘들었을 그 시간을 젊고 어리기에 힘들지만 재밌다는 생각 하나로 열심히 버텼던 것 같다.


지금도 가끔 롯*데월드에 놀러 가면 그 시절 일하던 내가 종종 떠오르곤 한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왠지 기회가 되면 또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냥 그때 그 즐거움을 다시 느끼고 싶어서 말이다.


중국어 가능자여서 시급도 언어 수당을 따로 추가로 받았었다.

이때 처음으로 내 전공에 대한 대가를 받는 첫 경험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하염없이 일을 하고 지내던 그때에.




나는 우연찮게 ‘L사’ 채용공고를 보게 되었다.

자정이 넘은 시간에 퇴근하고 와서는 지원서를 부랴부랴 넣었다.

무슨 이야기를 자기소개서에 채워 넣었는지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렇게 지원을 하고, 또다시 나의 위치에서 열심히 일을 했었다.

그러다 보니 ‘서류합격’ 그리고 곧장 일주일도 채 남지 않은 일정으로 면접을 보러 오라는 것이었다.


정보도 잘 없고 진짜 그저 맨땅에 헤딩처럼.

그렇게 부랴부랴 현재 다니고 있던 롯*월드에 휴무 요청을 하고 전날 또 마감까지 일하고 자정이 넘은 시간에 퇴근을 하고 3-4시간을 자고, 새벽같이 또 준비해서 머나먼 곳으로 면접을 떠났다.


이 날의 이야기를 해보자면 진짜 다사다난했다.

면접 보러 갈 때도 물론 혼자 갔다.

대중교통 걸어서 버스 타고 지하철 타고 택시 타고 비행기 빼고는 다 이용해서 갔던 것 같다.


가는 길이 너무 멀고, 또 그때 당시 경의선이 30-40분에 한 대가 올 때였는데 그날 하필 놓쳐버린 거다.

그때 잠시 잠깐 고민했다.

그냥 집에 가고 떨어졌다고 할까.

늦어도 그냥 어찌 되었든 가야 할까.

당신이라면 어떻게 했을 것 같나?

나는 그래도 거짓말은 하지 말라는 늘 엄마의 말대로 일단은 가보고 후회하자는 생각으로 거짓말하는 딸은 안되고 싶어서 무작정 갔다.


원래 도착해야 하는 시간보다는 30-40분 정도 늦어졌다.

안 들여보내줄 줄 알았는데, 들여보내주는 거다.

허겁지겁 들어가서 앉아서 옆에 사람들에게 지금 뭐하는지 물어보고 정신없이 진행했던 것 같다.

인적성 검사 보고, 면접이 곧 시작된다는 통보.

가슴이 터질듯한 긴장감이 들었다.


하필 나는 우리 조에서 1번.

내가 인사를 해야 하는데 롯*데월드에서 일한다고 목이 다 쉬었다.

간신히 쥐어짜 내야만 소리가 나오는 상황에 면접도 참 나는 악조건에서 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지도 못한 채.

똑똑 노크와 함께 들어오라는 사인이 오고 들어갔다.


이젠 시작된 거 도망칠 수도 없으니 어찌 되었든 마무리까지는 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차렷 경례를 하는데 내 목소리가 갈라졌다.


으음!!! 으음…!!! 목을 가다듬었다.

역시나 첫 질문은 내 목소리.

면접관 : OOO 씨는 목소리가 왜 그래요? 어디가 아파요?

나 : 제가 사실 롯*월드에서 현재 근무 중인데, 마이크 대고 매일같이 안내멘트하면서 일하다 보니 목이 이렇게 쉬어버렸습니다. 목관리를 제대로 못해 죄송합니다.

라고 답변을 했다.


면접관 : 롯*월드에서 일해요? 나도 가봤는데

나 : 언제 오신 적이 있으세요??? ( 놀란 표정으로 바라봤다 혹시나 만났나 싶어서.. )

면접관 : 아~ 나는 10년 전에 갔다 왔지.


속으로 대체 왜 10년도 지난 이야기를 하시는 건가…

3명의 면접관 중 한 명이 나에게 질문을 한다.


면접관 : 우리 회사에 지원하시게 된 이유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나 : 아빠가 가라 해서 왔어요.


파워 당당하게 답변했다.

아빠가 가라 해서 왔다고.


3명의 면접관이 동시에 나를 바라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넋을 잃었다.

