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5
요즘은 잘 안 쓰는 말 중 '츤데레'라는 신조어가 있었다. 겉은 차갑지만 속은 따뜻한 그런 사람을 일컫는 것으로 열도의 인터넷에서 쓰이던 게 바다를 건너 반도까지 다다른 것이라고 한다. 그 말이 바닷길을 거슬러 왔을지, 하늘길을 뚫고 왔을지 나로서는 도무지 알 길이 없지만 어쨌거나 이 곳에 도착한 말은 삽시간에 전국 팔도로 흩어졌다.
신조어의 힘은 꽤 컸던 듯 그때 당시로 츤데레 말고도 다른 여러 일본 신조어들이 이 곳으로 건너와 다양한 매체들에게 영향을 주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대부분 개그, 예능 프로에서 썼던 것 같은데, 저녁 뉴스에서는 당시로는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신조어들 때문에 걱정 앓는 부모가 많다고 하였다.
그런 신조어들 중 츤데레라는 단어의 반응은 꽤 뜨거웠던 것으로 기억된다. 긴 말을 짧게 줄일 수 있고, 한번 들으면 기억에도 오래 남으며 뜻풀이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또, 많은 곳에서 쓰이고 지금처럼 반일감정이 높은 것도 아닌 그냥 여러 사람 입에 오르내리는 '시쳇말'이니 누군들 안 쓰겠는가. 그러는 와중에 이 츤데레라는 단어는 신기하게도 한국 고전 문학에서 제 주인을 만난다. 바로 소설 운수 좋은 날의 '김첨지'이다.
주인을 만난 말은 더욱 활개를 치고 다녔다. 츤데레의 대명사는 김첨지였고, 그 단어는 김첨지를 위해 만들어진 듯했다. 특히나 인터넷에서는 꽤 자주 오르내리던 주제였던 것 같다. 몇 명의 여러 가상인물을 모아놓고는 누가 더 그것에 가까운지 투표까지 해가며 입씨름을 했고, 당연히 1위는 누가 뭐래도 김첨지였다.
나 스스로를 생각할 때 요즘의 신조어로 치자면 프로까진 아니어도 '아마추어 불편러' 정도는 되는 듯싶다. 그래서 그런지 김첨지가 저렇게 불리는 게 그렇게도 싫었더랬다. 아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가상의 인물이고 세상에 존재하진 않지만 그의 겉과 속이 다르다며 입방아에 오르는 행동이 상당히 불편했다. 개인적으로 그 사람들은 운수 좋은 날을 제대로 읽긴 했을까? 싶었다.
운수 좋은 날은 일제 강점기 시절의 독립운동가이자 소설가인 현진건의 대표작이다. 내가 알기론 1920년대쯤에 집필했다고 알고 있는데, 한국 근대 소설의 으뜸작 중 하나로 알고 있다. 많이 알고 있진 않지만 이 정도라도 알고 있는 이유는 이범선 작가의 '오발탄' 다음으로 좋아하는 고전 소설이 이 운수 좋은 날이기 때문이다.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은 중학교 정규 교과서에서 나올 만큼 누구나 다 아는 내용의 이야기이다. 일제 강점기 시절 비가 미친 듯이 오는 어느 날, 오늘만큼은 일을 나가지 말라며 언제부턴가 몸이 좋지 않던 아내를 주인공 김첨지는 욕지거리를 해가며 떨쳐낸 뒤 나가버린다. 아내는 며칠 전 그가 겨우 벌어온 돈으로 사 온 쌀을 굶주림에 다 익히지도 않고 맨손으로 퍼먹다 체기 비슷한 것이 있다며 드러누운 판이었다.
그렇게 세차게 나가버리곤 온 비를 다 맞으며 일을 한 뒤 집에 돌아와 보니 눈에 계속 밟히던 아내는 죽어있고, 그렇게 주검이 된 아내의 옷고름 사이를 파고들어 젖을 빠는 아기와 그의 손에 들린 김이 모락 올라오는 설렁탕 한 그릇을 떠올려보면 눈시울이 붉어질 것이다. 이런 그에게 어떤 근본조차 없는 신조어를 뒤집어 씌운다는 것이 꽤나 씁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