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3
직장 내 남자들의 담배 타임이나 간소한 술자리에서 빠지지 않는 것은 군대 이야기다. 남한에 존재하는 전국 팔도는 눈앞에 훤히 펼쳐진 것 마냥 지역은 어디냐로 시작해 사단과 연대 그리고 직책 순으로 서로의 추억을 끄집어내었다. 신체 건강한 나에게도 당연히 그런 것들이 있다. 인천광역시 학익동에 위치한 병무청에선 20 살이었던 나의 육체와 정신을 '1등급'의 최상급으로 분류했더랬다. 그때 내가 다니던 헬스장엔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라고 쓰여있었다.
나에게도 군대 복무 시절의 헛헛한 추억들이 있다. 지역과 사단은 비밀이지만(사실 비밀일 것도 없다.) 신병 훈련소의 교육을 끝마치고 내가 배치받은 자대는 그때 당시 중대 전술 훈련 중이었다. 여름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오늘 기상예보에 비가 올 수 있다며 첫날에 야전삽으로 도랑을 미친 듯이 만든 기억이 있다. 삽질 못한다고 욕먹었던 것은 예전 80년대 군대 이야기인 줄 알았던 나는 호되게 혼이 났다.
또, 어느 이등병 시절 P.X에서 오레오 과자와 빙그레에서 파는 팥빙수를 동기와 하나씩 집어 들곤 막사 뒷 산에 몰래 올라가 숨죽여먹었던 기억이 있다. 당시 P.X는 일병 이상부터 이용할 수 있었는데, 그마저도 소시지만 살 수 있었고 제대로 즐기려면 짝대기 세 개는 달고 와야 했다. 지금도, 그때도 먹는 것으론 차별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그 뒷산 참호에서 몰래 먹었던 간식의 맛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군대 이야기도 이 정도면 지루해질 타이밍이지만, 굳이 한 가지 더 끄집어 내보자면 난 이상하리만큼 미친 듯이 책을 읽었다. 말 그대로 장르도 분물 하고 미친 듯이 읽었다. 대표작을 읽은 뒤 마음에 들면 먼저 제대한 형에게 다른 책들도 전부 택배로 보내달라고 부탁했었는데, 기억에 남는 작가들을 적어보면 김 훈, 박경리, 주제 사라마구, 코맥 매카시, 폴 크루그먼, 무라카미 하루키, 아사다 지로, 민음사 세계 문학 전집 그리고 알랭 드 보통이 있었다.
알랭 드 보통.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 가'로 인기 작가가 되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내가 그의 책을 처음 접한 장소는 막사 내의 독서실이었다. 어느 일요일이었다. 당시의 계급으론 일반 병사들 중 누구도 나에게 뭐라 할 수 없는 위치여서 주말만 되면 후임들에게 "누가 날 찾거나 일이 있으면 독서실로 와, 계속 거기 있을 거니까." 하곤 물 한 통을 챙겨 하루 종일 박혀있었다. 그 박혀있는 날, 알랭 드 보통의 2005년 출판한 '불안' 이란 책을 집었다.
책은 꽤 두꺼웠고 내용은 심오했다. 인간은 왜 불안하고, 불안이란 것은 어디서 기인하며, 불안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라는 내용을 시대의 계급별로 나눠 정리했다. 정말 간단하게 정리해서 이 정도라는 것이지 내 기억에 책은 400페이지 가까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누군가는 종종 1분, 1시간, 1일 한 치 앞도 알 수 없으니 불안해하지 말라고 말하지만, 그 말처럼 그렇게 한 치 앞도 알 수 없으니 불안한 것이라고 대꾸하고 싶다. 또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불안은 인생의 또 다른 동반자고 삶의 원동력이 될 수도 있지만 가능한 눈을 마주치고 싶지는 않다. 근본적인 질문에서부터 시작해보면 우리는 왜 불안할까? 알랭 드 보통의 불안에서는 그러한 감정들을 여러 가지로 정리했다.
첫 번째로는 '계급'에서 오는 불안이다. 계급은 과거와 현재, 미래 그리고 위치과 장소, 지역과 국가를 초월한 것인데, 계급이라는 것을 없앤 뒤 평등하게 만들겠노라 선언한 어느 조직 역시 계급으로 이루어져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계급의 불안을 방증한다. 인간은 어디에서나 계급을 만들고 그것으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기대'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기대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그것의 정도가 과하거나, 기대받는 스스로가 어떤 힘듦을 느낀다면 그것은 자연스럽게 불안이라는 감정으로 변질되는 것이다. 이것은 단지 부모와 자식 간의 내용이 아닌 타인에게 어떠한 기대받고, 하는 것에서 올 수 있다고 알랭 드 보통은 말한다.
세 번째로는 '불확실성'이다. 인간이라면, 아니 지구 상의 모든 종들은 불확실성에 대한 강한 불안을 느낀다. 예를 들어 코끼리의 리더는 계절상 건기가 오면 예전의 기억을 통해 강물이 있는 곳으로 무리를 이끌어 이동한다고 한다. 하지만 가는 도중 어떤 돌발상황과 습격을 받을지 알 수 없고, 가장 근본적으로 아직까지 그곳에 강물이 있을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그저 기억 속에 남아있는 길을 따라가는 것뿐이다. 우리가 속한 인간이라는 종에겐 어떠한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다. 우리의 시대 자체가 불확신이므로.
기억나는 것들을 정리해 보자면 세 가지이지만 몇 가지 더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그것에 대한 해법도 적어놓았는데, 철학과 예술 그리고 종교와 정치로서 우리는 이 불안이라는 것에 대해 스스로의 정신을 풍부하고 건실하게 성장시킨 뒤 당당히 마주 앉아 대담을 나눌 수 있다고 전한다. 이제 군대 이야기가 딱 지루해질 쯤인 듯하다.