이건 뭔 소리인 건가 싶었겠지만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솔직한 답변을 하고 오기로 이번 면접에서는 마음을 먹었다.

늦었을 때부터 기대하지 않았다.

떨어지면 뭐 롯*월드에서 더 일하면서 보내지 하는 생각이 컸다.


그러다 나에게 질문을 던졌던 면접관이 분위기를 전환해 보려는 것 같았다.

면접관 : 아 그러시군요~ 합격하시면 아빠가 너무 좋아하시겠어요.


나는 거기에 대고 더 큰 한방을 날려버렸다.

나 : 합격하면 아빠가 저한테 큰절하기로 했어요.

면접관 : 네????? 큰절이요????? 하고 다들 뒤집어졌다.

나 : 네. 합격하면 저희 아빠가 저한테 큰절하겠다고 하더라고요. 합격시켜 주시면 제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빠한테 큰절받아보겠네요.

라고 답변했다.


면접관 : 얼굴까지 벌게지면서 웃더니 합격 꼭 하시길 바라봅니다.라고 하셨다.

나 : 감사합니다.

그러다 다른 면접관님이 나를 노려보시더니 질문을 던졌다.

면접관 : 전공이 중국어인데, 중국어 잘해요?

나 : 전공이니 어디 가서 못한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면접관 : 뻔해서 굳이 안 시키고 싶기는 한데, 중국어로 자기소개 한번 해봐요.

나 : (중국어로 자기소개 한바탕)

면접관 : 나는 한 가지 알아듣겠다. 마지막 쎼쎼.


늘 느끼는 거지만,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전공이라고 하면 왜 그리 시켜보는 걸까 싶기도 하다.


그러다가 한 면접관님이 이야기하신다.

면접관 : 나중에 합격하면 OOO 씨는 모듈에서 일할 거예요.

하고 나의 면접은 끝났다.

그다음 사람으로 질문이 이동하는데, 아직도 기억이 선명하다.


왜 이곳에 지원했는지 근데 나랑 똑같이 아빠가 가라고 해서 왔다고 답변하는 거다.

이미 면접관들은 내 답변을 들었는데 또 똑같이 곧바로 대답하는 걸 보고는 표정이 굳었다.

그렇게 또 몇 마디 던지시다가 다음 순서 지원자에게 넘어가버리셨다.


그렇게 우리 조 6명 면접이 끝이 난 후, 면접장에서 나왔다.

나오자마자 나는 내 다음사람이었던 사람에게 이야기했다.

초면에 굳이 나도 말하지 않았어도 되지만 나의 성격상 싫은 소리도 해야 하는 편이라 말했다.

남의 답변 따라 하는 거 아니라고 만약 당신하고 나 둘 중 합격을 한다면 내가 합격하고 당신은 떨어진다고 얘기했다.


내 답변이 먼저였기에 따라한 답변은 절대 뽑지 않는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 사람도 이때가 교훈이 되었길 바라본다.

얼굴도 새하얗고 예쁘고 키도 큰 그 여자.

목소리는 염소소리가 났지만 그래도 남자들이라면 좋아했을 것 같은 외모.

하지만 그날 그곳에서 본 게 마지막이다.


면접이 끝나고 신체검사까지 하고 면접비를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완전 녹초가 된 상태였다.

그리고 또 다음날 정상적으로 출근했다.

일상을 보내다가 10일 정도 지나서였나 결과가 떴다.


떨리는 마음으로 열어본다.


이 유물 같은 걸 찾아낸 지독한 나.

무언가 엄마아빠를 이겨낸 것 같아서 매우 기뻤다.


그리고 아쉽게도 롯*월드는 그렇게 퇴사 수순을 밟았다.

아직도 그리운 직장은 사실 L사가 아닌 롯*월드인 게 참 아이러니 하다.

그만큼 L사는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직장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고자 하고 원하던 일이 아니었어서 인가보다.

그래서일까 자신이 원하는 일을 찾아내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걸 이때 알게 된 것 같다.

굉장히 소중하고 값진 진리를 깨닫게 된 셈이지.


그래도 나의 노력에 아직도 나는 스스로가 대견하다.

들어가기 쉽지 않은 곳에 아무런 도움 없이 오롯이 내 힘으로 해냈다는 것에 대한 대견함이지 않을까 싶다.


취업을 앞두고 많은 고민과 선택 앞에 무기력한 사람이 있다면 일단 무엇이든 해보고 후회하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다.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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